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말썽을 피웠다. 얼마전 새로 노트북을 샀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의 임직원 몰에서 20만 원 정도 싸게 구입했다.

 

싸게 구입해서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내 노트북의 자판기 위에 마우스가 끼어져 있었고 뚜껑이 덮였다. 그냥 살짝 덮어져 있었다.

 

그 위로 고양이가 점프를 해서 올라갔다. 노트북 사이에 끼인 마우스와 고양이의 무게 덕분에 노트북 액정이 박살났다.

 

 

서비스센터에 가서 보니 수리비가 20만 원이 나왔다. 결국 제값에 노트북을 사게 된 셈이다.

 

아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고양이 덕분에 20만 원이 날라갔다. 그러나 뭐 화는 나지 않았다. 나는 무한대적 관용을 품고 있다. 고양이가 뭔 짓을 해도 나는 고양이를 용서한다.

 

 

고양이는 말썽을 조금씩 피운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까 청소기가 하루종일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거나.. 갑자기 세탁기가 혼자서 세탁을 하고 있다거나..

 

집에 있는 화분의 잎사귀나 꽃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있고 화분이 박살나서 깨져있다.. 그릇들은 깨져서 유리조각으로 변해있다거나 등등..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는 분노같은 것은 없다. 그냥 '고양이야. 왜 그랬어. 귀찮다. 치우기 너무 귀찮아.'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고 있는데 가끔 내 사랑에 내가 놀란다. 고양이에게 한없는 애정과 관용을 보여주는 내 마음이 놀랍다. 어쩌면 이렇게 짜증도 안내고 화도 안내고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걸까.

 

 

내 자신에게도 나는 화를 자주 내고. 또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화를 내며..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한테도 짜증이 나는데.

 

내 마음에 둥둥 떠다니는 작은 사랑의 조각은 고양이에게로 모아진다. 나의 흩어져 있는 사랑의 조각은  고양이한테 모아져서 좀처럼 보이지 않던 배려와 관용이 생기게 된다.

 

어쩌면 내 사랑의 조각들은 내 마음의 귀찮음과 배려없음 짜증과 분노로 차있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집에 오면 비로소 얻게 되는 평화로 사랑의 조각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나의 사랑에 내가 가끔 감동을 한다. 감동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미움도 없애보려고 노력한다. 고양이의 실수는 관용하면서 나 자신을 비롯한 타인의 실수에는 예민하지 말자고. 뭐 그런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내 고양이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왼쪽 앞발을 안으로 집어 넣는 것이다. 생후2개월부터 그랬다.

 

이 특이한 버릇은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다. 한 친구가 발견해줬다. 이 친구는 우리 집에 놀러와서 나랑은 안 놀고 고양이랑만 두어시간을 놀더니 이 버릇을 발견했다.

 

내 고양이의 특이한 포즈를. 고양이는 왼쪽 발을 안으로 집어넣는다.

 

왼쪽 발을 안에 집어넣는 고양이.

 

그 버릇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내가 억지로 고양이의 왼발을 밖으로 빼어 놔도 다시 집어넣는다. 건강상 문제는 없어보이니 냅두기로 한다. 이것도 내 고양이의 취향이겠지.

 

내 친구는 고양이랑 놀더니 집에 가기 매우 싫어했다. 친구는 이윽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됐다. 그 다음날 마트에 가서 간식거리를 잔뜩 사갖고 또 놀러왔다. 나랑은 안놀고 "이모가 또왔어. 고양이 안녕?" 말을 걸면서 고양이랑만 논다.

 

사진이랑 동영상도 잔뜩 찍어갔다.

 

왼쪽 발을 숨긴 고양이.

 

다른 친구도 우리집에 놀러와서는 고양이에게만 시선을 고정한다. 고양이 간식을 또 사와서 고양이의 환심을 얻으려고 한다. 나랑도 놀기는 했는데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처음 보면 너무 귀엽다. 발로 세수하는 것도 귀엽고. 사냥 본능이 나와서 장난감을 사냥하려는 것도 귀엽다.

 

 

나도 고양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넋을 놓고 바라봤다. 너무너무 예뻐서. 왜 만화영화에 고양이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장난감도 엄청 많이 사고 사냥놀이도 엄청 자주 했다.

 

불을 꺼놓고 그림자 놀이도 하고. 그림자를 쫓아다니는게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이제는 고양이가 노는 모습을 보는게 너무 익숙해져서 차라리 웃긴 포즈를 취하는게 더 웃기다. 웃긴 얼굴, 웃긴 행동 이런거 보는게 더 웃겨서 혼자서 깔깔 댄다.

 

아니 왜 이러고 있는거야?

 

고양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나도 좋고 친구들도 좋아하는 만큼 고양이 카페도 생기는 거고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도 생기는 거겠지? 유튜브에서도 고양이 동영상이 인기가 많은 것일 테고.

 

나도 고양이의 귀여운 순간들을 사진속에 잔뜩 담아놨다. 고양이는 진짜 너무 귀엽다. 귀여워. 왜 그렇게 귀여울까 고양이는? 동물 중에서 제일 귀여운 것 같다. 그리고 내 고양이가 세계에서 제일 귀엽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양이야 얼음땡하는거야?
 

중학교 2학년 어느날. 같이 다니던 친구가 말했다.

 

지금 나는 너무좋아.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이 행복이 깨질까봐 두려워.

 

나는 전혀 공감이 안됐다. 중학교2학년 시절, 지금이 너무 좋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또 그런 생각은 해본적도 없었다.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그 때 내 가장 큰 고민은 양아치들과 같은반인게 괴롭다는 것이었다. 그 양아치 애들은 툭하면 아이들을 괴롭혔는데. 물론 나를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같이 다니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게 늘 불안했다. 혹시 이들과 틀어져 홀로 남게 되면 저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게 무서웠다.

 

어흥.

그 양아치 애들은 반에서 제일 친구가 없고 힘없고 말도 잘 못하는 애들을 괴롭혔다. 여자중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발로 차고 때리고 책상위를 어지럽히고 가방을 훼손했다.

 

그 양아치 무리 가운데 한명이 밉보였던 것 같다. 그 한 명은 같은 무리였다가 갑자기 왕따신세로 전락하더니 집단으로 폭행을 당한 모양이었다. 학교에 팔에 깁스를 한채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무리들 가운데 몇몇은 학교 봉사를 받았고 정학을 받기도 했고, 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도망치듯이 전학을 가버렸다. 그런 살벌한 정글이 내 학교 생활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지금은 그냥 저냥 괜찮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지만 갑자기 여기에서 떨어져 나가면 저들의 먹잇감이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늘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무서운 고양이 눈.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인데 3학년 언니들 가운데 몇몇은 되게 위협적으로 우리반에 와서 양아치무리들을 끌고 가기도 했다. 무서웠다. 학원을 다녔는데도 학원에서도 같은 반이나 학원안에 양아치 애들이 있어서 어딜가나 안심되지는 않았다. 늘 조심해야했다. 찍히지 말자. 최대한 조용히.

 

그들이 얼른 상고나 공고에 가버리고 나는 빨리 일반고에 가서 영영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행복하지도 않았고 무리에 소속돼있는 것이 그나마 내게 울타리였다.

 

행복한 고양이.

내 친한친구는 무엇이 행복했던 걸까. 뭐가 행복한데 ? 내 물음에 친구는 말했다.

 

너랑 다른 친구들이랑도 친하게 지내고 있고 엄마아빠랑도 좋아.

그냥 다 좋아. 다만 이게 깨질까봐 두려워.

 

그녀는 되게 어른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도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친구의 말이 지금 생각난 건 설날에 나홀로 지내면서 집을 정리하고 놀고 내 고양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다. 너무 좋은 생각이 들면 이것이 깨질까봐 살짝은 두려운 것이다. 아마도. 그런 생각이었겠지 그 아이도.

 

귀여워
 
2개월된 고양이(왼쪽)와 1년 6개월된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고 있다. 애교부리는건 시간이 지나도 똑같다.

고양이는 너무 작고 약하다. 고양이가 가끔 내 팔을 물 때, 나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는다. 그리고 혼내는데 고양이는 겁을 잔뜩 집어먹는다. 만약에 내가 손에 힘을 더줘서 목덜미를 아주 세게 잡으면 고양이 목은 부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정말 자그맣다. 정말 작고 약한 존재다. 나는 그에 비해 아주 크고 힘이 세다. 

 

이 작은 아이가 계속 잘 살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보여주는 사랑과 내 책임감이다. 내가 그것을 저버리면 고양이에게는 정말 큰일이 나는 것이다. 이것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해당되는 것일 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이는 어른이될 때까지 자라야 하는데, 그 성장과정에서 부모가 사랑과 책임을 저버리면 아이는 죽거나 제대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2개월 된 고양이(왼쪽)와 1년 6개월 된 고양이(오른쪽). 이 포즈는 시간이 지나도 똑같이 취한다.

고양이는 나에게 자주 안겨온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하는데 고양이는 하루에도 몇번씩 내 무릎위로 올라온다. 그리고는 쓰다듬어달라고 한다. 쓰다듬으면 골골댄다. 내게 안겨서 만족한다는 의미로 골골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꼭 이 고양이의 부모가 된 느낌이 든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어떤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밥을 주는 것도, 물을 주는 것도 화장실을 치워주는 것도 내가 한다. 이것도 고양이에게 필수적이니까. 나는 부모가 된 적도 없지만 어떤 존재를 책임진다는 것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주 연약하고 작은 존재가 성장하는 것을 돕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1년6개월 고양이가 누워있다(윈쪽), 2개월된 고양이가 자고 있다. 눕는 모양도 똑같다.

고양이는 물론 계속 고양이로 남을 것이다.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란다. 아이에서 자라난 성인은 한 명의 몫을 해내게 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는 부모는, 어쩌면 자식을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시간을 다 넣은, 시간과 사랑을 다 넣은 존재로써, 그리고 또 자식이 살아갈 앞으로의 그 시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계속 행복을 빌어주는 것처럼.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서 철이 들고, 여자는 아이를 낳고 철이든다는 말. 어쩌면 이 말은 남자는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책임감으로 인해 철이 드는 것이고, 여자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지켜주려는 책임감에서 철이 든다는 말 같기도하다. 

 

2개월된 고양이가 1년6개월된 고양이로 이렇게 컸다. 눈색깔은 파랑색에서 노랑색이 됐고 색깔은 더 진해졌다.

고양이와 같이 살면서 내가 경험한 적 없는 부모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사실 우습다. 하지만 우습게도 고양이가 이만큼 많이 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언제 이렇게 많이 컸니, 정말 신기하다. 쑥쑥 크는구나"라고 말하면서 마치 고양이를 내가 키우고 기를 부모가 된 냥 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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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기 고양이가 밤에 잠이 들때면 내 머리맡으로 온다. 원래는 내 발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머리맡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베게를 베고 눕는다. 내 고양이는 내 베게 옆에 자리를 잡은 뒤 몸을 웅크리고자려고 한다.

 

내 아기 고양이는 내 손에 비스듬히 누워 온기를 전해준다. 고양이에게 필요한건 내 손 면적 정도의 온기면 충분하다. 고양이는 그보다 더 많은 온기도 필요하지 않고 딱 그정도면 된다.

 

요새 고양이에게 신경을 못썼다. 원래는 퇴근한 뒤 의자에 앉는다. 그러면 고양이는 내 무릎 위로 뛰어올라 반갑다면서 머리를 부빈다. 그러면 나는 "고양이 안뇽. 잘 있었어 이쁜아."라고 중얼대면서 고양이를 쓰다듬고 뽀뽀를 해준다. 그 시간은 불과 20분도 되지 않는데 최근에 나는 짜증이 난다면서 그 20분을 고양이에게 주지 못했다.

 

고양이는 하루종일 혼자 있어서 외로웠는지 퇴근한 내 발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쓰다듬어달라고 머리를 부볐는데 최근에는 내 연애사가 너무 망해버려 고양이가 눈에 안들어왔다. 불쌍한 나의 아기 고양이.

 

고양이가 그토록 많이 외로워서였던지, 잠자리를 바꿔버린 걸까. 내가 쓰다듬어주지 않으니, 발밑에서 내 머리맡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은 뒤 여기에서라도 나와 함께 하고 싶었던걸까. 나의 숨을 가까이에서 듣고 내 팔에 몸을 기대면서 이렇게해서라도 하나뿐인 가족에게 몸을 누이는 걸까.

 

 

어젯 밤에는 내 머리맡에 자리를 튼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너는 엄마 아빠가 없지. 네 부모는 어디있니. 나도 널 데려올때 네 부모를 보지 못했는데."라고 말하다가 내가 너의 엄마가 되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가 갑자기 천상 고아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고양이에게는 나밖에 없는데. 불쌍한 내 아기 고양이에게 너무 신경을 못써줘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 들었다. 나는 내 아기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그만하라고 할때까지. 내 털뭉치 애기 고양이.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가 몰려왔다. 난 토요일 오후까지도 일을 했기 때문에 아주 아주 피곤했다.

잠도 제대로 못자는 불쌍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토요일 오후부터 집에 고양이와 같이 있었다. 고양이는 원래 할일이 없는 아이라 계속 나만 쳐다봤다. 그러다가 내 무릎에 올라와 머리를 부볐다. 나는 어린아이를 안듯이 고양이를 꼭 안고는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가릉가릉 소리를 냈다.

 

팔에 기대고 있다.

난 고양이를 둥가둥가 안아준다. 고양이는 내게 10분을 머물고 떠났다. 난 밀렸던 드라마를 보고 유튜브를 본다. 고양이는 날 지켜보다 또 내 무릎에 올라와 쓰다듬어달라고 했다.

 

고양이가 이리 자주 내게 오는걸 보니 많이 외로웠나보다. 나도 너무 힘든 일주일을 보냈는데 내가 계속 집에 없어서 이녀석도 그만큼 외로웠던거지.

 

나는 주말에 하루종일 의자에 앉았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반복했는데. 고양이도 날 쫓아다녔다..

 

 

난 계속 잠에 들었다. 고양이도 내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는 같이 잠에 들었다. 내 팔에 자신의 몸을 딱 붙이고는 잠에 들어서 쌕쌕 소리를 냈다. 나도 고양이를 계속 만지다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면 고양이도 같이 깼다. 잠에 깨서는 고양이를 손으로 더듬더듬 찾았고 여전히 고양이는 옆에 있었다. 난 고양이랑 그렇게 자다깨다 하루를 보냈다.

 

고양이를 물끄러미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60만원 가운데 이 아이를 데려오는 데 지불한 금액이 가장 값지다는 생각말이다. 처음 데려올 때 주변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는건 충동적으로 걸정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털도 많이 날리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케어하는데 생각보다 품이 더 든다고 했다. 책임이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듣고는 예의상 3일정도 심사숙고했지만 이미 첨 봤을 때부터 난 이 아이한테 반해있었던 것이다.

 

아주 작은아이일때 난 얘를 안아봤는데 그때도 참 잠을 잘잤다. 낯선 내게 안겨서도 울지도 않고 편안하게 잠을 잘 잤던 것이다. 그 때 안았던 작은 생명체와 온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난 바로 결정했다. 3일간 숙고하는 사이에 누가 채갈까 걱정하면서..

 

내 고양이는 1년 반을 나와 지내면서 아직까지도 잘 자고 울지도 않는다. 역시 아기일때 천성은 어디가지 않는다.

 

잠을 많이 자는건 나를 닮아가는걸까. 항상 침대에서 우리는 깊은 잠에 빠진다. 나는 자기전에 고양이를 부른다.

 

마치 크리스마스를 앞둬 신이난 어린 아이를 다정하게 부르는 엄마처럼. 나도 신이난 내 고양이에게 "이제 자자. 이리와. 난 잘거야."라고 말한다.

 

불을 다끄고 침대에 누으면 고양이도 내게 달려와 침대로 뛰어들고 나와 함께 쌕쌕 잠이 든다. 고양이와 지낸 시간은 1년반이 조금 넘지만 어쩐일인지 고양이가 없는 삶이 어땠는지 이제는 까마득하다.

 

왜 이렇게 꽉 안겨있어!

 

고양이를 사랑하는 눈길이 여럿 있다.

나도 항상 고양이를 바라볼 때 사랑스럽게 쳐다보지만 나라는 인간 1명을 빼고도 여러명이 더 있다.

 

내 친구들은 내 집에 놀러와서 고양이를 실제로 보고나면 예외없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마치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기 자랑을 위해 매일 아기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는 사람처럼 내 고양이를 자랑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 자랑에 관대하다.

내 고양이는 절대적 귀여움과 절대적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서 내 눈에만 이뻐보이는 것이 아니다.

내 고양이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고양이를 예뻐한다. 내가 2년 전 쯤 고양이란 생물, 그 중에서도 내 고양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그 땐 나도 고양이와 오래 시간을 보내기 전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고양이의 치명적 귀여움에 취약할 때였다.

 

 


고양이는 그 자체로 아주 귀여운 생물인데 그 중에서도 내 고양이는 갓 태어났기 때문에 더 귀여웠다. 갓 태어나서 2주밖에 되지 않은 고양이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때는 고양이가 발로 얼굴을 부비는 것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 등의 모든 행위에 깊은 사랑을 느꼈다. 내가 고양이의 매력에 취약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설렘이 강하게 느꼈다. 그 사랑은 몹시 강한 것이어서 나는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한 60만 원을 선뜻 지불할 정도였다.

고양이는 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창조주의 창의력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며 속으로 중얼거리며 기도까지 올렸다. 고양이를 창조해줘서 감사하고 고양이를 내게 줘서 감사하다며.그 때 느꼈던 첫 만남의 사랑과 설렘은 지금은 사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고양이를 잔잔한 마음으로 사랑한다.

 



어떤 새로운 사람은 그 강한 사랑과 설렘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이는 내 고양이를 만난 뒤 내가 초기에 보여줬던 깊은 사랑과 설렘을 보여줬다. 고양이에게 아직 취약한 인간들이 그렇듯이 낯선 이도 고양이라는 생물 자체를 향한 감탄과 찬사와 함께 그 가운데서도 특히 ‘내 고양이’만이 갖는 어떤 특별함을 향해서 사랑을 보내왔다.

내 고양이를 사랑하는 친구는 여럿 있지만 3명 정도는 내 고양이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 3명의 공통점은 집에 놀러와서 내 고양이와 오랜 시간 논 뒤, 그 다음날 사랑을 이기지 못해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손에 간식을 사들고 다시 찾았다. 고양이가 그렇다.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고양이 카페가 장사가 잘 되는 거겠지.

가장 큰 사랑을 보여준 친구가 있다. 그는 자신의 고오급 카메라와 편의점에서 파는 각종 고양이 간식들을 들서는 내 집을 재방문했다. 그리고서는 카메라로 고양이 사진 몇십장과 동영상을 잔뜩 찍어간 뒤 마치 자기 고양이를 자랑하듯이 인스타그램에 올려놨다. 그리고는 고양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를 했다.

 

 



내 고양이는 품종이 먼치킨(과 어떤 잡종이 섞인 잡종)인데다가 아직 어리고 팔팔해서 사람을 잘 따른다. 낯선 사람이 오면 여느 고양이처럼 숨지 않고 개처럼 킁킁대며 낯선이를 탐색하는 데 바쁘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고 낯선이에게도 마음을 열고 머리를 부빈다.

내 고양이의 이런 행동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자라나게 하는 것일까. 고양이를 향한 사랑의 눈길들이 늘어날수록 고양이는 더욱 사랑스러워진다. 사랑을 많이 받는 생명은 경계하거나 폭력적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만큼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소개합니다.

 

제 고양이는 주인을 생각해서 마스크를 갖다주기도 합니다. 보통 고양이가 주인이라고 하고 인간이 집사라고 하지만 제 고양이는 충성스러운 강아지에 가깝다고 할까요. 바닥에 떨어진 마스크를 주워다주고 있을 뿐 아니라 한번도 하악질을 한 적도 없고 할퀸 적도 없어요. 떼를 쓴적도 없고 충성스럽게 기다리고 있는 착한 아이에요.     

그리고 애교도 많습니다. 항상 제가 집에 들어오면 집 앞에서 저를 마중나와 있어요. 저 뿐 아니라 낯선 사람들이 와도 누구든지 반갑게 맞이해줍니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한테 친근하게 구는 녀석입니다. 애교도 잘 부리는 애교쟁이에요. 제가 의자에 앉으면 제 무릎에 따라 앉고 머리를 부빕니다. 

제 품에 안겨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시간이 고양이에게는 필요합니다. 하루에 20분 정도는 제 온기를 나눠줘야 해요. 아직 3년밖에 안 된 작은 고양이라서 그런건지, 사람으로 치면 20대성인이기도 하지만 고양이는 아직도 아기입니다. 따뜻하게 포옹해줘야 하는 시간을 고양이는 너무 좋아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20분이 지나면 스르르 사라집니다. 자신만의 공간으로 가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제 공간의 한 곳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입니다.     

 

고양이는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부리고 귀여워해달라고 합니다. 혼자 있는 것을 외로워하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집 밖으로 나갈 것 같은 기색을 보이면 항상 저렇게 배를 까뒤집고 귀여운 척을 하면서 가지말라고 합니다. 이럴때는 마음이 살짝 아프기도 합니다. 동생을 데려와야 할까, 는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하지만 제 고양이는 늘 조용합니다. 야옹, 하는 소리를 3년 동안 10번 정도밖에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너무 아프거나 너무 놀랐을 때만 야옹, 하고 소리를 냅니다. 침묵을 좋아하는 고양이에요.

고양이는 예쁘고 착하고 조용하고 사람을 잘 따릅니다. 고양이에게는 팬이 많습니다. 제 친구들중에는 고양이를 보러 제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도 몇 명 있습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제 집에서 만나는 장소를 정하는 것은 한가지 이유 때문이죠. 고양이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어린 팬은 제 4살 조카입니다. 제 조카는 고양이와 노는 시간을 항상 기다리고 있어서 식사를 건너뛰고 싶어합니다. 밥을 그만먹고 야옹이랑 놀고 싶어, 라고 말하면서 이모 밥을 이제 그만 먹어, 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고양이와 제 조카는 2018년 1월에 태어났는데, 어떻게 보면 사실 동갑입니다. 둘은 친구이기도 하지만 고양이의 삶이 훨씬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고양이의 나이가 훌쩍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제 조카랑 잘 놀아주는 셈이겠죠. 제 조카도 짓궂게 군적은 없고 야옹이를 관찰하고 쓰다듬어주고 쉴새 없이 물어봅니다. 야옹이는 왜 꼬리가 있어? 왜 수염이 있어? 왜 이렇게 앉아? 고양이는 항상 제 조카의 곁에 있어주고 머리를 부벼줍니다. 깨물지도 않고 할퀴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옆에 있어줍니다. 이럴 때 보면 고양이는 마치 철이 든 성인 같기도 합니다. 

 

고양이는 가리는 것도 없고 예민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처음 고양이 분양샵에서 고양이를 봤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2개월짜리 아기 고양이들이 많았기 대문에 저는 한 마리씩 제 품에 안아봤습니다. 제 품에 제일 조용히 가만히 안겨있는 아이가 바로 이 고양이었습니다. 낯선 제게도 몸을 내어주며 쌔근쌔근 잠드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고 그 순간 저는 사랑이 마음에 가득차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동물을 한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저는 일주일 정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다시 오라는 분양샵 아저씨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갔지만 애가 탔습니다. 내 고양이를 누가 데려갈까봐서 겁이 났거든요. 제 마음에 사랑을 가득 심어준 아이는 3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일상들이 참 좋습니다. 그저 3키로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가 제게 주는 행복은 너무 큽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가 사랑받고 있으니 저도 참 행복합니다. 고양이가 죽기 전까지 사람을 계속 무서워하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서 어떤 폭력도 받지 않은, 폭력을 경험해보지 못한 순수한 동물로 그렇게 살다가 갔으면 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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