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랑 매일 대화를 하다보니 고양이가 사람인줄 가끔씩 착각을 한다.

 

내 방에서 나는 주로 침대에 누워있는다. 고양이도 옆에 와서 앉아있다.

 

노트북을 켜놓고 이것저것 하다가 고양이한테 말을 건다. "고양이야 이것봐봐. 대박이야. 진짜 재밌다."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는 고양이.

 

고양이는 말을 알아들은것처럼 노트북앞에 머리를 갖다댄다. "그렇다고 그렇게 머리를 아예 갖다대면 드라마를 볼 수가 없잖아. 이리와."

 

고양이는 오라는 말은 잘 안듣는다. 그럼 나는 고양이를 번쩍 안아들고 꼭 껴안는다. 고양이는 도망가지도 않고 내 품에 안겨있다.

 

나는 고양이 얼굴을 가까이서 쳐다보면서 "저 드라마 대박치겠다. 진짜 재밌어. 나도 저렇게 하고 싶어. 현실에서 게임하고 하면 엄청 재밌지 않을까?"라고 말을 한다.

 

 

고양이는 맞다면서 코를 내 코에 부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재밌다.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털이 자꾸 빠져? 너는 왜 그러는거야?" 라고 물어보면 고양이는 '그건 나도몰라'는 표정을 짓는다.

 

고양이와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고양이는 나랑 대화를 하다가도 어디론가 달려간다. 

 

고양이는 뭔가를 발견하면 엄청 빠르게 어디론가 질주한다. 집 안을 굉장히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쫓고 있다.

 

나는 저런 고양이다운 모습을 보면 그 때 깨닫는다. '아 쟤 고양이였지. 사람인줄 착각했네.'

 

 

고양이는 내 방에 들어오지 않고 가끔 나의 행동을 살핀다. 자신의 몸은 숨긴채 고개만 살짝 빼놓고 말이다.

 

"고양이야. 거기서 뭐해? 이리오지 그래? 얼른 와"라면서 손짓한다. 내 말때문이 아니라 내 손의 움직임때문에 고양이는 내게로 온다.

나에게 다가오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나랑 같이 있는 고양이에게 난 다정하게 말을 건다.

 

"넌 왜 자꾸 눈꼽이 껴? 코도 촉촉하네. 왜그래?"라고 말걸면 고양이는 '몰라'라면서 내 품에 안겨온다.

이럴때는 또 사람인줄 착각하고 있다가 고양이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제야 고양이구나 싶다.

 

 

고양이한테 물어봤다. "어떻게 태어났어?"

 

하나님이 내 고양이를 창조할 때 주황색 물감을 쓱쓱 발랐다. 좀 더 진한색으로 줄무늬도 넣었다. 

 

'색깔이 너무 진한 것 같은데.' 고양이를 물에 넣고 한번 빨았다. 색깔이 조금 빠져 연한 주황색이 됐다. '음 이정도 색깔이 딱이군.'

 

고양이를 탁탁 턴다. 고양이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고양이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야겠어.' 고양이를 볕이 좋은 햇볕 아래 빨래 줄에 걸어놓았다.

 

고양이는 몇시간 동안 따뜻한 햇볕 아래 널어져 있었다. '음. 딱 좋아.' 하나님은 중얼중얼. 고양이의 털을 보송하게 해주려고 고양이에게 드라이기를 쏘아준다. 

 

고양이를 들여다보니 덩치가 좀 큰 것같아서 덩치를 조금 줄이기로 한다. 그래서 주황색 물이 좀 빠진 작은 아기 고양이가 생겨났다. 고.. 고양이가 말해줬다. (믿거나 말거나)

주황색 물이 빠진 아기 고양이.

고양이가 이렇게 정교하고 공을 들여서 탄생했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고양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런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좀 주황색 물이 빠졌구나. 색깔이 되게 연하네.

 

그래서 '치즈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고양이는 차별점이 있어! 색깔이 매우 연하다구.' 혼자서 생각해본다. 

 

내 고양이는 '먼치킨 롱레그'. 먼치킨 잡종이란 뜻이다. 그래서 튼튼하다. 다리가 짧은 숏레그가 원래 순종이라고 한다. 

 

티비에서 배우 윤균상씨가 삼시세끼에서 먼치킨 숏레그를 델고 나와 인기를 끌었다. 내 고양이는 다리가 길다. 귀여운 맛은 좀 덜 해도 매우 우아하다. 

 

나이가 조금씩 먹으면서 물빠진 주황색이 색을 찾는 것 같기도하다. 물을 많이 빼서 창조됐으나 나이가 들면서 본래 색깔을 찾는 것일까. 

 

그래도 여전히 연한 주황색의 고양이다. 귀여워. 

 

 

고양이는 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가 몇군데 있다.

 

내 방 창틀. 여기에 올라와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 의자. 여기에 엎드려서 잠을 즐겨 잔다.

 

 

스크래쳐하는 의자도 좋아한다. 스크래쳐를 따로 사긴했는데 의자에 스크래치를 해서 그냥 스크래쳐공간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침대. 내 침대에 웅크려서 잔다.

 

 

내가 잠을 자려고 누우면 고양이는 내 배위에 올라온다.

 

마치 불을 꺼놓으면 어린아이가 안식처를 찾아 엄마 품에 파고드는 것처럼.

차가운 겨울 날씨에 동굴을 찾는 것처럼. 캄캄한 밤에 불을 피워 놓은 곳을 찾는 아기 고양이.

 

내가 활동을 멈추고 누우면 내 배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난 고양이의 머리부터 등까지 쓰다듬는다.

 

 

고양이는 골골 댄다. 뱃속 깊은데서부터 만족감을 내비친다.

 

가끔 고양이가 내게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난 고양이를 번쩍 안아든다.

 

내게로 와.이제 같이 자야해. 잘 시간인걸.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놓는다.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다시 잘 준비를 마치는 고양이다. 고개를 숙이고 내게 파묻는다. 다리도 옆으로 누워서 잘 채비를 마쳤다.

 

고양이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언제까지나 쓰다듬고 싶다.

 

난 잠에 들고 고양이는 내 발 밑으로 이동해서 잠이 든다.

 

고양이는 완벽하다. 예쁘고 귀엽다. 부드럽다. 따뜻하다.

 

내 고양이는 나를 졸졸 쫓아다니고 애교도 많다.

 

고양이야. 안녕? 고양이는 너무 예뻐. 라고 나는 늘 말해준다.

 

 

까탈스럽지도 않다. 화장실을 바꿨는데 바로 적응했다.

이동장도 잘 들어간다.

 

밥도 잘먹는다. 심지어 물까지 잘 먹는다.

 

고양이는 날 잘 물지도 않는다. 물고싶어도 참고 핥을 뿐이다. 가끔 물긴한다.

 

또 고양이는 늘 마중나와있다. 문소리가 나면 뛰어나온다. 그리고 발에 머리를 부빈다.

 

 

고양이를 끌어안는다. 고양이 안녕?

 

고양이를 데려온 초반에는 정말로 고양이가 보고싶었다. 매순간. 집에 가고싶어죽는줄 알았다.

 

지금은 그정도에선 벗어났다. 그냥 예쁘구나. 하고 감탄은 계속 할뿐이다.

 

 

그냥 고양이가 좋다. 이제는 고양이가 없는건 생각할수가 없다.

 

나는 고양이를 잃어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만약?그렇다면?으. 끔찍해.

 

고양이가 오래살면 좋겠다. 매우 오래. 가끔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글을 보는데 그럴때마다 마음이 매우 아프다.

 

고양이는 정말 영혼이 없을까? C.S.루이스는 키우던 개가 죽자 성경을 다 뒤져 개를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근거들을 찾아냈었다.

 

흠. 그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고양이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잃어버리지도 않아야한다. 절대.

 

 

고양이한테 애교를 부린다는 사실을 깨달은건 동물병원에서였다.

 

정상적인 여자의 말투로 수의사쌤이랑 얘기를 하고 있었다. 쌤이 고양이 꺼내놓으라고 하는순간. 갑자기 애교가 나오기 시작한다.

 

 

"고양이야 오느라 힘들었쬬오? 이제 나와도 돼요. 무서워요? 괜찮아요  나오세요"

 

내 목소리는 완전 애기말투에 우쭈쭈 말투가 됐다. 수의사쌤이 날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아. 내가 애교를 부리고 있었구나. 진짜 나도 몰랐다.

수의사쌤의 뜨악한 눈으로 나를 보니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다시 정상적인 여자의 어투로 돌아왔다. 톤도 낮아졌다.

 

"제 고양이가 아직 몇개월 안되서요. 애기에요."라고 수습을 한다. 정상적인 여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퇴근하고 집에 오면 고양이한테 엄청 애교를 부린다. 새삼 깨닫는다.

 

"고양이야~~ 나 집에 와쬬오오오~ 잘 있었오오오??" 라고 말하면서 마중 나와 있는 고양이를 안아서 쓰다듬어 준다.

"고양이야아아~ 나 넘 힘들어쬬오오오오 잘있었어요??? 뭐해떠여??? " 라고 한다. 고양이는 머리를 부빈다. 대답은 안하지만.

 

마치 어린 애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가를 보면서 애기처럼 "우리 애기 밥먹어떠요?? 왜 이렇게 이뽀요?"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 같다.

그 엄마들도 애기를 대하고 있으니 애기처럼 된다. 나는 동물을 대하는데 왜 ..그렇지?

 

 

여튼 집에 혼자 있고 고양이랑 둘이 있으니까 그런건 상관이 없다. 고양이는 침묵의 사나이니까 내가 애교를 부린다는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다.

동물병원 갈 자꾸 정신을 놓는다. 수의사쌤은 동물을 환자로 대한다. 사무적이다. 다만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나랑 비슷한 것 같다.

 

직원들도 고양이를 끌어안고 한껏 귀여운 목소리로 "우리 이쁜 고양이~~~말잘듣쬬오~~ 이리오세요오~~몸무게 재야대요오~~" 말을 건넨다. 나랑 별 다를 게 없다.

 

내 고양이는 침묵쟁이다. 예쁜 애기 고양이한테는 누구나 애교부리게 되나보다.  내가 이렇게 다정해지는 때는 고양이를 상대할 때 뿐이긴하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생명체는 고양이랑 나랑 둘뿐이니. 난 고양이 앞에서 나를 내보인다.귀여운 고양이야. 우쭈쭈.

 

 

 

 

 

 

고양이가 말썽을 피웠다. 얼마전 새로 노트북을 샀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의 임직원 몰에서 20만 원 정도 싸게 구입했다.

 

싸게 구입해서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내 노트북의 자판기 위에 마우스가 끼어져 있었고 뚜껑이 덮였다. 그냥 살짝 덮어져 있었다.

 

그 위로 고양이가 점프를 해서 올라갔다. 노트북 사이에 끼인 마우스와 고양이의 무게 덕분에 노트북 액정이 박살났다.

 

 

서비스센터에 가서 보니 수리비가 20만 원이 나왔다. 결국 제값에 노트북을 사게 된 셈이다.

 

아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고양이 덕분에 20만 원이 날라갔다. 그러나 뭐 화는 나지 않았다. 나는 무한대적 관용을 품고 있다. 고양이가 뭔 짓을 해도 나는 고양이를 용서한다.

 

 

고양이는 말썽을 조금씩 피운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까 청소기가 하루종일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거나.. 갑자기 세탁기가 혼자서 세탁을 하고 있다거나..

 

집에 있는 화분의 잎사귀나 꽃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있고 화분이 박살나서 깨져있다.. 그릇들은 깨져서 유리조각으로 변해있다거나 등등..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는 분노같은 것은 없다. 그냥 '고양이야. 왜 그랬어. 귀찮다. 치우기 너무 귀찮아.'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고 있는데 가끔 내 사랑에 내가 놀란다. 고양이에게 한없는 애정과 관용을 보여주는 내 마음이 놀랍다. 어쩌면 이렇게 짜증도 안내고 화도 안내고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걸까.

 

 

내 자신에게도 나는 화를 자주 내고. 또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화를 내며..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한테도 짜증이 나는데.

 

내 마음에 둥둥 떠다니는 작은 사랑의 조각은 고양이에게로 모아진다. 나의 흩어져 있는 사랑의 조각은  고양이한테 모아져서 좀처럼 보이지 않던 배려와 관용이 생기게 된다.

 

어쩌면 내 사랑의 조각들은 내 마음의 귀찮음과 배려없음 짜증과 분노로 차있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집에 오면 비로소 얻게 되는 평화로 사랑의 조각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나의 사랑에 내가 가끔 감동을 한다. 감동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미움도 없애보려고 노력한다. 고양이의 실수는 관용하면서 나 자신을 비롯한 타인의 실수에는 예민하지 말자고. 뭐 그런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내 고양이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왼쪽 앞발을 안으로 집어 넣는 것이다. 생후2개월부터 그랬다.

 

이 특이한 버릇은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다. 한 친구가 발견해줬다. 이 친구는 우리 집에 놀러와서 나랑은 안 놀고 고양이랑만 두어시간을 놀더니 이 버릇을 발견했다.

 

내 고양이의 특이한 포즈를. 고양이는 왼쪽 발을 안으로 집어넣는다.

 

왼쪽 발을 안에 집어넣는 고양이.

 

그 버릇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내가 억지로 고양이의 왼발을 밖으로 빼어 놔도 다시 집어넣는다. 건강상 문제는 없어보이니 냅두기로 한다. 이것도 내 고양이의 취향이겠지.

 

내 친구는 고양이랑 놀더니 집에 가기 매우 싫어했다. 친구는 이윽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됐다. 그 다음날 마트에 가서 간식거리를 잔뜩 사갖고 또 놀러왔다. 나랑은 안놀고 "이모가 또왔어. 고양이 안녕?" 말을 걸면서 고양이랑만 논다.

 

사진이랑 동영상도 잔뜩 찍어갔다.

 

왼쪽 발을 숨긴 고양이.

 

다른 친구도 우리집에 놀러와서는 고양이에게만 시선을 고정한다. 고양이 간식을 또 사와서 고양이의 환심을 얻으려고 한다. 나랑도 놀기는 했는데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처음 보면 너무 귀엽다. 발로 세수하는 것도 귀엽고. 사냥 본능이 나와서 장난감을 사냥하려는 것도 귀엽다.

 

 

나도 고양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넋을 놓고 바라봤다. 너무너무 예뻐서. 왜 만화영화에 고양이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장난감도 엄청 많이 사고 사냥놀이도 엄청 자주 했다.

 

불을 꺼놓고 그림자 놀이도 하고. 그림자를 쫓아다니는게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이제는 고양이가 노는 모습을 보는게 너무 익숙해져서 차라리 웃긴 포즈를 취하는게 더 웃기다. 웃긴 얼굴, 웃긴 행동 이런거 보는게 더 웃겨서 혼자서 깔깔 댄다.

 

아니 왜 이러고 있는거야?

 

고양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나도 좋고 친구들도 좋아하는 만큼 고양이 카페도 생기는 거고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도 생기는 거겠지? 유튜브에서도 고양이 동영상이 인기가 많은 것일 테고.

 

나도 고양이의 귀여운 순간들을 사진속에 잔뜩 담아놨다. 고양이는 진짜 너무 귀엽다. 귀여워. 왜 그렇게 귀여울까 고양이는? 동물 중에서 제일 귀여운 것 같다. 그리고 내 고양이가 세계에서 제일 귀엽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양이야 얼음땡하는거야?
 

내 '집돌이'고양이는 집만 엄청 좋아한다. 내 생각에는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아 보인다. 밖에도 나가고 바람도 쐬고 새로운 곳도 구경하는게 재밌지 않을까?

 

 

"고양이야. 집에만 있으면 너무 심심하지 않니? 밖에 나가볼래?"라고 고양이한테 말을 걸었지만 고양이는 "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라고 말할 뿐이다.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보려고 했다. 고양이를 안고 현관문을 나서자 고양이가 겁에 질려버렸다. 편안히 안겨있다가 갑자기 두발로 내 어깨를 꽉 잡는다.

 

 

고양이는 낯선곳이 무섭다. 낯선 소리에도 예민하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너무 무서워하면서 내 어깨를 꽉 잡고 내 품에 파고든다.

 

고양이는 집안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밖에 산책을 같이 나가려는 꿈은 접었다. 고양이는 그냥 집에만 있어도 안심심하다고 한다. 내 예상과는 다르지만.

 

 

그래서 집돌이 고양이한테 집에만 있어도 좋을 수 있도록 캣타워를 사줬다. 그런데 망한 것 같다. 고양이가 캣타워에 비해 생각보다 너무 크고 무언가 불편한지 캣타워에 스스로 올라가지 않는다.

 

올라가기에는 뭔가 불편한게 틀림없다. 고양이가 너무 좋아서 선물을 줬건만 고양이는 여전히 내 책상의자에만 앉아있다.

 

고양이가 너무 크다.

 

고양이의 관성도 정말 대단하다. 딱 정하면 그곳만 좋아하는 고양이의 관성.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책상의자에만 앉아있을까.

 

고양이의 관성이 그렇게 대단하면 사실 좋은 것 같다. 고양이가 나를 딱 집사로 정해서 나만 졸졸 쫓아다니니까 관성 그대로 죽을때까지 나만 쫓아다니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그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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