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자려고 누웠다. 고양이가 내 배에 올라온다. 깜깜한 와중에 밝게 빛나고 있는 내 폰의 액정화면을 고양이도 같이 들여다본다.

 

어라. 고양이는 빛을 좋아하니까. 

 

나는 폰의 조명을 켜서 벽을 비춘다. 벽에 비추는 일렁이는 불빛과 내 손의 그림자를 따라서 고양이의 시선도 머무른다. 

 

내 손의 그림자를 쫓아 고양이는 벽을 툭툭 친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실체가 뭔지 알 수 없는 그림자를 계속 쫓아다닌다. 너무 바보같은 2차원세계의 고양이다. 

 

고양이는 뭐를 잡으려고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이니까 뒤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쫓아 다닌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다. 

 

 

노트북 화면에서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도 움직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로 툭툭 친다. 마우스가 뭔지를 모른다. 화살표 표시가 뭔 의미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움직이니까 쫓아다닌다. 

 

2차원세계에 살고 있다. 고양이와 처음 같이 살게 됐을 때는 그게 너무 웃겼다. "고양이야. 이게 뭔지는 알아? 아무것도 아닌데. 왜 자꾸 속는거야?"

 

내가 속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 자꾸 쫓아다니네. 이걸 자꾸 쫓아다녀도 고양이야. 네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것이다. 그냥. 2차원세계에서 평범하게 노는 것이다. 뭔가를 쫓아다닌 것이 고양이의 본성이니까.

 

 

동물병원 아저씨는 말했다. 고양이한테 그런 시간이 하루에 30분이라도 꼭 필요하다고. 뭔가 쫓아다녀야 고양이의 사냥 본능이 충족된다고 말이다. 

 

나는 고양이랑 같이 누워있으면 고양이의 얼굴을 뜯어본다. 고양이의 입을 '치-이-즈'로 만들어서 날카로운 이빨을 살펴본다. 맹수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기 고양이다. 

 

고양이의 빨간 코를 살펴본다. 고양이의 눈 앞에 있는 눈꼽도 떼어준다. 고양이의 줄무늬도 관찰한다. 어느날은 고양이와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말을 가르쳐보려고 했다. 

 

고양이야. 고양이야. 안녕? 고양이야. 말해봐. 안녕? 허공에 메아리치는 의미없는 짓이었다. 너무 슬펐다. 네이버를 뒤적이다가 고양이의 뇌 부분에는 어떤 곳이 없다고 했다. 언어능력이 있는 어떤 곳이 없어서 고양이는 애옹애옹 애---애애---옹. 같은 음절만 길고 짧게 울 뿐이다. 

 

 

고양이는 2차원세계에 산다. 형태만 본다. 뒤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움직이는 형체를 따라서 산다.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내 뇌는 잠시 생각을 멈춘다. 내 뇌는 생각을 멈추고 고양이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내 뇌는 '고양이의 발은 우아하게 오므러지는구나. 고양이의 꼬리는 탐스러운 여자의 땋은 머리 같구나. 고양이의 눈은 매우 커서 아래로 치켜뜨면 청순해보이는구나.' 등등을 생각한다. 그러느라고 내 뇌는 잠시 쉰다. 

 

2차원 고양이와 3차원의 나는 그냥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