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눈은 크다. 콧대는 없는 편이고, 코위에는 하트 모양으로 털이 없는 부분이 있다. 그곳은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아주 진한 빨간색이었다가 아주 연한 분홍색이 된다. 

 

고양이의 눈이 큰 편이라 그런지 고개를 숙이고, 발로 얼굴을 비비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청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세수를 저렇게 할까. 발을 오므려서 얼굴을 가볍게 만지는 데, 그 모양 자체가 매우 귀엽다. 

 

그리고 고양이는 가볍고 흩날리는 깃털 종류의 것들을 좋아한다. 휴지조각이나 깃털, 그런 비슷한 종류의 것들을 발견하면 왼발로 쳤다가 오른발로 친다. 그렇게 발로 치고 있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휴지조각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그것을 또 고양이는 오랫동안 쫓아다닌다. 

 

 

고양이에게도 나름의 일과가 있다. 좁디 좁은 원룸의 이끝에서 저끝까지는 몇발자국도 되지 않지만 고양이에게는 어쩐지 엄청난 곳일테다. 신발장에서 책상앞까지 우다다다 뛰어왔다가 침대위로 점프를 했다가 다시 그곳에서 의자 위로 점프를 한다. 다시 신발장으로 달려간다. 신발장 앞에 있는 전신거울에 몸을 한번 쓱 본 후 다시 우다다다 돌아다닌다. 

 

고양이 자신의 하루의 일과 중 꽤 중요하다. 규칙도 있다. 달려나가면서 자신의 영역이 '자신'으로만 가득한지를 확인하는 작업일까. 바라보고 있자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는 행동을 몇번이고 며칠씩 반복한다. 

 

 

그 모습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가끔은 아무 의미없는 행동이지만 내 생활의 규칙이 돼 버려서 반복하는 것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각을 확인한 후 "으아아아아아아아아"를 크게 외쳐 세상에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린다. 핸드폰 게임을 실행해 나의 농장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고양이를 번쩍 들어올려 "냥냥아! 잘잤어? 너는 왜 내 발을 계속 물어뜯니? 대체 왜 그러는거야?"라고 말을 건다. 이건 날마다 반복된다. 고양이가 그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그냥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자그마치 6일이다. 내게는 6일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는 '휴가 강박증'을 안고서 호텔을 예약했다. 그래 호캉스를 해보자.

 

깔끔한 침실. 깔끔한 베게. 누리끼리하지도 않은 완벽한 흰색의 침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져있다. 머리카락 한올이 없는 깔끔한 침실에 누워있자니 상쾌하다.

 

내가 머문 호텔.

고양이는 생각도 안난다. 해야할 의무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내게는. 방마저 내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집에서는 방에 누워 있자면 이곳 저곳에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머리카락을 치워줘. 베게 커버를 빨아줘. 침대보를 바꿔줘. 고양이털을 치워줘. 양말 속옷을 빨아줘..

 

할 일이 잔뜩 쌓인 방에서 벗어나 있자니 마음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은 깃털이다. 고양이는 생각도 안난다. 잘 지낼거야. 내 고양이는. 내가 밥이랑 물 잘 주라고 신신당부 했으니.

 

고양이는 매우 잘 지냈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 자신을 깊숙히. 나는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가 열심히 무언가를 메모한다. 나는 내 행동을 찬찬히 살핀다.

 

나는 무언가 생각이 나면 열심히 적는 인간이었어. 그런 뒤에는 그것을 바로 해치우지. 안그러면 숙제가 남은 것 같거든.

 

나는 며칠 동안을 나와 깊숙히 대화했다. 내가 어떤 마음이 드는지 어떤 사고의 회로로 결정을 내리는지.. 나와의 데이트가 지겨워졌을 때 쯤.. 집으로 돌아왔다.

 

 

내 불쌍한 아기 고양이는 나를 마중나와있다. 언제나처럼 내 앞에 얌전히. 나는 고양이를 꽉 껴안고 고양이의 털을 만진다. 정말 오랜만이다.

 

고양이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이런 느낌을 가지겠구나. 싶다. 이런 부드러운 털과 따뜻한 생명체. 아름다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저 모습. 고양이를 껴안고는 마구마구 쓰다듬는다.

 

내 손의 감각이 고양이를 잊어버린 것 같다. 고양이를 계속 기억하려고 나는 고양이를 계속 쓰다듬었다.

 

나를 만져줘..

 

 

 

그러니까 내가 원한건 그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거였다. 나는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고는 어깨에 나를 기대었다. 그는 따뜻하고 따뜻했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보고 그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어떤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은 아니어도, 그저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와 얘기할 때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사람을 속단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또 나는 어떤 믿음이 있었는데 그가 어떤 식으로든 나를 받아줄 것이라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긴장하거나 예의를 차리지 않았지만 내가 조금 무례하다 싶으면 그도 기분 나쁜 표시를 했다. 나는 그때마다 재빠르게 그에게 사과를 했다.

 

생각이 없는 고양이.

난 그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으며 내게는 한 마리 고양이만 있을 따름이다. 고양이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 편안했다. 나는 고양이가 주는 안정감 말고 다른 종류의 편안함을 그에게서 느꼈다. 내 엄마도 내게 우리 관계가 완전히 끝장날 수 있을 것이란 암시를 주곤 했는데 고작 몇달 알게된 그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다니.

 

내 엄마는 아주 가끔, 사실 꽤 자주, 자신의 죽음을 얘기했다. 그가 50살 무렵부터였나. 그는 곧 죽을 것이라고 했다. 자살을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럴 것이라는 그의 강한 예감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진지하게 유서를 쓰기도 하고 유언 비슷한 것을 남기면서 온갖 청승을 떨었다. 나는 그가 90년 정도는 살 것이란 강한 예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는 곧 죽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곧 죽지 못하면 난 하나님께 가서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마음을 다해서 기도할거야"라고 말했다.

 

그가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생명력은 질겨서 40년은 더 살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식으로 내게 미친 종류의 공포감을 준다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내 엄마는 유언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라"는 식의 말을 정말 진심으로 내뱉었다. 그의 감정이 격해졌을 때 뿐 아니라 매우 차분할 때도 그 얘기를 했다. 한번 내뱉은 것이 아니라 여러번 얘기해서 그것이 진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는 우울증인가. 어떤 우울증의 증세는 자신이 죽을 것이란 강한 예감을 느끼는 것도 포함된다고 했다.

 

그런 어떤 강한 확신에 가득 찬, 강성한 여자가 주는 생각을 끝없이 주입하면서 살았다. 나는 그 강성한 여자의 생각을 내것으로 받아들여 살아왔다.

 

그 결과 나는 모든 관계는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을 암시하는 아주 사소한 징후들을 찾아내었다. 연락이 안되거나, 표정이 싸늘하거나 하면 나는 그것을 "관계의 끝장남"의 징후로 받아들였다. 그 불안함 속에서 나는 살았다.

 

나는 내 영혼의 일부분을 모든 관계에 던져둔 것만 같다. 영혼의 일부를 타인에게 내줬다. 그리고는 내 영혼을 준만큼 예민하게 굴었다. 타인의 사랑을 면밀히 들여다보다가 허점을 발견하고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던 것이다. 이번의 사랑도 역시, 언제나, 그랬듯이, 허점투성이군. 쳇. 하고 돌아서버렸다.

 

그는 나랑은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서는 '관계의 끝장남'이란 것도 없는 것 같고, 심각해지려는 찰나에는 그저 한번 으흐흐흐흐, 하고 웃어버리며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어쩐지 안정감이 넘치는 것 같아, 나는 불안해질 때면 그의 손목을 잡는다. 그리고는 그의 품에 파고들면서 말한다. "피곤해. 안아줘."

 

그 '피곤해, 안아줘'라는 말이 내 인생의 어떤 여정을 담은 것인지 그는 알까. 그 '피곤하다'는 의미는 내 육체의 일인가, 내 마음의 일인가. 나는 그에게 "추워. 왜이렇게 추울까" 했더니 그는 그 모든 것을 꿰뚫어버린 듯 "네 마음이 추워서야"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의 품안에 파고드는 나는 한마리의 고양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의 손길에 만족해 그릉그릉거리는 고양이가 된 것 같다. 고양이의 그릉거리는 소리의 근원이 고양의 몸 어딘지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나도 그에게 안겨있으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는 강한 사랑에 휩싸이게 된다.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고양이의 뇌가 작은것이 싫다. 고양이는 생각도 못하고 말도 못해서 나는 그 점이 안타깝다. 나는 고양이랑 얘기도 하고 싶고 고양이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고 싶은 데 고양인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이 탄생하게 됐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신이 인간을 흙으로 빚어놓고 보니 너무 예쁜거다. 그런데 생명체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싶은데 불가능해서.

 

그래서 신이 지니고 있는 인격을, 신처럼 생각도 하고 감정도 느끼는 같은 종류의 인격을 인간에게도 부여한다. 그래서 지금 인간이 된건가, 싶었다.

고양이가 너무 예쁘지만 대화를 못하는게 늘 슬프다. 그리고 고양이가 본성으로 움직인다는 것도 슬프다. 모르겠다. 고양이는 왜 내게 와서 안기고 그릉거리는 걸까. 나는 고양이에게 무슨 존재일까.

나는 할일없이 그런 생각을 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 수록 깊은 이 아이와 관계를 맺고 싶어진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 수록 동물이란 존재에 한계가 느껴져 슬프다.

고양이를 위해 여러가지 용품을 '또' 샀다. 사료는 이미 매우 많고 모래도 쌓여있으며, 차오츄르도 몇봉지나 있고 고양이 장난감도 매우 많은데, 나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서. 쇼핑을 했다.

 

 더 좋은 화장실 한개와 더 좋은 모래 한봉지, 그리고 몇가지 장난감을 더 구매했다. 나는 왜 돈을 썼나. 정답은 고양이가 좋아서.

내 고양이는 인간같은 성정을 지니지는 않았고 뇌가 작아서 생각할 줄 아는 인격은 아니지만 동물 가운데서는 영리한 편인 것 같다. 마치 강아지 같기도 하다.

 

고양이가 매우 좋아하는 굵은 머리끈이 있다. 나는 그것을 저 멀리 던졌더니 고양이는 재빠르게 그것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그것을 물어왔다. 이럴수가. 고양이는 의기양양하고 늠름하다. 그리고는 강아지보다 더 의젓한 몸짓으로 우아하게 자신의 성과를 보여준다. 나는 성과물인  머리끈을 다시 던졌다. 다시 늠름하게 물어왔다. 다시 던졌다. 다시 물어온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사랑하는 만큼 슬펐다. 그리고 나는 어쩐지 인간의 창조됨을 생각하다가 신을 생각하다가 다시 우리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신께 나와 고양이가 죽으면 천국에서 만날 수 있나요, 그 질문을 했다.

 

고양이는 아침 출근길마다 내 발을 졸졸 쫓아다니면서 ‘회사에 안가면 안돼?’라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배웅한다. 고양이는 큰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현관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고양이의 출근길 배웅을 맞이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고양이야, 집 잘 지키고 있어, 라고 말을 건넨 뒤 발을 떼고 문을 닫은 날이 1년이 넘어가면서 나는 항상 고양이에게 큰 안쓰러움을 느낀다.

 

 

고양이는 외롭다. 나는 혼자 살고, 고양이는 혼자 남겨진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고양이는 마치 강아지처럼 나를 현관에서 맞이하고 있다가 내 무릎에 뛰어올라 머리를 부빈다. 그릉대면서 쓰다듬어달라고 왼손에 머리를 부비다가 오른손에 머리를 부비다가 다시 왼손, 다시 오른손. 계속 머리를 부빈다.

 

이 시간은 내게는 너무 긴 것 같이 느껴지는 데다가 고양이가 정말로 내 아기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내게 몸을 누이고 배를 발랑 까서 보여주면서 그릉대는 고양이는 내 품에서만 평안을 찾는 것 같고 나는 고양이에게 무언가 굉장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아 나도 또한 이 시간에 깊은 만족감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한번 재보았다. 하루 10시간 정도 혼자 있는 고양이가 쓰다듬을 원하는 시간은, 사실 10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고양이는 10분 남짓 내게 안겨 있다가 다시 거리를 둔다. 더 만지려고 하면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물기도 하면서 내게서 멀어진다. 역시 고양이는 고양이었다. 아무리 강아지 같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너무 외로워하는 것 같다. 고양이는 낮에는 계속 잠만 자고 내가 돌아오면 그제야 쌩쌩해져서 쓰다듬을 당하고 난 뒤 온 집안을 뛰어다닌다. 낮 시간에 동생 고양이와 함께 놀 수 있다면 밤에는 잠을 쿨쿨 자지 않을까.

 

 고양이도 같은 고양이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밤에 시끄럽게 뛰어 다니지도 않을 것이고) 밤에 쌔근쌔근 잠에 들수도 있고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내 고양이에게 동생 고양이를 주기로 했다.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가 생기는 것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온전히 네가 외로울까봐 생각한 것인데, 혹시나 동생 고양이를 들이기로 한 것이 나만의 독단적 판단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매일 매일 동생이랑 노느라 이제 내가 회사에 가는 출근길에 현관문에서 마중도 안나오고 퇴근길에도 반갑게 강아지처럼 뛰어오지도 않으면, 이제 그 불쌍하고 큰 눈망울을 보지 않아서 안심도 되겠지만, 섭섭한 마음도 들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동생은 필요한 것 같고,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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