인간은 누구나 폭력을 겪는다. 때리는 거 말고도 말로도 상처를 깊게 받을 수 있다.

 

다들 기쁘고 행복한 가운데 나만 홀로 있어 소외감도 느낀다. 모두다. 상처를 겪는다.  

 

상처가 심하면 '폭력'이 된다.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 2달 됐을 때 모습이다. 

오늘도 나는 회사에서 어떤 폭력 같은 걸 경험했다. 가정의 경제적 상황 등을 이유로 해외여행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상사가 "나이가 몇인데 해외를 안나가보니, 혹시 집이 가난하니? 아님 게으르니? 정말 지루한 인생을 살았구나"라고 한 것이다. 

 

해외여행 안가고 싶은 사람이 있나. 여력이 안되서 못갔던게 당연한 거 아닐까. 왜 말로 어떤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걸까. 

 

'당신의 말에는 배려도 없고 생각도 전혀 없어요. 수치심을 주는 데 정말 탁월하게 단어 선택을 잘하시는구나'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끔 회사에서 동료들끼리 얘기하다가 "혹시 전쟁이 나거나 세상이 멸망할 때 쯤 살인을 해도 괜찮다면 누가 표적인가"를 논하니 다같이 한명을 떠올렸다. 

 

그 상사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무시한다.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상사의 잘난척과 우쭐함을 오래도록 듣고 있게 만든다. 

 

어쩌면 회사의 권력이란 것은 자신의 생각을 널리 전파할 수 있다는 것 같다. 잘난척과 우쭐함을 널리 전파해도 다들 억지로 받아들여주는 것. 그것이 권력 같다. 그 쓸데없는 얘기에 시간을 들여 귀기울여주는 것은 권력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삶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어 우울하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돈을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른다.

 

나의 한 살도 안된 고양이는 아마도 폭력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분양소에서 2달간 살다가 나의 집에 왔다. 분양소에서도 고이 자랐고 나에게서도 고이 자랐다. 

 

내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아서 사람이 무섭지 않은 것일테지. 

 

친구들은 내 집에 오면 쪼르르 달려나와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보통 고양이들은 숨어있는다고 한다. 

 

내 고양이는 거절을 당하지도 않았고 배고픈 적도 없다. 원하는 게 있으면 다가와서 몸을 부비면 된다. 혹은 발라당 누우면 된다. 

 

 

얼굴도 귀엽게 생겼는데 몸도 귀엽다. 귀도 귀여운데 꼬리까지 귀엽다. 

 

발을 오므리는 모양도 귀엽고 발바닥에 있는 핑크젤리도 귀엽다. 그렇게 모든 귀여움을 온 몸에 담아낸 덕분에 내 고양이는 아직까지 어떤 거절이나 폭력도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내게는 정규직으로 매달 돈이 들어오는 직업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양이에게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친밀함이 있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아 생긴 저 친밀감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하얗게 된다. 

 

하얗게 나도 변한다. 하얗게. 어떤 말로 푹 찔려 빨갛게 물든 마음은 하얗게 변한다. 내 고양이는 죽을때까지 폭력을 경험하지 않다가 죽었으면. 그래서 나의 마음을 언제까지나 하얗게 만들어주길. 

 

 

내 고양이는 자꾸 귀여운 척만 한다. "야 너 일부러 귀여운 척 하는거지?"라고 말을 해봐도 그저 날 쳐다볼 뿐이다. 

 

고양이는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있는다. 여기가 서울인지 대전인지 알지도 못할 거다. 

 

 

고양이는 주는 밥을 먹고 논다. 놀다가 지쳐 잔다. 심심하면 나한테 와서 발랑 몸을 뒤집는다. 그리고 나한테 안겨 있는다. 

 

고양이는 나랑 가끔 치킨을 먹을 때가 있다. 고양이가 치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내가 치킨을 먹고 있으면 무릎에 올라오고 배에 올라오고 난리다. 한 입만 달라는 것이다.

 

 

치킨을 살만 발라서 주면 엄청 잘 먹는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한테 치킨을 사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치킨을 먹고 싶겠지만 우리 인간들처럼 그걸 먹고 싶어서 사달라고 한다거나 돈을 모은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그때 먹고 배부르면 끝이다. 치킨도 먹을만큼 먹으면 더 줘도 배가 부르면 입도 안댄다. 고양이는 그냥 그렇게 산다. 나랑은 다르게.

 

나는 내 삶을 나아지게 하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공부를 계속 해왔고 직장을 얻고 나서도 더 좋은 직장에 가고 싶어서 계속 Try. Try. 실패를 겪고 또 다시 Try.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 이유는 맛있는 치킨을 맛보고 또 한마리를 먹고 싶어서다. 그런데 고양이는 어쩌면 이렇게 욕심이 없는지. 나한테 치킨 사달라고 한번을 안조른다. (사실 졸랐는데 내가 못들은걸까?)

 

 

어쩌면 최고의 동거 생명체가 고양이일 것 같다. 엄마아빠처럼 "네 삶을 나아지게 하라는 얘기지. 나 잘되라는 거니? 그렇게 게으르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해?"라고 잔소리도 안한다. 

 

어떤 몇몇 친구들 지인들처럼 우리네 삶을 비교하는 얘기도 안한다. "누구는 어디 직장 연봉 몇억을 받고 다닌대. 누구는 결혼을 잘해서 집을 어디에 얻었다나."등등의 비교하는 얘기도 전혀 안한다. 

 

고양이는 쉽게 만족한다. 그리고 자신도 욕심이 없으니까 나한테도 뭐라고 안한다. 치킨이 먹고 싶겠지만 조르지도 않는다. 

 

고양이는 그저 나한테 안겨서 쓰다듬어 주면 그 자체로 만족한다. 그릉그릉. 만족한다는 표시를 저 배 깊은 속에서부터 낸다. 그-릉-그-릉.

 

 

이렇게 쉽게 만족시켜줄 수 있는 생명체. 바로 귀여운 내 아기 고양이다. 생긴것도 귀여워서 애교를 부리면 나의 만족도 올라간다. 고양이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별로 할 줄 아는게 없어서 귀여움을 타고 난건가보다. 

 

가끔 고양이가 일부러 귀여운 척을 하는 것처럼 보일때도 있다. 

 

"고양이야 너 혹시 귀여운척 하는거지 ? 사실대로 말해봐."라고 물어봐도 고양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냥 원래 귀여운거 같다.

 

 

 

몸이 아침부터 찌뿌둥하다. 힘들고 졸립다.

 

간밤 꿈에서까지 일을 잘 못한다고 계속 시달렸다. 꿈에서 어떤 이가 내게 "뇌를 안쓰시는군요. 뇌를 가지고 계시면 뭐합니까. 뇌를 활성화하지 않는데." 라고 꾸짖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내게 동정을 보이기는 커녕 "에휴 ㅉㅉㅉ"이라고 말했다. 나는 꿈속에 나온 그에게 실제로 연락을 해서 뭐라뭐라 했다. "꿈에서 왜 그랬어요."

 

그러나 그는 꿈 꾼걸로 뭐 어쩌라는거지, 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 끝이다. 하긴 그게 맞다. 이런 꿈을 꾸는 만큼 나는 일을 잘 못하기도 하고 혼나기도 하고 있다. 지금은 꿈을 꾼 것이 어찌 됐든 회사에서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몸이 매우 피곤하다. 날짜를 보니 목요일이다. 주말에 가까웠다는 것을 몸은 알고 있는 셈이다. 반차쓰고 집으로 튀고 싶다. 그러나 일은 해야하니까 어떻게든지 한다. 해야하면 괴로워하면서도 한다.  

 

오늘 퇴근은 할 수 있겠지? 싶으면서도 괴롭다. 

 

나는 회사에 있는 괴로움 덕분에 종일 밍기적대고 있다. 내 허리는 굽어있고 나는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천천히 걸어다닌다. 고양이는 나랑 정반대다. 

 

 

고양이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고양이가 밍기적댄 것을 본 일이 없다. 

 

나랑 같이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가도 내가 일어나면 금세 몸을 일으키고 나를 졸졸 쫓아온다. 고양이에게 '일으킨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처럼 고양이는 어떤 소리 같은 것에 자동반사적으로 튀어 나온다. 

 

누워있다가도 내가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다. 고양이에게 밍기적댐이란 절대 없다. 게으르지도 않다. 

 

 

허리도 아프지 않아 보인다. 허리가 구부러진 고양이란 없을 것이다. 언제나 허리를 꼿꼿이 펴고 우아하게 앉아있다. 

 

아직 태어난지 1년이 안된 갓 태어난 생명체라서 그런건가. 왜 고양이는 밍기적대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지 않을까? 아직 매우 젊은 캣초딩이라서?

 

난 항상 허리가 아프다. 하루종일 앉아있는다. 이렇게 몸이 피곤하고 졸릴 때는 정말 회사를 때려치고 싶다.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다. 노동에서 해방돼 나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나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자본가이고 싶기도 하고.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는 나의 의지만 충만하길 바라는데.  아. 빼먹었다. 고양이랑 둘이서 그러고 싶다.

 

 

아침에 알람을 듣고 힘겹게 일어난다. 회사갈 준비를 한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긴다.

 

고양이는 일찌감치 일어나있다. 내 발을 쫓아다니고 있다. 원래는 쫓아다니기만 했는데 이제는 여기에서 더 진화했다. 

 

고양이는 두 발로 내 발을 끌어안다가 내 양말, 그니까 내 발을 깨문다. 회사에 가지말라고 고양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가지말라고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

불쌍하다. 얼마나 심심할까. 나는 고양이 사료를 놓는 곳에 가서 "밥은 그새 다 먹었니?"라고 물어본다. 밥은 대부분 반정도 먹었다. 물은 고양이가 좋아하는 편이어서 거의 2/3 정도 먹는다. 

 

사료를 퍼다가 밥그릇에 넣어주면 고양이의 고마움의 답례를 한다. 사료를 퍼주는 내 손에 머리를 부빈다. 

 

"고양이. 밥 줘서 고마워?" 물어보면 고양이는 고맙다면서 배를 뒤집어 발랑 깐다. 내게 매일 밥을 챙겨줘서 고맙다고. 

매일 밥을 챙겨줘서 고맙단 의미로 배를 보여줄게.

 

내가 회사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면 고양이가 또 붙잡는다. 요새는 두 발로 내 다리를 잡아당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가는 내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릴 기세다. 

 

"고양이야. 졸라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회사에 가야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단호하게 고양이를 떼어놓고 문밖을 나선다. 고양이는 문밖의 세계는 금기의 영역인냥 가만히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만 있다.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여서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내가 이렇게 귀엽게 쳐다보고 있는데 정말 갈 것이냐? 냉정한 인간.'라고 하면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다. 

 

"응 냉정하게 갈것이다. 집 잘 지키고 있거라. 아가."하고 나는 집을 나선다. 

 

 

나의 귀여운 고양이. 고양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종종. 그리고 멀찌감치 서서 몰래 나를 쳐다본다. 

 

고양이는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기도하다. 고양이가 취하는 동작들은 어딘가 끊어져있다. 마치 관절댄스를 추는 어떤 인간처럼. 분절된 모습을 보인다. 

 

가끔은. 고양이는 일부러 귀여운 척을 하는 걸수도. 고개를 살짝 기울인채. '슈렉'에서 '장화신은 고양이'가 귀여운 척을 하고 있는 것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 같다.

 

"고양이야, 너 사실 귀여운 척 하는거지?" 라고 물어본다.

 

 

 

고양이랑 매일 대화를 하다보니 고양이가 사람인줄 가끔씩 착각을 한다.

 

내 방에서 나는 주로 침대에 누워있는다. 고양이도 옆에 와서 앉아있다.

 

노트북을 켜놓고 이것저것 하다가 고양이한테 말을 건다. "고양이야 이것봐봐. 대박이야. 진짜 재밌다."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는 고양이.

 

고양이는 말을 알아들은것처럼 노트북앞에 머리를 갖다댄다. "그렇다고 그렇게 머리를 아예 갖다대면 드라마를 볼 수가 없잖아. 이리와."

 

고양이는 오라는 말은 잘 안듣는다. 그럼 나는 고양이를 번쩍 안아들고 꼭 껴안는다. 고양이는 도망가지도 않고 내 품에 안겨있다.

 

나는 고양이 얼굴을 가까이서 쳐다보면서 "저 드라마 대박치겠다. 진짜 재밌어. 나도 저렇게 하고 싶어. 현실에서 게임하고 하면 엄청 재밌지 않을까?"라고 말을 한다.

 

 

고양이는 맞다면서 코를 내 코에 부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재밌다.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털이 자꾸 빠져? 너는 왜 그러는거야?" 라고 물어보면 고양이는 '그건 나도몰라'는 표정을 짓는다.

 

고양이와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고양이는 나랑 대화를 하다가도 어디론가 달려간다. 

 

고양이는 뭔가를 발견하면 엄청 빠르게 어디론가 질주한다. 집 안을 굉장히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쫓고 있다.

 

나는 저런 고양이다운 모습을 보면 그 때 깨닫는다. '아 쟤 고양이였지. 사람인줄 착각했네.'

 

 

고양이는 내 방에 들어오지 않고 가끔 나의 행동을 살핀다. 자신의 몸은 숨긴채 고개만 살짝 빼놓고 말이다.

 

"고양이야. 거기서 뭐해? 이리오지 그래? 얼른 와"라면서 손짓한다. 내 말때문이 아니라 내 손의 움직임때문에 고양이는 내게로 온다.

나에게 다가오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나랑 같이 있는 고양이에게 난 다정하게 말을 건다.

 

"넌 왜 자꾸 눈꼽이 껴? 코도 촉촉하네. 왜그래?"라고 말걸면 고양이는 '몰라'라면서 내 품에 안겨온다.

이럴때는 또 사람인줄 착각하고 있다가 고양이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제야 고양이구나 싶다.

 

 

고양이한테 물어봤다. "어떻게 태어났어?"

 

하나님이 내 고양이를 창조할 때 주황색 물감을 쓱쓱 발랐다. 좀 더 진한색으로 줄무늬도 넣었다. 

 

'색깔이 너무 진한 것 같은데.' 고양이를 물에 넣고 한번 빨았다. 색깔이 조금 빠져 연한 주황색이 됐다. '음 이정도 색깔이 딱이군.'

 

고양이를 탁탁 턴다. 고양이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고양이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야겠어.' 고양이를 볕이 좋은 햇볕 아래 빨래 줄에 걸어놓았다.

 

고양이는 몇시간 동안 따뜻한 햇볕 아래 널어져 있었다. '음. 딱 좋아.' 하나님은 중얼중얼. 고양이의 털을 보송하게 해주려고 고양이에게 드라이기를 쏘아준다. 

 

고양이를 들여다보니 덩치가 좀 큰 것같아서 덩치를 조금 줄이기로 한다. 그래서 주황색 물이 좀 빠진 작은 아기 고양이가 생겨났다. 고.. 고양이가 말해줬다. (믿거나 말거나)

주황색 물이 빠진 아기 고양이.

고양이가 이렇게 정교하고 공을 들여서 탄생했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고양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런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좀 주황색 물이 빠졌구나. 색깔이 되게 연하네.

 

그래서 '치즈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고양이는 차별점이 있어! 색깔이 매우 연하다구.' 혼자서 생각해본다. 

 

내 고양이는 '먼치킨 롱레그'. 먼치킨 잡종이란 뜻이다. 그래서 튼튼하다. 다리가 짧은 숏레그가 원래 순종이라고 한다. 

 

티비에서 배우 윤균상씨가 삼시세끼에서 먼치킨 숏레그를 델고 나와 인기를 끌었다. 내 고양이는 다리가 길다. 귀여운 맛은 좀 덜 해도 매우 우아하다. 

 

나이가 조금씩 먹으면서 물빠진 주황색이 색을 찾는 것 같기도하다. 물을 많이 빼서 창조됐으나 나이가 들면서 본래 색깔을 찾는 것일까. 

 

그래도 여전히 연한 주황색의 고양이다. 귀여워. 

 

 

고양이는 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가 몇군데 있다.

 

내 방 창틀. 여기에 올라와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 의자. 여기에 엎드려서 잠을 즐겨 잔다.

 

 

스크래쳐하는 의자도 좋아한다. 스크래쳐를 따로 사긴했는데 의자에 스크래치를 해서 그냥 스크래쳐공간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침대. 내 침대에 웅크려서 잔다.

 

 

내가 잠을 자려고 누우면 고양이는 내 배위에 올라온다.

 

마치 불을 꺼놓으면 어린아이가 안식처를 찾아 엄마 품에 파고드는 것처럼.

차가운 겨울 날씨에 동굴을 찾는 것처럼. 캄캄한 밤에 불을 피워 놓은 곳을 찾는 아기 고양이.

 

내가 활동을 멈추고 누우면 내 배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난 고양이의 머리부터 등까지 쓰다듬는다.

 

 

고양이는 골골 댄다. 뱃속 깊은데서부터 만족감을 내비친다.

 

가끔 고양이가 내게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난 고양이를 번쩍 안아든다.

 

내게로 와.이제 같이 자야해. 잘 시간인걸.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놓는다.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다시 잘 준비를 마치는 고양이다. 고개를 숙이고 내게 파묻는다. 다리도 옆으로 누워서 잘 채비를 마쳤다.

 

고양이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언제까지나 쓰다듬고 싶다.

 

난 잠에 들고 고양이는 내 발 밑으로 이동해서 잠이 든다.

 

고양이는 완벽하다. 예쁘고 귀엽다. 부드럽다. 따뜻하다.

 

내 고양이는 나를 졸졸 쫓아다니고 애교도 많다.

 

고양이야. 안녕? 고양이는 너무 예뻐. 라고 나는 늘 말해준다.

 

 

까탈스럽지도 않다. 화장실을 바꿨는데 바로 적응했다.

이동장도 잘 들어간다.

 

밥도 잘먹는다. 심지어 물까지 잘 먹는다.

 

고양이는 날 잘 물지도 않는다. 물고싶어도 참고 핥을 뿐이다. 가끔 물긴한다.

 

또 고양이는 늘 마중나와있다. 문소리가 나면 뛰어나온다. 그리고 발에 머리를 부빈다.

 

 

고양이를 끌어안는다. 고양이 안녕?

 

고양이를 데려온 초반에는 정말로 고양이가 보고싶었다. 매순간. 집에 가고싶어죽는줄 알았다.

 

지금은 그정도에선 벗어났다. 그냥 예쁘구나. 하고 감탄은 계속 할뿐이다.

 

 

그냥 고양이가 좋다. 이제는 고양이가 없는건 생각할수가 없다.

 

나는 고양이를 잃어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만약?그렇다면?으. 끔찍해.

 

고양이가 오래살면 좋겠다. 매우 오래. 가끔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글을 보는데 그럴때마다 마음이 매우 아프다.

 

고양이는 정말 영혼이 없을까? C.S.루이스는 키우던 개가 죽자 성경을 다 뒤져 개를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근거들을 찾아냈었다.

 

흠. 그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고양이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잃어버리지도 않아야한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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