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랑 같이 지낸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고양이가 싫었던 적은 두번 있었다. 처음은 자고 있는데 고양이가 내 머리칼을 갖고 장난을 치다가 할퀴어서 눈쪽에 상처가 났을 때다. 두 번째는 오줌을 아무데나 싸기 시작했는데 며칠동안이나 개선되지 않았을 때였다. 고양이가 노트북을 망가뜨려서 몇십만원을 수리비용으로 지불했을 때는 크게 화나지 않았다.

 

고양이가 싫었던 적은 그 때 두 번이었고 그래도 금방 화가 풀려서 고양이를 다시 좋아하게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양이가 더 좋아지고 있다. 이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내 고양이는 엄청나게 애교가 많고 스킨십을 좋아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나를 계속 쫓아다니다가 내가 의자에 앉으면 내 무릎에 뛰어올라와 나에게 머리를 부빈다.

 

나는 그 10분 남짓한 시간이 너무 좋다. 고양이는 꽤 외로운 모양인지 날마다 만져달라고 한다. 무릎에 올라와 내 어깨에 발을 대고 머리를 내게 부비는 그 시간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조용하다. 이 시간을 함께 할 때마다 내가 고양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

잠에 들기 전에도 고양이와 함께 잔다. 내가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으면 고양이는 잘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지 내 머리맡에 다가와 웅크리고 같이 잠에 든다. 고양이가 깊은 잠에 빠질 때면 쌕쌕대는 숨소리가 커지고 어떤 잠꼬대같은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꼭 내게 보내는 신뢰와 사랑처럼 느껴진다.

 

내 생각에는 고양이가 지금 이 순간이 편안하고 좋기 때문에 내 곁에서 잠에 푹 든 것만 같아 잠꼬대까지 하는 고양이를 보면 고양이를 향한 사랑이 커져간다.

 

고양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다가 고양이를 꽉 끌어안았던 적이 있다. 내 고양이는 나의 포옹을 언제나 반겨준다. 가만히 있는 고양이가 기특하게 느껴져 나는 혼잣말로 “우리 계속 이렇게 같이 살자. 너랑 나랑 둘이서. 우리 계속 이렇게 살자”라고 말했다.

 

고양이는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머리를 내게 부비고 배를 뒤집어 보여준다. 난 그 모습이 너무 귀엽게 느껴져서 혼자서 크게 웃었다. “너도 좋아? 그래 알았어”라고 혼자 대답을 했다.

 

고양이 TMI 2번째! 내 고양이의 사소한 버릇들을 소개한다.

 

내 고양이는 엄청나게 순한 편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머리를 부비며 친절하게 대한다. 낯선사람이 집에 왔다고 숨지 않는다. 강아지처럼 문 앞에 나와서 마중하고 환영해준다.

 

동물병원에 가서도 수의사들이 많이 하는 얘기가 정말 순하다, 는 것이다. 수의사가 고양이를 진료하기 위해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거나 등가죽을 잡거나, 어떻게 잡고 있어도 고양이는 가만히 있는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 야옹, 애처롭게 울기도 하지만.. 얌전하다.

 

 

내가 고양이를 계속 만지고 있어도 고양이는 가만히 있는다. 발바닥을 만지고 배를 만져도 가만히. 너무 순한 아기 고양이다. 가끔 신경질이 날때는 내 손을 깨물기도 하지만 아프지 않게 문다.

 

내 고양이는  대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대전에서 서울로 바로 이사왔기 때문에 태어나고 2개월 만에 서울고양이가 됐다. 내 4살조카는 동탄에 살고 있다. 이 4살아기는 내 고양이를 서울고양이라고 부른다. 나를 서울이모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실은 내 고양이는 사실 대전고양이라는 거. 물론 출신만 대전이고 주 거주지는 서울이다. 

 

 

내 고양이는 먼치킨 롱레그다. 먼치킨하면 삼시세끼에 나왔던 다리가 엄청 짧은 올망졸망한 고양이를 떠올리지만 내 고양이는 다리가 길다. 아무래도 잡종인 것 같지만 순종인것도 같고(먼치킨 롱레그라는 품종이 있나?) 잘 모르겠다. 먼치킨 품종이 고양이 중에서는 인간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 고양이도 사람을 잘 따르는 것 같다.

 

내 고양이는 내 무릎에 올라올 때 특유의 순서가 있다. 먼저 책상 위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내가 다리를 꼬고 앉다가 다리를 풀면 내 다리를 다리삼아 건넌다. 다리를 다리삼아 사뿐사뿐 걸어서 내 쪽으로 오려고 한다. 몸을 쭉 펴고 두 다리를 내 허벅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내 왼쪽 어깨에 배를 착 대고 안긴다. 내 어깨에 매달린 자세로 있다가.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가르릉 댄다.

 

고양이가 왼쪽 어깨를 좋아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왼쪽 어깨에 턱을 대고 매달려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고양이의 엉덩이를 받치고 안아주면 어깨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편한 자세로 아기처럼 안겨있다. 

 

 

 

고양이를 때리거나 죽인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내가 고양이를 키워서 그런지 그런 뉴스를 보게 되면 화가 난다. 고양이는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되는 약한 동물이다.

 

고양이를 키워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가볍고 조그맣다. 안고 있을때는 작은 아기같고 누워서 자는 모습을 보면 천사같다. 고양이는 인간들이 구분 짓는 선과 악, 그 경계를 벗어나 있는 동물이다. 가치중립적으로 그냥 가만히 있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사는 연약한 동물일 뿐인데, 고양이보다 힘이 세다고 고양이한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느낄 수 있다. 고양이는 정말 작고 연약한 동물이라는 것을.

 

나는 고양이가 내게 오면 머리와 목, 등을 쓰다듬어 준다. 한 손안에 들어오는 머리와 목은 너무 연약해서 내가 손에 힘을 조금만 줘도 고양이는 쉽게 다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얌전히 쓰다듬어 준다. 고양이는 약한 동물이니, 약한 동물처럼 대해준다.

고양이가 가끔 발톱으로 할퀴거나 나를 물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뭐 크게 다치는 거 아니니까 나는 그러려니한다. 대신 고양이의 발톱을 자주 잘라주고 고양이가 물 때는 이제 그만 만지라는 신호로 알고 손길을 거둘 뿐이다.

 

약한 자에게 약하게 대하고,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대하는 것은 인간 사이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도 해당되는 것 아닐까. 나보다 모든 점에서 연약한 동물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일은, 어떤 도덕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엄청나게 오랜만에 본 것인데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애들은 여전히 그애들 그대로 존재했고 시간만 흘렀을 뿐이었다.

 

우리는 몇년 만에 만나서 생각나는 것들을 얘기하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나의 고민에 친구는 "너는 능력이 있어서 다른 데 갈 수 있어도 워낙 잘하니까 더 있어도돼"라고 받아줬다. 그것은 내가 회사에서 받고 있는 대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회사 상사에게 받는 '마음에 들지 않음', 상사가 내게 쏟아내는 부정적 마음들, 모욕과 인격모독 같은 것들은 내 안에 깊은 분노가 자라게 했다. 나는 항상 '이 회사를 어떻게든 망하게 하리라'는 생각을 해왔다.

 

내 친구들은 회사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를 대우하는 것이 달랐다. 나는 강한 분노에 속해 있다가 친구들의 사랑안으로 넘어왔다. 우리들은 친구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서로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 진심이 담긴 눈과 말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나는 '이 순간은 아무도 내게서 빼앗지 못한다'는 생각을 깊게 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내가 느끼는 행복함은 오롯에 내것이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인간들은 회사에 몇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준다. 나는 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괴로우면서 노동을 파는 것보다 내 시간을 파는 것이 더 괴롭다고 느꼈다.

 

내가 고통스러운 시간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 시간에 내 자유의지가 사라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부정적 감정에 있다는 것이 언제나 괴로웠다.

나는 '존재'냐 '소유'냐 딜레마에 한없이 빠져있다. 나는 늘 소유하기 위해 바쁘다고 생각했다. 어떤 소유들. 재산 뿐 아니라 학벌이라는 타이틀, 근사한 직업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근사한 물건 같은 실제적 소유를 한없이 추구했다. 내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있느냐, 내 이름으로 된 재산 같은 것들.

 

그러나 가끔은 소유보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순간에 느끼는 소중함과 기쁨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느냐와는 상관없이 내가 지금 느끼는 존재함인 것이다.

내가 나의 고양이에게서 느끼는 그것, 그것은 소유보다 존재였는데 이것은 고양이를 비롯해 내 친구들도 내게 선사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행복한 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와서는 고양이와 함께 누워서 잠을 잤다. 친구들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가 함께 보냈던 행복함을 다시 선사했고 고양이는 귀여운 존재 자체로 내 옆에 있어주면서 내게 행복함을 선사했다.

 

무언가를 계속 소유하기 위해서보다는 가끔 그저 그냥 그렇게 행복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4살 조카가 이모가 집에 가지 말았으면 좋겠을 때 꼬시는 법이다.


4살 아이는 이모가 짐을 싸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왜? 라고 묻는다. 

이모 집에 가야지. 라고 말해도 전혀 못 알아들은 척하고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왜요? 라고 다시 묻는다. 그 얘기를 듣는 이모는 뭔가 아이가 안쓰러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 다음에 이모 우리 다이노 만들어야되잖아. 이따가. 라고 자석블록 같이 만들자고 말한다. 이모와 같이 만들다가 다 완성하지 못한 공룡을 만들자고 한다. 이모를 집에 붙들어 둘 수 있는 건 아이에게는 몇가지 방법이 없다. 자기와 같이 놀자고 하는 것이다. 너가 다 부술거잖아. 라고 되받아친다. 안 부술건데. 4살아이는 갑자기 착해진다.

 


그래도 안되면 이모 물통 내꺼야. 하고 이모의 텀블러를 가져간다. 이거 내가 가져야지 하고 이모가 집에 가져가려는 짐을 숨겨놓으려고 한다. 그러면 이모도 4살아이의 돼지 장난감을 하나 들고 이건 이모가 가져갈게. 라고 말한다. 그러면 4살 아이는 금세 울상이 된다. 안돼애애애~ 내 꿀꿀이야. 라고 말하면서 징징 댄다. 그렇다면 교환에 성공할 수 있다. 

 


안녕. 이모 안아줘. 하면 4살 아이는 착하게도 이모를 꼭 안아준다. 아이는 울거나 떼쓰지 않는다. 그저 그대로 다른 관심사가 생겨 그리로 옮겨간다. 아이란 참 빠르게 관심사가 생기고 새로 또 재밌어하는 존재다. 그저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그대로 다른 일로 옮겨간다.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겠다.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엄청난 회복탄력성이다. 

다섯살이 된 조카는 내 고양이를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자기 방식으로 좋아한다. 계속 만진다. 도망가도 쫓아가서 만진다. 구석으로 숨으면 그 구석으로 쫓아들어간다.

 

그리고 왜 자꾸 나를 피해? 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조카의 머리와 얼굴을 막 만지고 배를 간지럽힌다. 누가 널 이렇게 계속 만져서 너가 싫어서 도망갔는데 쫓아다니면서 계속 만지면 넌 좋아? 고양이가 너 싫어할 것 같아.

 

조카는 입을 비쭉이며 나는 가만히 있을건데. 라고 한다. 아닌데. 너 저번에 이모한테 살려달라고 했는데. 난 약올리면서 웃는다. 깔깔깔.

똘똘한 아이는 고양이한테 미움을 받기는 싫은 모양이다. 이제 더 고양이를 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양이를 안아준다. 그리고는 내가 안아주는데 왜 자꾸 움직여? 라고 묻는다.

 

그건 불편하니까. 너가 불편하게 안고있으니까. 너가 고양이 머리를 아래쪽으로 해서 자꾸 머리를 박으니까 고양이가 도망가지. 설명을 해준다.

 

아이는 깔깔 웃는다. 왜 그런건지 궁금한건 아닌 모양이다. 그냥 동물이 자신한테 안겨있다가 미끄러져 빠져 나가고 다시 잡으러 가고 다시 빠져 나가고. 이런 상황이 재밌는  모양이다. 그냥 계속 웃고 웃는다.

 

아니면 아직 작은 아이라 훨씬 작은 생명체를 만나보지 못해서 형아가 된 기분이 좋은가. 나도 뭔가 번쩍 번쩍 들 수 있다는데 기쁜걸까.

 

아이는 2018년 1월에 태어났고 고양이는 2018년 2월에 태어났다. 아이는 16키로이고 고양이는 4키로다. 나는 고양이를 4년째 키우고 있고 내 동생도 아이를 4년째 키우고 있다. 하지만 내 고양이는 이제 고작 10년정도 더 살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고양이를 자주 만나게 해 아이가 내 고양이를 사랑하게 만들어서 우리 10년 후에 고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 머리를 박고 같이울자. 이게 내 바람이자 큰그림이다.

 

그때까지 아이와 내가 고양이를 같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계속 함께 했으면 좋겠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있는 만큼 나중에 그만큼의 슬픔이 깊어질까봐 어쩐지 무섭다.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자라기만 아이의 시절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시절을 지나야만 비로소 성장을 할 수있고 인간이란 생명체가 돼 드디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시기가 찾이오는 것처럼. 나의 훗날 어느 시기에도 내가 예상치 못한 슬픔이 있겠지만 또 기대치 못한 기쁨도 있을 것을 안다.

 

그저 자라고 무럭무럭 잘 크는것만 해도 되는 아이의 시절.

 

이 시절의 아이는 정말 타고난 그대로 지내고 있다. 그걸 보는게 난 즐겁다. 정말이지 인간이란 사실 원래 반짝반짝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이 아이는 고양이의 자세를 한번 보고 너무 잘 따라한다. 한번 보고는 고양이 자세를 흉내낸다. 정말 타고난 재능이다. 이건 요가 자세, 스핑크스 자세인데. 배우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잘하는거니.

 

보라는 때때로 현성을 생각했다. 아무런 서사도 아무런 정보도 없는 만남이었다. 그런데도 현성과의 짧은 만남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보라와 현성은 서로 누구인지도 모른채 통화를 했다. 술에 취한 보라는 혀가 꼬부라져서는 엉엉 울다가 웃다가 애교를 부렸다. 그게 귀여워서인지 현성은 보라를 만나고 싶다고 졸라댔다. 현성은 추론에 추론을 더해 보라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둘은 만났다.

 

보라는 아무말이나 하고 있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현성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보라는 현성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너는? " "하지만 나는 보라가 누구인지 모르는걸" "그렇지만 보라는 현성이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현성이는 아니야? 그런거야? 얼른 좋아한다고 말해. 얼른! " "그래 보라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런데 제일 좋다면서 왜 얼굴을 안보여주니." 따뜻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보라는 집이 어딘지 말을 안해줄 수가 없었다.

 

"현성이는 보라한테 뭐 해줄건데?"

"뭐를 해줄까. 뭐 해줬으면 좋겠어?"

"음 안아줄래?"

"그래 내가 안아줄게."

"안아만 줘야 돼 알았지?"

"그럴게."

 

보라는 안아만 준다는 현성의 말이 개수작이나 느끼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그저 달콤하게만 느껴졌다. 일면식도 모르는 남자지만 보라를 안아만 줄 것 같았고 그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현성이를 만나게 됐다. 보라는 현성을 발견하자마자 현성이에게 가서 안겼다. 길을 잃고 헤매던 새끼 양이 엄마 품에 돌아와 안기듯이. 그렇게 와락.

 

키가 큰 현성의 어깨는 보라의 머리 위를 훌쩍 넘었다. 단단한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고 보라의 어깨를 감싸 안는 현성의 팔이 따뜻했다. 현성은 보라의 등을 쓰다듬고 머리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품에서 떼 보라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보라는 내가 현성의 마음에 들었을지, 두근대며 기다렸다. 현성은 다시 보라를 안았다. 그녀는 조바심이 났다. 그의 마음에 들었을까. 통과인가. 아닌가.

 

보라는 현성의 허리를 잡고 얼굴을 가슴에 묻고 한참을 서 있었다. 자신이 사는 집 근처 골목에서. 어두운 골목에서. 그녀는 이곳을 앞으로도 수 십번, 수 백번을 지나다닐 것이고 그때마다 가끔 현성과 자신을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그 장면은 어떻게 기억될까. 한 때 외로움에 미쳐 행했던 어리석은 행동으로 기억될까. 성욕을 쫓아 온 어떤 남자의 실패담으로 기억될까. 아니면 그저 아름답게 포장한 사랑스러운 포옹으로 기억될까.

 

아무려면 어때. 보라는 이 순간이 지속하길 바랐다. 현성은 보라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우리 이틀 뒤 이곳에서 오후 3시에 보자”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둘은 십여분을 더 안고 있었다. 그리고 현성은 손을 흔들며 사라졌고 보라는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둘은 헤어졌고 때때로 보라는 그곳을 지나며 현성을 생각한다.

 

 

보라는 그렇게 환과 헤어졌다. 환은 보라에게 막 대했다. 보라는 그게 막대한 건지 환의 성격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환을 사랑하자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기분이 나빠져서 성질을 내니 환은 연락을 끊어버렸다. 보라는 마음이 아팠다. 이정도밖에 안되는 쉬운 인연인가 했다. 환을 사랑하고자 했는데 환은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었다.

 

한편으로 보라는 속이 시원했다. 그와 좋았던 기억이 없어서인지 그를 금방 잊었다. 사실 보라는 그를 사랑했다기보다 그가 그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한 셈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재력과 그의 사회적 위치였다. 그는 그녀에게 나중에 살림을 하지 않아도 되며 운전 같은 건 하지말고 택시를 타고 다니라고 했다. 그는 부자였다. 또 서울대 출신이었고 현재 유망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니 앞으로 성공은 따라오게 돼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가져다줄 아름다운 미래가 사라져서 보라는 슬펐을 뿐이다.

 

보라는 그녀에게 그 정도로 찬란하게 아름다운 미래를 가져다 줄리가 없겠지만, 성실하고 똑똑하고 다정한 현우를 만나보기로 했다. 마음이 따뜻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그는 성실했다. 현우는 큰 야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 점이 보라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다. 가끔 우울한 것도 같았다. 다른 가능성이 없을 것 같은 삶이 펼쳐진 것만 같아서.

 

하지만 그건 안정감일수도 있다. 현우의 일상과 반복적인 루틴이 보라에게는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우의 그러한 점이 삶에 안정적 기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라는 늘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극도로 불안정한것을 파악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더 불안정해 보이는 현태였다.

 

보라와 현태는 소설 얘기를 시작하는 사이로 친밀해졌다. 현태는 소설로 등단한적이 있는 작가였다. 한때는 소설을 열심히 썼으나 이제는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보라는 언젠가는 등단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할 뿐이었지만 현태는 그 꿈을 현실로 이뤄낸 사람이었기에 그가 멋있어 보였다.

 

둘은 소설과 소설가들에 대해 오래도록 얘기를 하다가 종종 자신이 꾼 꿈들에 대해서도 말했다. 꿈에서 세계의 종말을 겪었다든가 음악이나 단어의 상징이 나온다든가 하는 얘기였다. 보라는 소리가 시각화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보라의 꿈은 이렇다. 

나는 꿈에서 내 조카의 이름을 불렀으나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ㅇ과 ㅅ이 들어간 아름다운 글자였는데 혀를 아름답게 굴리면 나오는 부드러운 소리라는 것만 기억이 났다. 연성, 성연, 연수, 수영, 성우, 승우.. 어떤 글자의 조합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꿈이라는 무의식에서 깨어나 그 글자의 정체가 성연인 것을 떠올렸다. 무의식에서 나는 부드럽고 하얗고 푹신한 구름 사이로 떠돌아다니며 내 조카의 이름을 끝없이 조립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성연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성연은 내게 "이모, 하늘의 구름같이 폭신한 곳이야" 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급한 표현이라는 것을 나는 바로 알아챘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어도 그 무의식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찾기는 어려웠다.

 

현태는 보라의 이런 꿈 얘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보라는 현태의 집중함과 사소한 관심에 깊은 애정을 느꼈다. 그녀의 사소한 기억을 현태가 감싸안 듯이 보아주니 보라는 안정감과 깊은 애정을 느낀 것이다. 현태와 보라는 오래된 친구처럼 연인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사적이고 사소하고 쓸데없는 얘기를 오래 했다. 하지만 현태는 별안간 보라에게 등을 돌렸다.

 

현태는 데이트 전날 보라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라며 무섭다고 약속을 취소해버렸다. 현태는 보라를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는 그녀가 멘탈이 아주 바스라져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녀를 툭하고 아주 살짝만 건들여도 그녀가 사방으로 부서져 그 유리조각에 그의 발이 다쳐 피가 철철 흐를 것 같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보라가 그렇게 멘탈이 바스라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깊이 사랑한다는 전제를 필요로 했는데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의 예측대로라면 보라는 그를 곧 사랑하게 될 모양이었으며 그렇게 되면 보라는 그에게 집착하게 될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그는 불행해질 것이었다.

 

보라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사실 보라는 그를 사랑할 것 같기는 했다. 그는 멀끔하고 키가 크고 똑똑하고 그녀의 말을 잘 들어줬으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녀는 쉽게 사랑에 빠지니까. 아니, 그녀는 사랑에 빠질만한 구석을 너무 쉽게 발견하는 성격이니까. 그렇게 되면 그도 어쩌면 보라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을 테고, 아니 사실 그도 보라를 사랑할 준비를 마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성급히 보라를 밀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현태는 보라의 정서적 불안정함을 파악하자마자 그녀와의 만남의 싹을 잘랐다. 시작도 전에 싹을 아예 툭 잘라서 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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