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눈을 뜬다. 창밖 풍경이 보이는데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햇빛은 들어오는데 아름다운 고양이가 우아하게 앉아있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나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내 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사치다. (잠을 푹 못 잤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아름다운 고양이는 눈을 크게 뜨고, 아니 원래부터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고양이는 나랑 수면시간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내가 잘때 같이 자고 내가 일어나면 같이 일어난다. 

 

아침에 핸드폰 알람소리가 들리면 고양이는 그 소리를 듣고 누워있는 내 배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릉그릉 거리면서 나를 깨운다. 

 

고양이는 "이 알람 소리가 들리면 네가 일어나는 시각이 됐단 걸 나는 알아. 근데 너는 왜 안 일어나고 누워있니"라면서 빨리 일어나라고 내 손을 깨문다. 

 

나는 알람소리를 듣고 한번에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늘 고양이의 잔소리를 듣는다. 고양이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기 때문에 내 위에 올라와서 자리를 잡기만 해도 이미 잔소리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내게 가까이 오면 더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아름답고 귀여운 고양이가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서 나는 고양이를 만지고 있으니 더 나른해질 뿐이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쳐다보고 있으면 그냥 이렇게 계속 사치를 부리고 싶다. 일어나기는 더욱 싫어진다. "고양이야. 너는 왜 이렇게 부드러운 털이 있니."

 

고양이처럼 온몸이 다 털로 뒤덮여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따뜻할까. 고양이랑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몇분간을 노닥거리다가 어쩔 수 없을때까지 누워있는다. 

 

그리고 회사로 나선다. 회사는 언제나 가기 싫다. 왜 일까. 어떤 사람은 일이 취미라면서 심심해서 일한다고 했다. 나는 놀게 너무 많아서 탈인데. 

 

 

토요일은 거의 하루종일 잠을 잔다. 일주일 동안 잠 부족에 시달리다가 늦잠을 잔다. 11시쯤 내 방에 들어오는 빛을 맞는다. 창문으로 보이는 빛줄기와 나무. 그리고 가지런히 놓아둔 내 장식품들. 그 사이의 한마리 고양이. 

 

그럴 때면 '어쩌면 성공한 인생'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완성된 것 없는 삶인데 그냥 이순간은 그런 느낌에 충만해진다. 그리고 고양이를 부른다. "고양이야. 야옹아."하면 고양이는 언제나 뒤돌아 나를 쳐다본다. 

 

 

단잠을 자고 있었다. 쨍그랑.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내 방 창문으로 돌을 던져서 창문이 깨진걸까. 아니면 운석이 날라와서 지구가 곧 멸망하는 걸까. 대체 이 쨍그랑 소리는 뭐지?

 

눈을 뜨고 창문을 살펴보니 멀쩡하다. 대체 뭐가 깨진 거지 ? 

 

바닥에 화분이 어지럽게 하나 놓여있다. 부엉이 모양의 장식품도 있는데... 설마 뭐가 깨진거지. 부엉이 저건 비싼건데..안돼..ㅠ_ㅠ

 

 

다행히 화분이 깨졌다. 화분은 사실 가짜 화분이다. 다이소에서 2천 원 주고 산 거다. 유리병 안에 가짜 식물이 들어있는 모조 화분이다. 

 

유리조각이 흩어져있을게 뻔하다. "고양이야. 대체 왜 그랬어? " 하고 크게 말을 걸었는데 고양이는 눈을 크게 뜨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을 뿐이다. 

 

아. 바보 고양이. "바보 고양이야. 너 왜 저거 깨뜨렸어? "라고 말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다. 고양이는 "이거 내가 한거 아닌데. 화분이 스스로 떨어져서 깨진 거"라고 하는데.. 쩝.

 

난 아무것도 몰라요.

 

일단 유리조각을 치우기가 너무 귀찮으니까 고양이를 방 밖으로 내보내기로 한다. 고양이를 거실에 내놓고 방문을 닫았다. 고양이가 구슬프게 운다. 애-옹. 애-옹. 고양이가 '방안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졸리니까 잔다.

 

잘만큼 자고 일어나서 유리조각을 치웠다. 방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고양이가 들어온다. "고양이야. 앞으로는 어떤것도 깨뜨리지 마. 알았어 바보고양이야?" 라고 하니까 고양이가 바보 아니라고 하면서 머리를 비빈다.

 

 

그런데 고양이는 바보가 맞는 것 같다. 고양이는 내 손보다 내 발을 더 좋아한다. 내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조금 가만히 있다가 발밑으로 내려가서 내 발에 머리를 문댄다. 

 

고양이한테 "이건 손이고 이건 발인데 발은 좀 더러울 수도 있는데 손한테 오지 그래?"라고 말을 걸어도 "별로.."라면서 발이 좋다고 한다. 

 

고양이는 침대 밑에 삐져나와있는 내 발에 머리를 문대는걸 좋아한다. 고양이는 땅바닥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내 고양이한테 가끔 "바보 고양이야 안녕"이라고 말을 건다. 고양이는 바보스러운 측면이 사실 되게 많다. 고양이는 아니라고 우기지만..

 

 

마냥 귀엽기만 한 고양이지만 고양이와 나 사이에도 위기가 있었다. 갓 태어난 예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졌지만 고양이는 생명체였다.

 

고양이는 가만히 있는 인형이 아니다. 물론 인형처럼 아주아주 예쁘지만 살아있고 움직이고 뛰어다닌다. 

 

나의 아기 고양이는 갓 태어난 생명체라 그런지 생기가 넘쳤다. 우다다다 하면서 작은 집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얼마나 재빠른지 모른다. 

 

고양이가 여기 있는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이동해버려 저 구석에서 나를 보고 있다. "고양이야 혹시 눈 깜빡하는 사이에 공간이동을 하는거니? 어떻게 저기에 있어?"라고 말을 걸어도 눈만 끔벅끔벅한다. 

 

정말 고양이가 공간이동을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을 5번은 한 것 같다. 매우 빠르다. 

 

내가 인형처럼 예쁘지. 하지만 나는 살아있어.

고양이의 엄청난 활동성은 잠을 자야할 때 제일 골치가 아프다. 왜일까. 새벽마다 고양이는 미친듯이 뛰어다닌다. 우다다다다.

 

방 끝에서 방 끝까지 달린다. 달리기 기록을 재는 걸까. 방의 넓이를 가늠하는 걸까. 뛰어다니면서 전력질주할 때 어느정도 넓이인지 재는 걸까. 

 

고양이의 달리기는 꽤 오래 지속된다. 매우 시끄럽다. 내 존재가 여기 살아있소, 외치는 듯이 열심히 달린다. 그렇게 하루에 써야할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나면 내 배 위로 올라온다. 

 

내 배 위에서 힘이 다 빠져서 고양이는 그릉그릉거린다. 그릉-그릉. 그래 이제 나도 좀 자자. 좀 이제.. 우리 조용히 잠을 자자. 

 

 

아무것도 모르는 태어난 지 2개월밖에 안된 내 고양이는 가끔 사고를 친다. 정말 너무 어려서 고양이가 사고를 치는 것은 다 용납할 수 있다. 그래도 가끔은 고양이가 바보같이 사고를 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나는 긴 미역처럼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회사 다니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지 내 몸은 축 늘어진 미역이 된 것 같았다. 내 미역 같은 머리 카락이 침대위에 흔들리자 고양이는 그 움직임을 감지했다.

 

뭔가 사락 사락 흔들리니 고양이의 본능이 살아났다. 고양이는 흔들리는 내 머리카락을 꼭 발로 쳐야 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본능은 얼마나 힘이 센지 멈출 수 없다. 고양이는 내 머리카락을 치고 또 친다.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쳐야 하는데. 고양이가 머리카락을 치니까 움직이고 움직이니까 또 고양이가 친다. 고양이가 그렇게 장난감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매우 좋지만 그 장난감이 내가 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고양이야 이제 그만해"라고 말을 했지만 고양이는 한국말을 못한다. 내 말을 무시하고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 뿐이다.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것은 널브러져 있을 때 뿐이 아니다. 내가 자면서 이리저리 뒤척이면 고양이가 내 머리카락을 표적으로 삼는다. 고양이는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다가 혼자서 엄청 신이 나서 발톱을 세워버렸다. 

 

세운 발톱으로 날카롭게 내 이마와 눈가를 쓱- 할퀴었다. 

 

"으아아악!" 너무 아프다. 뭔가 피가 나는 느낌도 든다. 

 

재빠르게 거울로 눈알을 살펴본다. 다행히 눈가의 피부가 조금 찢어졌으나 눈알은 멀쩡하다. 정말 놀랐다. 

 

0.1cm정도가 찢어졌다. 그러나 매우 아팠고 너무 놀랐기 때문에 이 놈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됐다. 앞으로 한 번 더 나를 할퀴게 둘 수는 없다.  

 

"절대 나를 할퀴면 안돼!! 알았어???"라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두번째 손가락으로 고양이 얼굴 앞에서 삿대질을 했다. 위협을 하는 표정과 목소리로 겁을 줬는데 알아듣기는 한걸까. 

 

"할퀴지마!"라고 말을 하지만 고양이는 '한국어 못 알아들어'라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다.

 

그 다음부터 고양이가 할퀸적은 없지만 깨물거나 하면 무서운 목소리를 내고 삿대질을 했다. 

 

무서운 포즈와 무서운 목소리를 내면 말은 못알아들어도 상황 파악은 되는 걸까. 

 

고양이는 말을 잘 알아들은 듯 하다. 여러번 고양이에게 경고를 했다. 나를 깨물때마다 무섭게 했다. 그 뒤부터 고양이는 나를 핥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 깨물지는 않는다. 

감동을 받은 순간도 있다. 고양이가 내 무릎에 올라오려고 두 발을 쫙 펴고 발톱을 내보였다. 발톱을 세워 내 허벅지에 올라오려니 날카로운 발톱은 내 허벅지를 할퀸다. 

 

나는 고양이한테 "아아아!!! 아프다고!!"라고 말했더니 고양이가 갑자기 발톱을 쑥 집어넣는다. 

 

"내 말을 알아들었니? 착한 고양이야? 바보라고 한거 취소한다."고 나는 금세 칭찬했다.

 

고양이는 내 무릎에 올라오려고 할때는 발톱을 넣는다. 정말이다. 정말로 고양이는 내게 올때마다 날카로운 발톱을 안으로 집어넣고 온다. 정말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폭력을 겪는다. 때리는 거 말고도 말로도 상처를 깊게 받을 수 있다.

 

다들 기쁘고 행복한 가운데 나만 홀로 있어 소외감도 느낀다. 모두다. 상처를 겪는다.  

 

상처가 심하면 '폭력'이 된다.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 2달 됐을 때 모습이다. 

오늘도 나는 회사에서 어떤 폭력 같은 걸 경험했다. 가정의 경제적 상황 등을 이유로 해외여행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상사가 "나이가 몇인데 해외를 안나가보니, 혹시 집이 가난하니? 아님 게으르니? 정말 지루한 인생을 살았구나"라고 한 것이다. 

 

해외여행 안가고 싶은 사람이 있나. 여력이 안되서 못갔던게 당연한 거 아닐까. 왜 말로 어떤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걸까. 

 

'당신의 말에는 배려도 없고 생각도 전혀 없어요. 수치심을 주는 데 정말 탁월하게 단어 선택을 잘하시는구나'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끔 회사에서 동료들끼리 얘기하다가 "혹시 전쟁이 나거나 세상이 멸망할 때 쯤 살인을 해도 괜찮다면 누가 표적인가"를 논하니 다같이 한명을 떠올렸다. 

 

그 상사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무시한다.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상사의 잘난척과 우쭐함을 오래도록 듣고 있게 만든다. 

 

어쩌면 회사의 권력이란 것은 자신의 생각을 널리 전파할 수 있다는 것 같다. 잘난척과 우쭐함을 널리 전파해도 다들 억지로 받아들여주는 것. 그것이 권력 같다. 그 쓸데없는 얘기에 시간을 들여 귀기울여주는 것은 권력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삶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어 우울하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돈을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른다.

 

나의 한 살도 안된 고양이는 아마도 폭력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분양소에서 2달간 살다가 나의 집에 왔다. 분양소에서도 고이 자랐고 나에게서도 고이 자랐다. 

 

내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아서 사람이 무섭지 않은 것일테지. 

 

친구들은 내 집에 오면 쪼르르 달려나와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보통 고양이들은 숨어있는다고 한다. 

 

내 고양이는 거절을 당하지도 않았고 배고픈 적도 없다. 원하는 게 있으면 다가와서 몸을 부비면 된다. 혹은 발라당 누우면 된다. 

 

 

얼굴도 귀엽게 생겼는데 몸도 귀엽다. 귀도 귀여운데 꼬리까지 귀엽다. 

 

발을 오므리는 모양도 귀엽고 발바닥에 있는 핑크젤리도 귀엽다. 그렇게 모든 귀여움을 온 몸에 담아낸 덕분에 내 고양이는 아직까지 어떤 거절이나 폭력도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내게는 정규직으로 매달 돈이 들어오는 직업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양이에게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친밀함이 있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아 생긴 저 친밀감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하얗게 된다. 

 

하얗게 나도 변한다. 하얗게. 어떤 말로 푹 찔려 빨갛게 물든 마음은 하얗게 변한다. 내 고양이는 죽을때까지 폭력을 경험하지 않다가 죽었으면. 그래서 나의 마음을 언제까지나 하얗게 만들어주길. 

 

 

내 고양이는 자꾸 귀여운 척만 한다. "야 너 일부러 귀여운 척 하는거지?"라고 말을 해봐도 그저 날 쳐다볼 뿐이다. 

 

고양이는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있는다. 여기가 서울인지 대전인지 알지도 못할 거다. 

 

 

고양이는 주는 밥을 먹고 논다. 놀다가 지쳐 잔다. 심심하면 나한테 와서 발랑 몸을 뒤집는다. 그리고 나한테 안겨 있는다. 

 

고양이는 나랑 가끔 치킨을 먹을 때가 있다. 고양이가 치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내가 치킨을 먹고 있으면 무릎에 올라오고 배에 올라오고 난리다. 한 입만 달라는 것이다.

 

 

치킨을 살만 발라서 주면 엄청 잘 먹는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한테 치킨을 사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치킨을 먹고 싶겠지만 우리 인간들처럼 그걸 먹고 싶어서 사달라고 한다거나 돈을 모은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그때 먹고 배부르면 끝이다. 치킨도 먹을만큼 먹으면 더 줘도 배가 부르면 입도 안댄다. 고양이는 그냥 그렇게 산다. 나랑은 다르게.

 

나는 내 삶을 나아지게 하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공부를 계속 해왔고 직장을 얻고 나서도 더 좋은 직장에 가고 싶어서 계속 Try. Try. 실패를 겪고 또 다시 Try.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 이유는 맛있는 치킨을 맛보고 또 한마리를 먹고 싶어서다. 그런데 고양이는 어쩌면 이렇게 욕심이 없는지. 나한테 치킨 사달라고 한번을 안조른다. (사실 졸랐는데 내가 못들은걸까?)

 

 

어쩌면 최고의 동거 생명체가 고양이일 것 같다. 엄마아빠처럼 "네 삶을 나아지게 하라는 얘기지. 나 잘되라는 거니? 그렇게 게으르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해?"라고 잔소리도 안한다. 

 

어떤 몇몇 친구들 지인들처럼 우리네 삶을 비교하는 얘기도 안한다. "누구는 어디 직장 연봉 몇억을 받고 다닌대. 누구는 결혼을 잘해서 집을 어디에 얻었다나."등등의 비교하는 얘기도 전혀 안한다. 

 

고양이는 쉽게 만족한다. 그리고 자신도 욕심이 없으니까 나한테도 뭐라고 안한다. 치킨이 먹고 싶겠지만 조르지도 않는다. 

 

고양이는 그저 나한테 안겨서 쓰다듬어 주면 그 자체로 만족한다. 그릉그릉. 만족한다는 표시를 저 배 깊은 속에서부터 낸다. 그-릉-그-릉.

 

 

이렇게 쉽게 만족시켜줄 수 있는 생명체. 바로 귀여운 내 아기 고양이다. 생긴것도 귀여워서 애교를 부리면 나의 만족도 올라간다. 고양이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별로 할 줄 아는게 없어서 귀여움을 타고 난건가보다. 

 

가끔 고양이가 일부러 귀여운 척을 하는 것처럼 보일때도 있다. 

 

"고양이야 너 혹시 귀여운척 하는거지 ? 사실대로 말해봐."라고 물어봐도 고양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냥 원래 귀여운거 같다.

 

 

 

몸이 아침부터 찌뿌둥하다. 힘들고 졸립다.

 

간밤 꿈에서까지 일을 잘 못한다고 계속 시달렸다. 꿈에서 어떤 이가 내게 "뇌를 안쓰시는군요. 뇌를 가지고 계시면 뭐합니까. 뇌를 활성화하지 않는데." 라고 꾸짖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내게 동정을 보이기는 커녕 "에휴 ㅉㅉㅉ"이라고 말했다. 나는 꿈속에 나온 그에게 실제로 연락을 해서 뭐라뭐라 했다. "꿈에서 왜 그랬어요."

 

그러나 그는 꿈 꾼걸로 뭐 어쩌라는거지, 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 끝이다. 하긴 그게 맞다. 이런 꿈을 꾸는 만큼 나는 일을 잘 못하기도 하고 혼나기도 하고 있다. 지금은 꿈을 꾼 것이 어찌 됐든 회사에서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몸이 매우 피곤하다. 날짜를 보니 목요일이다. 주말에 가까웠다는 것을 몸은 알고 있는 셈이다. 반차쓰고 집으로 튀고 싶다. 그러나 일은 해야하니까 어떻게든지 한다. 해야하면 괴로워하면서도 한다.  

 

오늘 퇴근은 할 수 있겠지? 싶으면서도 괴롭다. 

 

나는 회사에 있는 괴로움 덕분에 종일 밍기적대고 있다. 내 허리는 굽어있고 나는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천천히 걸어다닌다. 고양이는 나랑 정반대다. 

 

 

고양이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고양이가 밍기적댄 것을 본 일이 없다. 

 

나랑 같이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가도 내가 일어나면 금세 몸을 일으키고 나를 졸졸 쫓아온다. 고양이에게 '일으킨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처럼 고양이는 어떤 소리 같은 것에 자동반사적으로 튀어 나온다. 

 

누워있다가도 내가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다. 고양이에게 밍기적댐이란 절대 없다. 게으르지도 않다. 

 

 

허리도 아프지 않아 보인다. 허리가 구부러진 고양이란 없을 것이다. 언제나 허리를 꼿꼿이 펴고 우아하게 앉아있다. 

 

아직 태어난지 1년이 안된 갓 태어난 생명체라서 그런건가. 왜 고양이는 밍기적대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지 않을까? 아직 매우 젊은 캣초딩이라서?

 

난 항상 허리가 아프다. 하루종일 앉아있는다. 이렇게 몸이 피곤하고 졸릴 때는 정말 회사를 때려치고 싶다.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다. 노동에서 해방돼 나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나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자본가이고 싶기도 하고.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는 나의 의지만 충만하길 바라는데.  아. 빼먹었다. 고양이랑 둘이서 그러고 싶다.

 

 

아침에 알람을 듣고 힘겹게 일어난다. 회사갈 준비를 한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긴다.

 

고양이는 일찌감치 일어나있다. 내 발을 쫓아다니고 있다. 원래는 쫓아다니기만 했는데 이제는 여기에서 더 진화했다. 

 

고양이는 두 발로 내 발을 끌어안다가 내 양말, 그니까 내 발을 깨문다. 회사에 가지말라고 고양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가지말라고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

불쌍하다. 얼마나 심심할까. 나는 고양이 사료를 놓는 곳에 가서 "밥은 그새 다 먹었니?"라고 물어본다. 밥은 대부분 반정도 먹었다. 물은 고양이가 좋아하는 편이어서 거의 2/3 정도 먹는다. 

 

사료를 퍼다가 밥그릇에 넣어주면 고양이의 고마움의 답례를 한다. 사료를 퍼주는 내 손에 머리를 부빈다. 

 

"고양이. 밥 줘서 고마워?" 물어보면 고양이는 고맙다면서 배를 뒤집어 발랑 깐다. 내게 매일 밥을 챙겨줘서 고맙다고. 

매일 밥을 챙겨줘서 고맙단 의미로 배를 보여줄게.

 

내가 회사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면 고양이가 또 붙잡는다. 요새는 두 발로 내 다리를 잡아당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가는 내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릴 기세다. 

 

"고양이야. 졸라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회사에 가야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단호하게 고양이를 떼어놓고 문밖을 나선다. 고양이는 문밖의 세계는 금기의 영역인냥 가만히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만 있다.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여서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내가 이렇게 귀엽게 쳐다보고 있는데 정말 갈 것이냐? 냉정한 인간.'라고 하면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다. 

 

"응 냉정하게 갈것이다. 집 잘 지키고 있거라. 아가."하고 나는 집을 나선다. 

 

 

나의 귀여운 고양이. 고양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종종. 그리고 멀찌감치 서서 몰래 나를 쳐다본다. 

 

고양이는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기도하다. 고양이가 취하는 동작들은 어딘가 끊어져있다. 마치 관절댄스를 추는 어떤 인간처럼. 분절된 모습을 보인다. 

 

가끔은. 고양이는 일부러 귀여운 척을 하는 걸수도. 고개를 살짝 기울인채. '슈렉'에서 '장화신은 고양이'가 귀여운 척을 하고 있는 것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 같다.

 

"고양이야, 너 사실 귀여운 척 하는거지?" 라고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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