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하루종일 같이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미드 빨간머리앤을 보며 그녀가 지닌 감수성, 성장의 세계를 즐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녀 앤이 겪었던 험악한 일들. 그리고 그녀가 그 삶을 겪어낸 후 토해내듯 말하는 언어들. 그 언어들은 험악했던 것에 비해 순화되고 미화돼 아름다웠다.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앤을 사랑하게 된 나이든 아저씨, 아줌마. 그 사랑에 힘입어 새로운 가정이 생겨 행복한 소녀. 가정이 존재하지 않았다가 새로 가정을 얻어 행복함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가정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새로이 감사함을 찾게 되려나. 

 

그녀가 나 대신 세상의 일들을 겪고 나 대신 세상을 헤쳐나가고 나 대신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그런 마음에서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내 인생을 앤 네가 좀 대신 살아달라는 회피적 마음에서. 

 

 

내 아름다운 고양이는 바닥에서 잠을 잤다. 침대가 아니라 바닥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아마도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옷 때문일 것이다. 옷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지만 고양이에게는 공간 영역의 표시다. 고양이에게는 내 옷이 보금자리를 명확히 구분해주는 셈이다. 

 

옷이 쌓여져 있는 빨래더미 위에 포근하게 웅크리고 자고 있는 고양이에게 나는 “너는 내 침대에서 자도 되는 걸. 왜 바닥에 있니”라고 중얼댄다. 침대와 바닥의 차이가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듯이 침대 위에 올려놔도 다시 빨래더미 위로 기어간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든다. 

 

그러나 나는 침대 위에 엎드러져 여전히 미드를 시청 중이다. 

 

‘내 옆에 웅크리고 누워서 내게 네 체온을 좀 전해주지. 나쁜 것’ 하며 

바닥의 고양이를 쳐다보고 깨워봐도 고양이는 눈만 슬며시 뜨다가 다시 잠에 든다. 

 

미드 7개를 보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계속 내리 잤다. 엄마는 동물은 침대에서 같이 자지 말고 바닥에서 재우라고 했으나 그런 권고와 상관없이 고양이는 스스로 바닥의 빨래더미를 선택해버렸다. 

 

C.S.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어떤 인간들은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바닷가를 두고도 그 앞에 진흙과 모래가 좋다며 그 곳에 뒹굴고 있다"고 인간세상의 모습을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앞으로 한발자국만 가면 진흙에서 벗어나 바다를 즐길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여기가 천국이라고 계속 진흙에 있는 인간들처럼. 이상한 고양이. 

 

 

이상한 고양이는 신발장에도 종일 웅크리고 있다. 턱이 낮아 몸을 숨기기 좋아서인지, 신발에서 나는 냄새가 익숙해서인지, 신발장에 깔려 있는 돌이 시원해서인지 알 수 없다. 

 

‘왜 온세상에 나있는 더러운 길거리를 다 쓸고 온 신발이 그렇게 좋니. 신발에 붙어 있는 온 세상의 먼지로 뒤범벅돼 있는 신발장에 너의 몸을 맡겨 누워있니. 이상한 고양이야’. 나는 혼자 말을 건다. 

 

고양이는 몇 달 나와 함께 살면서 신분이 격상됐음에도 그는 그걸 알지 못한다. 나에게 고양이는 가족처럼 돼 있어 내게 어떤 짓을 하거나 나를 아프게 해도 난 그 성가심을 전부 다 받아들여줄 준비가 돼 있다. 

 

고양이는 바보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고양이는 내 발 주위를 한없이 서성이고 배회하며 내 발과 다리에 자신의 몸을 문지른다. 무릎 위에 올라와 자신의 머리를 부비고 내 품에 안겨온다. 그리고 내가 쓰다듬는 손을 깨물고 할퀸다. 

 

가엾은 고양이의 표현 수단은 고작 이것일 뿐이다. 깨물고 핥고 몸을 부비는 것. 고양이의 한정된 표현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내 고양이. 

고양이의 눈은 크다. 콧대는 없는 편이고, 코위에는 하트 모양으로 털이 없는 부분이 있다. 그곳은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아주 진한 빨간색이었다가 아주 연한 분홍색이 된다. 

 

고양이의 눈이 큰 편이라 그런지 고개를 숙이고, 발로 얼굴을 비비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청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세수를 저렇게 할까. 발을 오므려서 얼굴을 가볍게 만지는 데, 그 모양 자체가 매우 귀엽다. 

 

그리고 고양이는 가볍고 흩날리는 깃털 종류의 것들을 좋아한다. 휴지조각이나 깃털, 그런 비슷한 종류의 것들을 발견하면 왼발로 쳤다가 오른발로 친다. 그렇게 발로 치고 있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휴지조각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그것을 또 고양이는 오랫동안 쫓아다닌다. 

 

 

고양이에게도 나름의 일과가 있다. 좁디 좁은 원룸의 이끝에서 저끝까지는 몇발자국도 되지 않지만 고양이에게는 어쩐지 엄청난 곳일테다. 신발장에서 책상앞까지 우다다다 뛰어왔다가 침대위로 점프를 했다가 다시 그곳에서 의자 위로 점프를 한다. 다시 신발장으로 달려간다. 신발장 앞에 있는 전신거울에 몸을 한번 쓱 본 후 다시 우다다다 돌아다닌다. 

 

고양이 자신의 하루의 일과 중 꽤 중요하다. 규칙도 있다. 달려나가면서 자신의 영역이 '자신'으로만 가득한지를 확인하는 작업일까. 바라보고 있자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는 행동을 몇번이고 며칠씩 반복한다. 

 

 

그 모습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가끔은 아무 의미없는 행동이지만 내 생활의 규칙이 돼 버려서 반복하는 것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각을 확인한 후 "으아아아아아아아아"를 크게 외쳐 세상에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린다. 핸드폰 게임을 실행해 나의 농장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고양이를 번쩍 들어올려 "냥냥아! 잘잤어? 너는 왜 내 발을 계속 물어뜯니? 대체 왜 그러는거야?"라고 말을 건다. 이건 날마다 반복된다. 고양이가 그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그냥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아름다운 남산길을 혼자 걸을 수 없어 야심차게 고양이를 낑낑 안고 올라왔다. 고양이는 이동장 안에서 어디론가 실려가면서 계속 '애옹 애옹' 울었다.

 

애옹거리는 고양이가 불쌍했다. 그런데 이미 진입한 남산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가야만 했다. 되돌아오기엔 너무 남산 중반까지 왔는걸. 

 

고양이를 이동장에서 꺼내놓고 가슴줄을 잡고 있다. 고양이는 킁킁대더니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사람이 지나가면 재빠르게 나무 뒤에 숨어버렸다. 

 

남산길을 수도 없이 걸었지만 이번 만큼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건적도 없다. 어떤 아주머니는 "어머, 이게 고양이에요 강아지에요? 고양이가 산책을 하나요?" 말을 걸었다. 

 

어떤 여성분도 남성분도 신기하듯이 쳐다본다. "고양이도 산책을 할 수가 있나요? 저도 고양이를 키우는데 한번도 밖에 데려나온 적이 없어요." 남산길에서 원래 대화가 이뤄지는 거였구나. 새삼 깨닫는다.

 

 

고양이가 자꾸 땅을 기어다니면서 으슥한곳에 숨으려고 했다. 차라리 계단 난간 위에 놓고 같이 걷는게 낫겠다 싶었다. 난간 위에서는 고양이가 엄청 잘 걸어다닌다. 사뿐사뿐. 좁은 곳도 균형을 잃지 않고선.

 

남산 길은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고양이가 시끄러운 소리에 매우 놀라서 움츠러 들었다. 내 품에 머리를 박은 채 벌벌 떨었다. 영락없이 사랑스러운 아기 고양이다. 

 

이동장에 넣어 놓고 근처 정자에서 쉬었다. 이동장 문을 열어 놓았는데도 전혀 나올 기미가 안보인다. 고양이가 안전함을 느끼는 곳은 안락한 동굴 같은 곳이구나. 나도 잠시 쉬었다. 

 

 

이제 비교적 너른 도보가 나와서 함께 발맞추면서 걸을 수 있겠다 싶었다. 1분 정도는 발맞춰서 걸을 수 있었지만 어찌나 산속으로 숨어들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발 맞춘 것은 소중한 1분일 뿐이다.

 

사람들의 온 시선을 다 받으면서 "어머어머 저기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1분을 걸었다. 

 

그렇게 1분 정도를 발맞추어 걸었는데 세상에. 다른 고양이가 남산길에도 있다. 

 

정말 길고양이가 앞에 버티고 있다. 이 길고양이는 남산길의 터줏대감처럼 딱 버티고 서서 사람들의 이동에도 피하지 않고 있다. 내 아기고양이는 겁쟁이라서 길고양이를 슬그머니 피해간다. 

 

세상 신기한 풍경이 펼쳐져 있는 셈이다. 빨간 가슴줄을 하고 있는 아기 고양이와 그 끈을 잡고 있는 어떤 여자. 그 여자 앞에 딱 버티고 있는 길고양이의 만남이다. 주위 사람들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발걸음을 멈춰 쳐다봤다. 

 

아. 이런 시선은 너무 민망하므로 아기고양이를 번쩍 들어서 재빠르게 길고양이를 지나갔다. 고양이 델고 나온 덕분에 남산길에서 시선은 다 받고 참 민망한 시간들의 연속이다. 

 

 

매우매우 힘든 남산길 산책을 하면서 내 아기고양이는 '산책냥이'는 아닌걸로 판명됐다. 그리고 이것으로 우리의 산책은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남산길은 나 혼자서 열심히 걸어다니기로 했다. 

밤에 자려고 누웠다. 고양이가 내 배에 올라온다. 깜깜한 와중에 밝게 빛나고 있는 내 폰의 액정화면을 고양이도 같이 들여다본다.

 

어라. 고양이는 빛을 좋아하니까. 

 

나는 폰의 조명을 켜서 벽을 비춘다. 벽에 비추는 일렁이는 불빛과 내 손의 그림자를 따라서 고양이의 시선도 머무른다. 

 

내 손의 그림자를 쫓아 고양이는 벽을 툭툭 친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실체가 뭔지 알 수 없는 그림자를 계속 쫓아다닌다. 너무 바보같은 2차원세계의 고양이다. 

 

고양이는 뭐를 잡으려고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이니까 뒤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쫓아 다닌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다. 

 

 

노트북 화면에서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도 움직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로 툭툭 친다. 마우스가 뭔지를 모른다. 화살표 표시가 뭔 의미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움직이니까 쫓아다닌다. 

 

2차원세계에 살고 있다. 고양이와 처음 같이 살게 됐을 때는 그게 너무 웃겼다. "고양이야. 이게 뭔지는 알아? 아무것도 아닌데. 왜 자꾸 속는거야?"

 

내가 속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 자꾸 쫓아다니네. 이걸 자꾸 쫓아다녀도 고양이야. 네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것이다. 그냥. 2차원세계에서 평범하게 노는 것이다. 뭔가를 쫓아다닌 것이 고양이의 본성이니까.

 

 

동물병원 아저씨는 말했다. 고양이한테 그런 시간이 하루에 30분이라도 꼭 필요하다고. 뭔가 쫓아다녀야 고양이의 사냥 본능이 충족된다고 말이다. 

 

나는 고양이랑 같이 누워있으면 고양이의 얼굴을 뜯어본다. 고양이의 입을 '치-이-즈'로 만들어서 날카로운 이빨을 살펴본다. 맹수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기 고양이다. 

 

고양이의 빨간 코를 살펴본다. 고양이의 눈 앞에 있는 눈꼽도 떼어준다. 고양이의 줄무늬도 관찰한다. 어느날은 고양이와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말을 가르쳐보려고 했다. 

 

고양이야. 고양이야. 안녕? 고양이야. 말해봐. 안녕? 허공에 메아리치는 의미없는 짓이었다. 너무 슬펐다. 네이버를 뒤적이다가 고양이의 뇌 부분에는 어떤 곳이 없다고 했다. 언어능력이 있는 어떤 곳이 없어서 고양이는 애옹애옹 애---애애---옹. 같은 음절만 길고 짧게 울 뿐이다. 

 

 

고양이는 2차원세계에 산다. 형태만 본다. 뒤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움직이는 형체를 따라서 산다.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내 뇌는 잠시 생각을 멈춘다. 내 뇌는 생각을 멈추고 고양이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내 뇌는 '고양이의 발은 우아하게 오므러지는구나. 고양이의 꼬리는 탐스러운 여자의 땋은 머리 같구나. 고양이의 눈은 매우 커서 아래로 치켜뜨면 청순해보이는구나.' 등등을 생각한다. 그러느라고 내 뇌는 잠시 쉰다. 

 

2차원 고양이와 3차원의 나는 그냥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고양이의 몸무게는 3kg다. 지금은 많이 컸다. 더 애기였을 때 고양이는 정말 손바닥만했다. 

 

고양이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 손바닥만한 고양이는 숨어있었다. 나는 대체 고양이가 어디 숨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고양이야. 고양이야" 불러봐도 안나온다. 

 

침대의 이불을 잡고 탁탁 털었다. 내가 털어버린 이불에서 손바닥만한 고양이가 튕겨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불쌍한 고양이다. 얼른 잡아서 안아준다. "미안해. 왜 이불 속에 숨었어. 내가 이불을 털려고 한거지 너를 내동댕이 치려고 한건 아니야. 어디 다친데는 없니?" 라고 말을 걸었다. 

 

고양이는 커다란 눈을 끔벅 끔벅이면서 괜찮다고 가만히 품에 안겨있었다. 고양이를 안고 쓰다듬어 주다가 고양이를 침대에 내려 놓는다. 

 

"고양이야. 이불속에 숨는걸 좋아하면 앞으론 이불을 탁탁 털지 않을게. 그러니까 너도 부르면 빨리 달려나와주면 안되겠니?" 라고 말을 걸었지만 고양이는 큰 눈을 끔벅이며 몸을 뒤집고 애교를 부릴 뿐이다. 

 

 

내 고양이는 정말로 화를 잘 안낸다. 내 고양이는 화를 나거나 삐질 줄 모른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 문을 열었는데 고양이가 뛰어나오지 않았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녀석이 아닌데. 항상 마중나오는 녀석인데 이건 뭔가 일이 생긴걸까? 

 

 

집안을 곳곳을 뒤졌다. 고양이는 벽시계 뒤 공간에 빠져있었다. 그런 곳에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다. 불쌍하게 애옹 애옹거리고 있다. 너무 불쌍하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 

 

얼른 끄집어내서 품에 안고 안아준다. 고양이는 그렇게 오랜시간 공간에 갇혀있었는데도 전혀 삐지지도 않고 화도 안났다. 내 품에 안겨서 다시 금방 안정을 되찾고 그릉그릉거린다. 정말 천사의 성격을 지녔다. 이럴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고양이라서 자꾸 내 손에 튕겨져 나가고 내 발 밑을 멤돌다가 나한테 밟히기도 한다. 자다가 나한테 깔리기도 한다. 너무 불쌍하다. 

 

 

 

서울 본가에 살 땐 따로 알람을 맞춰놓지 않았다. 자기 전에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자면 그뿐이었다.

 

대전에서 홀로 살기 시작하자, 잠이 들면서도 믿을 구석이 없었다. 핸드폰 알람 10개에 눈을 떠야만 한다.

절대 지각해선 안된다고 잠이 들면 과도한 긴장 때문에 새벽에 자꾸 잠에서 깼고, 차라리 마음 놓고 자자고 하면 알람소리를 못 듣기도 했다.

 

"일어나 일어나"하던 그 시끄럽던 엄마의 소리가 있어 밤에 푹 잘 수 있던걸 여태껏 몰랐다.

나를 물면서 깨우는 아깽이녀석.


내 방에 새로 들어 온 작은 아기 고양이는 새벽 5시만 되면 나를 깨우기 시작한다. 

 

이불을 덮고 자다가 발이 이불 밖으로 나오면 그 발을 문다. 그래도 깨지 않으면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을 문다.

 

그러면 나는 이불 안으로 손과 발을 집어넣어 아기 고양이가 손과 발이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가 다시 손과 발이 이불 밖으로 삐져 나오면 고양이는 다시 물기 시작한다. 그러면 눈을 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나의 아기 고양이는 새벽 5시에 눈을 떠서 내가 일어날 때까지 물기를 반복한다.

 

내 손을 자꾸 깨무는 내 고양이
.


어느 날은 고양이가 무는 것이 감미로운 애인의 손길 같다가도, 어느 날은 좀 더 자게 내버려두지 싶은 잔소리쟁이 같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물어대는 고양이의 버릇을 고쳐야겠다 싶었다.

 

내 손과 발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인터넷을 뒤적 뒤적 찾아보니, 고양이가 물 때는 고양이 코에 딱콩을 때리거나, 몸을 흔들거나, 코에 바람을 넣으라는 조언이 눈에 띈다.

고양이가 내 손을 물던 어느 날, 나는 고양이의 뒷목을 잡고, 한 손으론 코에 '딱콩'을 했다. 엄지와 셋째를 동그랗게 말고 튕겨서 한대 쳤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 내 손을 물기 시작했다.

 

내 손에 붙잡혀서 우울한 고양이.

다시 딱콩. 고양이는 다시 온 얼굴의 힘을 다해 찡그린다. 

 

뒷목은 내게 잡혀있고, 두 발은 필사적으로 얼굴을 막으면서 저항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내 손을 계속 물고 있다. 

 

다시 딱콩. 고양이는 또 모든 얼굴의 근육을 동원해 찡그리면서 내게 괴로움을 호소한다. "그러니까 물지 말란 말야" 중얼대지만 고양이는 한국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고양이가 한국 말을 배울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 고민을 해봐도 고양이에겐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뇌 같은 건 없는 게 분명하다. 고양이 목에서 나오는 울음은 '야옹'이 전부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딱콩'밖에 답이 없는 걸까.

나는 결혼도 안했고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다. 심지어 연애도 안하고 있는 슬픈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런데 고양이가 내게 모성애를 알려준다.

 

나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냥 가만히 있는 고양이인데 안쓰럽고 불쌍하다. '혼자 오래 있어서 외로운걸까. 고양이는 왜 이렇게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걸까.'

 

동물병원에 갔던 날, 수의사쌤한테 "내가 집을 오래 비워서 그런지 고양이는 제 발을 그렇게 쫓아다녀요. 밖에 나가려고 하면 못나가게 발을 물고 야옹거리고 난리에요."라고 말했다. 

 

수의사 쌤은 "가만히 있어도 무릎 위에 올라오나요? 그놈 참. 강아지로 태어나야할 녀석이었는데. 집 오래 비워서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성격이 애교가 많은 애인거에요"라고 대답해줬다. 

 

 

내 고양이는 정말로 강아지 DNA가 있다. 나랑 발을 맞춰서 집안을 돌아다니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침대에 누워서 자려고 하면 내 배위에 올라와서 같이 잠에 든다. 고양이야. 너 이제 3kg 넘는건 아니..?

 

나는 아침에 일찍 회사에 가서 밤에 늦게 집에 온다.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워라밸은 밥말아먹고 없다. 집 현관에서 번호판을 띡띡띡 누르면 고양이가 뛰어 나와서 현관문 앞에서 대기한다. 띠띠띠. 누르는 소리에. 우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집안에서 들린다. 

 

 

내 등장에 고양이는 앞 발을 쭉 편채 기지개를 한번 편다. 내 다리에 머리를 박치기하면서 반가움을 표현한다. 나 좀 보시게. 하면서 뒤로 발라당 누워 자신의 귀여움을 한층 뽐낸다. 

 

난 이 요물 덩어리를 번쩍 들어안고 쓰다듬는다. 그럴 때 고양이가 얼마나 불쌍하지 모른다. 왜지. 왜 불쌍하지. 안쓰럽지.

 

 

고양이가 나보다 빨리 죽으면 슬퍼서 어쩌지. 이런 생각이 너무 자주 든다. 고양이가 너무 불쌍하다. 고양이의 수명이 나랑 비슷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고양이가 불쌍할까. 나를 남겨 두고 먼저 가버릴 고양이를 그리워할 내가 불쌍한걸까. 그냥 고양이와 나 둘다 불쌍하다. 

 

사랑이 이런걸까. 고양이를 사랑하는 내 사랑은 뭘까. 모성애일까. 내 귀여운 아가 고양이다. 

아름다운 남산을 걸었다. 내 고양이도 데려 와서 나란히 발 맞추며 걸으면 어떨까. 고양이에게 이 아름다운 남산을 보여주고 싶다. 

 

내 고양이는 태어난지 얼마 안돼 분양소로 갔고 2개월만에 내 품으로 왔다. 고양이가 머물렀던 곳은 태어나서 분양소와 내 집밖에 없다. 

 

'고양이야. 여기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단다. 너에게 나무와 풀, 흙과 바람을 보여주고 싶구나.'

 

나는 야심차게 하네스를 샀다. 하네스를 완강히 거부하던 내 고양이다. "싫다고!!"하면서 고양이는 하네스를 도망다녔다. 우다다다. 

 

어느 날이었다. 고양이랑 놀고 있었는데 고양이의 정신을 빼놓은 사이에 하네스를 채웠더니 놀랍게도 얌전히 있는 것이다. 그 뒤에도 여전히 하네스를 채워도 얌전히 있다. 천사같은 내 고양이다. 

 

 

고양이와 산책을 하기 위해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고 집을 나섰다. '고양이야. 너 근데 그동안 많이 컸구나. 2키로 넘는거지?'

 

노트북도 2키로가 넘으면 무거워서 못 들고 다니는데 남산까지 고양이를 데려갈 생각을 다 했을까. 

 

어차피 나선 길이므로 남산까지 낑낑대며 올라갔다. 어느 정도 사람이 드물고 한적한 곳에서 고양이를 꺼내놓았다. 나의 사랑스럽고 얌전한 고양이는 짐승 특유의 본성으로 여기저기 킁킁대기 시작했다. 

 

킁킁대면서도 어딘가에 숨으려고 한다. 사람이 지나가거나 버스 등이 지나가면 엄청나게 겁을 먹은채 산 모퉁이에 있는 나무로 숨어버렸다. 

 

인도로 발맞추어 걷는 것은 고사하고 산속으로 숨어들어가기 바쁜 녀석이다. 

 

 

이래선 안된다. 이래선 다시 이동장에 넣어서 집으로 가는수밖에 없는 걸까. '고양이야. 뭐가 그렇게 겁이나니. 내가 옆에서 널 보고 있잖아. 날 좀 믿어줘.' 라고 말을 건네지만 고양이는 듣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해달라고 원망섞인 눈으로 쳐다보다가 나무 틈으로 숨기에 바쁜 것이다. 산책이 이렇게도 어려운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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