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몸무게는 3kg다. 지금은 많이 컸다. 더 애기였을 때 고양이는 정말 손바닥만했다. 

 

고양이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 손바닥만한 고양이는 숨어있었다. 나는 대체 고양이가 어디 숨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고양이야. 고양이야" 불러봐도 안나온다. 

 

침대의 이불을 잡고 탁탁 털었다. 내가 털어버린 이불에서 손바닥만한 고양이가 튕겨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불쌍한 고양이다. 얼른 잡아서 안아준다. "미안해. 왜 이불 속에 숨었어. 내가 이불을 털려고 한거지 너를 내동댕이 치려고 한건 아니야. 어디 다친데는 없니?" 라고 말을 걸었다. 

 

고양이는 커다란 눈을 끔벅 끔벅이면서 괜찮다고 가만히 품에 안겨있었다. 고양이를 안고 쓰다듬어 주다가 고양이를 침대에 내려 놓는다. 

 

"고양이야. 이불속에 숨는걸 좋아하면 앞으론 이불을 탁탁 털지 않을게. 그러니까 너도 부르면 빨리 달려나와주면 안되겠니?" 라고 말을 걸었지만 고양이는 큰 눈을 끔벅이며 몸을 뒤집고 애교를 부릴 뿐이다. 

 

 

내 고양이는 정말로 화를 잘 안낸다. 내 고양이는 화를 나거나 삐질 줄 모른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 문을 열었는데 고양이가 뛰어나오지 않았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녀석이 아닌데. 항상 마중나오는 녀석인데 이건 뭔가 일이 생긴걸까? 

 

 

집안을 곳곳을 뒤졌다. 고양이는 벽시계 뒤 공간에 빠져있었다. 그런 곳에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다. 불쌍하게 애옹 애옹거리고 있다. 너무 불쌍하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 

 

얼른 끄집어내서 품에 안고 안아준다. 고양이는 그렇게 오랜시간 공간에 갇혀있었는데도 전혀 삐지지도 않고 화도 안났다. 내 품에 안겨서 다시 금방 안정을 되찾고 그릉그릉거린다. 정말 천사의 성격을 지녔다. 이럴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고양이라서 자꾸 내 손에 튕겨져 나가고 내 발 밑을 멤돌다가 나한테 밟히기도 한다. 자다가 나한테 깔리기도 한다. 너무 불쌍하다. 

 

 

 

나는 결혼도 안했고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다. 심지어 연애도 안하고 있는 슬픈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런데 고양이가 내게 모성애를 알려준다.

 

나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냥 가만히 있는 고양이인데 안쓰럽고 불쌍하다. '혼자 오래 있어서 외로운걸까. 고양이는 왜 이렇게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걸까.'

 

동물병원에 갔던 날, 수의사쌤한테 "내가 집을 오래 비워서 그런지 고양이는 제 발을 그렇게 쫓아다녀요. 밖에 나가려고 하면 못나가게 발을 물고 야옹거리고 난리에요."라고 말했다. 

 

수의사 쌤은 "가만히 있어도 무릎 위에 올라오나요? 그놈 참. 강아지로 태어나야할 녀석이었는데. 집 오래 비워서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성격이 애교가 많은 애인거에요"라고 대답해줬다. 

 

 

내 고양이는 정말로 강아지 DNA가 있다. 나랑 발을 맞춰서 집안을 돌아다니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침대에 누워서 자려고 하면 내 배위에 올라와서 같이 잠에 든다. 고양이야. 너 이제 3kg 넘는건 아니..?

 

나는 아침에 일찍 회사에 가서 밤에 늦게 집에 온다.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워라밸은 밥말아먹고 없다. 집 현관에서 번호판을 띡띡띡 누르면 고양이가 뛰어 나와서 현관문 앞에서 대기한다. 띠띠띠. 누르는 소리에. 우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집안에서 들린다. 

 

 

내 등장에 고양이는 앞 발을 쭉 편채 기지개를 한번 편다. 내 다리에 머리를 박치기하면서 반가움을 표현한다. 나 좀 보시게. 하면서 뒤로 발라당 누워 자신의 귀여움을 한층 뽐낸다. 

 

난 이 요물 덩어리를 번쩍 들어안고 쓰다듬는다. 그럴 때 고양이가 얼마나 불쌍하지 모른다. 왜지. 왜 불쌍하지. 안쓰럽지.

 

 

고양이가 나보다 빨리 죽으면 슬퍼서 어쩌지. 이런 생각이 너무 자주 든다. 고양이가 너무 불쌍하다. 고양이의 수명이 나랑 비슷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고양이가 불쌍할까. 나를 남겨 두고 먼저 가버릴 고양이를 그리워할 내가 불쌍한걸까. 그냥 고양이와 나 둘다 불쌍하다. 

 

사랑이 이런걸까. 고양이를 사랑하는 내 사랑은 뭘까. 모성애일까. 내 귀여운 아가 고양이다. 

아름다운 남산을 걸었다. 내 고양이도 데려 와서 나란히 발 맞추며 걸으면 어떨까. 고양이에게 이 아름다운 남산을 보여주고 싶다. 

 

내 고양이는 태어난지 얼마 안돼 분양소로 갔고 2개월만에 내 품으로 왔다. 고양이가 머물렀던 곳은 태어나서 분양소와 내 집밖에 없다. 

 

'고양이야. 여기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단다. 너에게 나무와 풀, 흙과 바람을 보여주고 싶구나.'

 

나는 야심차게 하네스를 샀다. 하네스를 완강히 거부하던 내 고양이다. "싫다고!!"하면서 고양이는 하네스를 도망다녔다. 우다다다. 

 

어느 날이었다. 고양이랑 놀고 있었는데 고양이의 정신을 빼놓은 사이에 하네스를 채웠더니 놀랍게도 얌전히 있는 것이다. 그 뒤에도 여전히 하네스를 채워도 얌전히 있다. 천사같은 내 고양이다. 

 

 

고양이와 산책을 하기 위해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고 집을 나섰다. '고양이야. 너 근데 그동안 많이 컸구나. 2키로 넘는거지?'

 

노트북도 2키로가 넘으면 무거워서 못 들고 다니는데 남산까지 고양이를 데려갈 생각을 다 했을까. 

 

어차피 나선 길이므로 남산까지 낑낑대며 올라갔다. 어느 정도 사람이 드물고 한적한 곳에서 고양이를 꺼내놓았다. 나의 사랑스럽고 얌전한 고양이는 짐승 특유의 본성으로 여기저기 킁킁대기 시작했다. 

 

킁킁대면서도 어딘가에 숨으려고 한다. 사람이 지나가거나 버스 등이 지나가면 엄청나게 겁을 먹은채 산 모퉁이에 있는 나무로 숨어버렸다. 

 

인도로 발맞추어 걷는 것은 고사하고 산속으로 숨어들어가기 바쁜 녀석이다. 

 

 

이래선 안된다. 이래선 다시 이동장에 넣어서 집으로 가는수밖에 없는 걸까. '고양이야. 뭐가 그렇게 겁이나니. 내가 옆에서 널 보고 있잖아. 날 좀 믿어줘.' 라고 말을 건네지만 고양이는 듣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해달라고 원망섞인 눈으로 쳐다보다가 나무 틈으로 숨기에 바쁜 것이다. 산책이 이렇게도 어려운 거였구나. 

 

잠에 눈을 뜬다. 창밖 풍경이 보이는데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햇빛은 들어오는데 아름다운 고양이가 우아하게 앉아있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나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내 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사치다. (잠을 푹 못 잤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아름다운 고양이는 눈을 크게 뜨고, 아니 원래부터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고양이는 나랑 수면시간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내가 잘때 같이 자고 내가 일어나면 같이 일어난다. 

 

아침에 핸드폰 알람소리가 들리면 고양이는 그 소리를 듣고 누워있는 내 배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릉그릉 거리면서 나를 깨운다. 

 

고양이는 "이 알람 소리가 들리면 네가 일어나는 시각이 됐단 걸 나는 알아. 근데 너는 왜 안 일어나고 누워있니"라면서 빨리 일어나라고 내 손을 깨문다. 

 

나는 알람소리를 듣고 한번에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늘 고양이의 잔소리를 듣는다. 고양이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기 때문에 내 위에 올라와서 자리를 잡기만 해도 이미 잔소리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내게 가까이 오면 더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아름답고 귀여운 고양이가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서 나는 고양이를 만지고 있으니 더 나른해질 뿐이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쳐다보고 있으면 그냥 이렇게 계속 사치를 부리고 싶다. 일어나기는 더욱 싫어진다. "고양이야. 너는 왜 이렇게 부드러운 털이 있니."

 

고양이처럼 온몸이 다 털로 뒤덮여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따뜻할까. 고양이랑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몇분간을 노닥거리다가 어쩔 수 없을때까지 누워있는다. 

 

그리고 회사로 나선다. 회사는 언제나 가기 싫다. 왜 일까. 어떤 사람은 일이 취미라면서 심심해서 일한다고 했다. 나는 놀게 너무 많아서 탈인데. 

 

 

토요일은 거의 하루종일 잠을 잔다. 일주일 동안 잠 부족에 시달리다가 늦잠을 잔다. 11시쯤 내 방에 들어오는 빛을 맞는다. 창문으로 보이는 빛줄기와 나무. 그리고 가지런히 놓아둔 내 장식품들. 그 사이의 한마리 고양이. 

 

그럴 때면 '어쩌면 성공한 인생'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완성된 것 없는 삶인데 그냥 이순간은 그런 느낌에 충만해진다. 그리고 고양이를 부른다. "고양이야. 야옹아."하면 고양이는 언제나 뒤돌아 나를 쳐다본다. 

 

 

단잠을 자고 있었다. 쨍그랑.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내 방 창문으로 돌을 던져서 창문이 깨진걸까. 아니면 운석이 날라와서 지구가 곧 멸망하는 걸까. 대체 이 쨍그랑 소리는 뭐지?

 

눈을 뜨고 창문을 살펴보니 멀쩡하다. 대체 뭐가 깨진 거지 ? 

 

바닥에 화분이 어지럽게 하나 놓여있다. 부엉이 모양의 장식품도 있는데... 설마 뭐가 깨진거지. 부엉이 저건 비싼건데..안돼..ㅠ_ㅠ

 

 

다행히 화분이 깨졌다. 화분은 사실 가짜 화분이다. 다이소에서 2천 원 주고 산 거다. 유리병 안에 가짜 식물이 들어있는 모조 화분이다. 

 

유리조각이 흩어져있을게 뻔하다. "고양이야. 대체 왜 그랬어? " 하고 크게 말을 걸었는데 고양이는 눈을 크게 뜨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을 뿐이다. 

 

아. 바보 고양이. "바보 고양이야. 너 왜 저거 깨뜨렸어? "라고 말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다. 고양이는 "이거 내가 한거 아닌데. 화분이 스스로 떨어져서 깨진 거"라고 하는데.. 쩝.

 

난 아무것도 몰라요.

 

일단 유리조각을 치우기가 너무 귀찮으니까 고양이를 방 밖으로 내보내기로 한다. 고양이를 거실에 내놓고 방문을 닫았다. 고양이가 구슬프게 운다. 애-옹. 애-옹. 고양이가 '방안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졸리니까 잔다.

 

잘만큼 자고 일어나서 유리조각을 치웠다. 방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고양이가 들어온다. "고양이야. 앞으로는 어떤것도 깨뜨리지 마. 알았어 바보고양이야?" 라고 하니까 고양이가 바보 아니라고 하면서 머리를 비빈다.

 

 

그런데 고양이는 바보가 맞는 것 같다. 고양이는 내 손보다 내 발을 더 좋아한다. 내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조금 가만히 있다가 발밑으로 내려가서 내 발에 머리를 문댄다. 

 

고양이한테 "이건 손이고 이건 발인데 발은 좀 더러울 수도 있는데 손한테 오지 그래?"라고 말을 걸어도 "별로.."라면서 발이 좋다고 한다. 

 

고양이는 침대 밑에 삐져나와있는 내 발에 머리를 문대는걸 좋아한다. 고양이는 땅바닥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내 고양이한테 가끔 "바보 고양이야 안녕"이라고 말을 건다. 고양이는 바보스러운 측면이 사실 되게 많다. 고양이는 아니라고 우기지만..

 

 

마냥 귀엽기만 한 고양이지만 고양이와 나 사이에도 위기가 있었다. 갓 태어난 예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졌지만 고양이는 생명체였다.

 

고양이는 가만히 있는 인형이 아니다. 물론 인형처럼 아주아주 예쁘지만 살아있고 움직이고 뛰어다닌다. 

 

나의 아기 고양이는 갓 태어난 생명체라 그런지 생기가 넘쳤다. 우다다다 하면서 작은 집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얼마나 재빠른지 모른다. 

 

고양이가 여기 있는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이동해버려 저 구석에서 나를 보고 있다. "고양이야 혹시 눈 깜빡하는 사이에 공간이동을 하는거니? 어떻게 저기에 있어?"라고 말을 걸어도 눈만 끔벅끔벅한다. 

 

정말 고양이가 공간이동을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을 5번은 한 것 같다. 매우 빠르다. 

 

내가 인형처럼 예쁘지. 하지만 나는 살아있어.

고양이의 엄청난 활동성은 잠을 자야할 때 제일 골치가 아프다. 왜일까. 새벽마다 고양이는 미친듯이 뛰어다닌다. 우다다다다.

 

방 끝에서 방 끝까지 달린다. 달리기 기록을 재는 걸까. 방의 넓이를 가늠하는 걸까. 뛰어다니면서 전력질주할 때 어느정도 넓이인지 재는 걸까. 

 

고양이의 달리기는 꽤 오래 지속된다. 매우 시끄럽다. 내 존재가 여기 살아있소, 외치는 듯이 열심히 달린다. 그렇게 하루에 써야할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나면 내 배 위로 올라온다. 

 

내 배 위에서 힘이 다 빠져서 고양이는 그릉그릉거린다. 그릉-그릉. 그래 이제 나도 좀 자자. 좀 이제.. 우리 조용히 잠을 자자. 

 

 

아무것도 모르는 태어난 지 2개월밖에 안된 내 고양이는 가끔 사고를 친다. 정말 너무 어려서 고양이가 사고를 치는 것은 다 용납할 수 있다. 그래도 가끔은 고양이가 바보같이 사고를 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나는 긴 미역처럼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회사 다니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지 내 몸은 축 늘어진 미역이 된 것 같았다. 내 미역 같은 머리 카락이 침대위에 흔들리자 고양이는 그 움직임을 감지했다.

 

뭔가 사락 사락 흔들리니 고양이의 본능이 살아났다. 고양이는 흔들리는 내 머리카락을 꼭 발로 쳐야 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본능은 얼마나 힘이 센지 멈출 수 없다. 고양이는 내 머리카락을 치고 또 친다.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쳐야 하는데. 고양이가 머리카락을 치니까 움직이고 움직이니까 또 고양이가 친다. 고양이가 그렇게 장난감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매우 좋지만 그 장난감이 내가 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고양이야 이제 그만해"라고 말을 했지만 고양이는 한국말을 못한다. 내 말을 무시하고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 뿐이다.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것은 널브러져 있을 때 뿐이 아니다. 내가 자면서 이리저리 뒤척이면 고양이가 내 머리카락을 표적으로 삼는다. 고양이는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다가 혼자서 엄청 신이 나서 발톱을 세워버렸다. 

 

세운 발톱으로 날카롭게 내 이마와 눈가를 쓱- 할퀴었다. 

 

"으아아악!" 너무 아프다. 뭔가 피가 나는 느낌도 든다. 

 

재빠르게 거울로 눈알을 살펴본다. 다행히 눈가의 피부가 조금 찢어졌으나 눈알은 멀쩡하다. 정말 놀랐다. 

 

0.1cm정도가 찢어졌다. 그러나 매우 아팠고 너무 놀랐기 때문에 이 놈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됐다. 앞으로 한 번 더 나를 할퀴게 둘 수는 없다.  

 

"절대 나를 할퀴면 안돼!! 알았어???"라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두번째 손가락으로 고양이 얼굴 앞에서 삿대질을 했다. 위협을 하는 표정과 목소리로 겁을 줬는데 알아듣기는 한걸까. 

 

"할퀴지마!"라고 말을 하지만 고양이는 '한국어 못 알아들어'라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다.

 

그 다음부터 고양이가 할퀸적은 없지만 깨물거나 하면 무서운 목소리를 내고 삿대질을 했다. 

 

무서운 포즈와 무서운 목소리를 내면 말은 못알아들어도 상황 파악은 되는 걸까. 

 

고양이는 말을 잘 알아들은 듯 하다. 여러번 고양이에게 경고를 했다. 나를 깨물때마다 무섭게 했다. 그 뒤부터 고양이는 나를 핥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 깨물지는 않는다. 

감동을 받은 순간도 있다. 고양이가 내 무릎에 올라오려고 두 발을 쫙 펴고 발톱을 내보였다. 발톱을 세워 내 허벅지에 올라오려니 날카로운 발톱은 내 허벅지를 할퀸다. 

 

나는 고양이한테 "아아아!!! 아프다고!!"라고 말했더니 고양이가 갑자기 발톱을 쑥 집어넣는다. 

 

"내 말을 알아들었니? 착한 고양이야? 바보라고 한거 취소한다."고 나는 금세 칭찬했다.

 

고양이는 내 무릎에 올라오려고 할때는 발톱을 넣는다. 정말이다. 정말로 고양이는 내게 올때마다 날카로운 발톱을 안으로 집어넣고 온다. 정말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폭력을 겪는다. 때리는 거 말고도 말로도 상처를 깊게 받을 수 있다.

 

다들 기쁘고 행복한 가운데 나만 홀로 있어 소외감도 느낀다. 모두다. 상처를 겪는다.  

 

상처가 심하면 '폭력'이 된다.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 2달 됐을 때 모습이다. 

오늘도 나는 회사에서 어떤 폭력 같은 걸 경험했다. 가정의 경제적 상황 등을 이유로 해외여행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상사가 "나이가 몇인데 해외를 안나가보니, 혹시 집이 가난하니? 아님 게으르니? 정말 지루한 인생을 살았구나"라고 한 것이다. 

 

해외여행 안가고 싶은 사람이 있나. 여력이 안되서 못갔던게 당연한 거 아닐까. 왜 말로 어떤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걸까. 

 

'당신의 말에는 배려도 없고 생각도 전혀 없어요. 수치심을 주는 데 정말 탁월하게 단어 선택을 잘하시는구나'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끔 회사에서 동료들끼리 얘기하다가 "혹시 전쟁이 나거나 세상이 멸망할 때 쯤 살인을 해도 괜찮다면 누가 표적인가"를 논하니 다같이 한명을 떠올렸다. 

 

그 상사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무시한다.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상사의 잘난척과 우쭐함을 오래도록 듣고 있게 만든다. 

 

어쩌면 회사의 권력이란 것은 자신의 생각을 널리 전파할 수 있다는 것 같다. 잘난척과 우쭐함을 널리 전파해도 다들 억지로 받아들여주는 것. 그것이 권력 같다. 그 쓸데없는 얘기에 시간을 들여 귀기울여주는 것은 권력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삶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어 우울하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돈을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른다.

 

나의 한 살도 안된 고양이는 아마도 폭력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분양소에서 2달간 살다가 나의 집에 왔다. 분양소에서도 고이 자랐고 나에게서도 고이 자랐다. 

 

내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아서 사람이 무섭지 않은 것일테지. 

 

친구들은 내 집에 오면 쪼르르 달려나와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보통 고양이들은 숨어있는다고 한다. 

 

내 고양이는 거절을 당하지도 않았고 배고픈 적도 없다. 원하는 게 있으면 다가와서 몸을 부비면 된다. 혹은 발라당 누우면 된다. 

 

 

얼굴도 귀엽게 생겼는데 몸도 귀엽다. 귀도 귀여운데 꼬리까지 귀엽다. 

 

발을 오므리는 모양도 귀엽고 발바닥에 있는 핑크젤리도 귀엽다. 그렇게 모든 귀여움을 온 몸에 담아낸 덕분에 내 고양이는 아직까지 어떤 거절이나 폭력도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내게는 정규직으로 매달 돈이 들어오는 직업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양이에게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친밀함이 있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아 생긴 저 친밀감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하얗게 된다. 

 

하얗게 나도 변한다. 하얗게. 어떤 말로 푹 찔려 빨갛게 물든 마음은 하얗게 변한다. 내 고양이는 죽을때까지 폭력을 경험하지 않다가 죽었으면. 그래서 나의 마음을 언제까지나 하얗게 만들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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