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 편의점 영업관리직이 하는 일. 

인터뷰 

 

출처 : 캐치

 

“전화가 엄청 와, 제일 많이 받았을 때 하루에 한 120건도 받은 적 있었어”

 

취업 유튜브 ‘캐치TV’에서 편의점 영업관리직으로 7년 근무하고 퇴사한 분을 만나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상상과는 다른 실제 편의점 영업관리직 근무 현실부터 관련 직무 취업 팁, 그리고 퇴사를 결심한 진짜 이유까지 궁금한 부분을 모두 물어봤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내용 함께 살펴볼까요?

 

✔ 편의점 영업관리직으로 입사하려면? 

 

Q. 편의점 영업관리직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는?

별 다른 스펙이 없고 알바를 오래 했다. 군대 전역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앞에 편의점이 생겼더라. 거리가 가까우니까 지원해서 오래 일했다. 하루는 취업 고민을 하다가 편의점 유리창에 붙은 회사명을 보게 되었다. 오래 일했으니까 저 회사에 지원하면 되겠다 싶었다. 

 

Q. 편의점 영업관리직은 스펙을 안 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실제로 스펙을 안 봤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원자가 너무 많으니까 비교적 학벌이나 학점 좋은 친구들이 많이 합격하는 것 같다. 입사해서 실력 좋은 친구들은 본사로 가기도 한다. 

오해는 안 했으면 하는게 채용에서 학벌이나 학점은 크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것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뭐라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일 적인 측면에서도 잘하는 것 같다.  

 

 

✔ 편의점 영업관리직의 진짜 근무 현실 

 

Q. 영업관리직이 점포를 운영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하는 일은?

취준생들이 영업관리직이라고 하면 삼각김밥 진열하는 법 그런 쉬운 업무만 맡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아니다.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10~15개를 맡아서 관리하는 업무인데 사건 사고가 나면 모두 영업관리직이 해결해줘야 한다. 퇴근 후 8~9시에 전화 오는 건 일상이다. 

한번은 부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새벽 1시에 손님이 여기는 왜 24시간 운영을 안 하냐며 내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한 적도 있다. 알고 봤더니 점주와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이었는데 점주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본사 직원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정말 별의 별일이 다 있다. 

 

Q. 영업관리직의 하루를 설명한다면? (ft. 연봉은?)

매일 루틴하게 근무하지는 않고 그날그날 스케줄을 알아서 관리한다. 내가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점포를 쭉 돌며 관리를 하고, 좀 안 좋은 날에는 사무실에서 서류 업무만 보기도 한다. 사실, 팀에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연봉 같은 경우는 신입사원 초봉이 인센티브 포함 4300~4500으로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상승률이 아쉽다. 5년~7년 근무했지만 성과급 제외하면 최고 연봉 5천을 넘겨본 적이 없다.

 

Q. 결국 퇴사를 결심한 이유?

‘편의점 사업이 앞으로 미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배달의 민족에 B마트도 있고 온라인 배달도 너무 잘되는데 편의점에 갈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무엇보다도 전화를 그만 받고 싶었다. 손님이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먹어서 컴플레인이 들어온 경우, 점주가 사과하기 싫으면 영업관리직인 우리가 사과해야 한다. 또 본사에도 경위서를 따로 올려야 한다.  

 

Q. 영업관리직 동지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선배가 해줬던 말인데, “그럴 수 있다” 다섯 글자만 마음에 꼭 품고 다니라고 하더라. 뭔 일이 일어나더라도 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너무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어쨌든 해결은 된다. 

 

 



💭 번외 인터뷰) 편의점 개점 추천하는지?


자리만 좋다면, 그리고 편의점 업무를 도와줄 조력자가 있다면 하라고 추천한다. 자리가 좋은 편의점은 장사가 잘되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월세나 여러가  지 요인이 작용한다. 실제로 점주에 따라서도 매출이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편의점을 차린다고 끝이 아니라 발주나, 고객관리나 꾸준히 신경을 써야 한다. 


추천하는 브랜드는 퇴사한 브랜드이긴 하지만 CU를 추천한다. 다른 곳은 안 다녀봐서 잘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CU는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잘 벌 수 있게 할까 ‘ 최소한 가맹점주를 생각해주는 곳이다. 

순살브리핑이라는 뉴스레터에서 정리해준 것.

 

‘페트로 달러’는 가고 ‘페트로 위안’의 시대가 온다?💰
▪ 중동에서 석유를 사 오려면 먼저 사야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달러. (금융제재 중인 러시아를 제외하고) 현재 전 세계에서 원유 거래는 100% 달러로 이루어짐. 이러한 체제를 ‘페트로 달러’라 하는데, 1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4년 당시 석유 생산량 1위 사우디아라비아가, 앞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도 100% 달러로만 원유를 거래하겠다고 약속한 것. 덕분에 달러 가치는 up, 1971년 금태환 중지 이후 가치가 폭락하던 달러는 원유 무역시장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기축통화로 자리 잡고 전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게 될 수 있었음
 
▪ 물론 사우디 입장에서도 공짜로 해 준 건 아님, ‘페트로 달러’의 대가로 군 현대화 작업 + 전투기 60대 등 대규모 군수 물자를 수입할 수 있게 된 것. 덕분에 사우디는 미국에게 안보를 보장받게 되면서 (1970년대 중동 전쟁으로) 불안한 정세 속에서 중동의 패권국으로 자리매김. 미국 역시 이전에는 이란 (시아파)과 사우디 (수니파)를 양 축으로 두는 중동정책을 펼쳤으나 이때를 기점으로 사우디에 더욱 밀착, 석유라는 현대사회의 엔진을 매개로 두 나라는 혈맹으로 거듭났음 
 
▪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 셰일 혁명으로 인해 두 나라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 미국은 세계 1위를 다투는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원유 소비량으로 인해 사우디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었음. 그런데 자국 땅에서 셰일오일을 대거 시추할 수 있게 되면서 사실상의 원유 자급자족을 이뤄낸 것. 실제로 2010년 초 하루 540만 배럴을 생산했던 미국은, 2019년 말엔 하루 1,229만 배럴 (세계 1위)을 생산. 덕분에 유가는 매해 하락을 거듭, 원유 판매 수익이 국가 재정의 근간인 사우디에게 미국은 더 이상 최대 고객이 아니게 되었음
 
▪ 그 틈을 파고 들어온 나라가 바로 중국. 현재 사우디의 최대 고객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 사우디 전체 원유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8%. 게다가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투자 기조를 보았을 때 최대 고객 자리를 다시 탈환할 가능성도 낮아 보이는 게 사실. 그러자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지기 시작. 안 그래도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두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여 온 사우디 입장에서는, 호의적인 손길을 보내오는 중국이 싫을 이유가 없는 상황. 이에 작년 12월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
 
▪ 그리고 그 중국이 노리는 것은 바로 ‘페트로 위안’. 세계 경제 및 금융시장에서 달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은 항상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음. 그런데 만약 사우디를 구워삶아서 ‘페트로 달러’ 체재를 깬다면, 그토록 바라던 위안화의 기축통화화가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것. 다만 사우디 측에서도 미국의 반발을 걱정하며 일단 원유의 위안화 거래는 거절한 듯,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교류는 대폭 확대. 미국 입장에서는 수십 년간 지켜온 달러 패권의 문제가 달려 있기에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상황

폴란드, 독일은 1800조원 내놔라
순살 TMI🤐

✔️1974년 사우디-미국 간의 협정 이후, 1976년 OPEC 회의에서 이란은 유가 인상을 추진했으나 사우디 (=저유가를 원하는 미국)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 이로 인해 이란의 경제난이 심화되어 친미정권이 몰락하고 반미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이 집권.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란과 미국의 적대 관계가 시작된 지점

✔️2010년대 셰일오일 기업들로 인해 유가가 꾸준히 하락했음에도 사우디는 원유를 오히려 증산하면서 맞불작전으로 대응. 덕분에 저유가를 버티지 못한 셰일 기업들이 2010년대 말 들어서 대거 좀비화되면서 파산, 셰일 업계에 큰 타격을 안겨주었음. 다만 2022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촉발된 고유가 사태로 인해 다시 셰일 업계가 살아날 조짐이 보이는 중

✔️당장 사우디가 ‘페트로 위안’은 거절하긴 했지만, 중국과 의미 있는 교류를 많이 늘림. 특히 미국의 제재를 받는 화웨이와 MOU 각서를 체결했을 뿐 아니라, 무인항공기 제조 계약과 같은 군사적 협력 사안도 공개. 미국 입장에서는 굉장히 거슬리겠지만, 일단 사우디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최대한 이득 빨아먹겠다는 모습

 

 

 

순살브리핑은 

국제 경제와 시사를 정리해주는 뉴스레터인데,

정리가 잘 돼 있어서 이것만 봐도 국제뉴스를 안봐도됨. 

구독은 여기서.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1845

디퍼라는 사이트가 있다. 

한번 체험해보는 툴킷을 제공한다. 

 

https://www.differ.co.kr/home/

 

differ

성장을 위한 질문. 저마다의 가능성. we all differ.

www.differ.co.kr

 

나도 종종 이용하고 있다. 

 

이번에 좋은 툴킷이 나와서 체크해봤다. 

 

나는 동그라미 유형이다. 

 

호기심이 많고 하고싶은 것도 많아 시작을 잘한다. 의욕이 넘치지만 끈기가 부족해 잘 포기하는 유형이다. 

 

살면서 도전한 것은 많지만 지속하는 힘이 부족해 배우다 만 것이 많다. 실행력이 가장 큰 장점. 지구력이 부족한 것은 단점이다. 목표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해가는 힘이다. 지구력 훈련을 통해 작심삼일을 타파해보자.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는 환경에 스스로를 놓아두자

하루 1시간 동안 각자 할 일을 하는 줌 모임을 만들어보자

ʻ함께 공부해요’ 컨셉트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놓고 꾸준히 집중해보는 것도 좋다

ʻ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라’는 ‹미생›의 명대사처럼 체력이 약하면 승부 따윈 상관없어진다

러닝 크루 배드민턴 동호회 등 모임에 가입하면 재미있게 운동 습관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자극을 좋아하지만 지구력이 부족한 당신에겐 꿈틀거리는 내 안의 도전 의욕을 자극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함께 모여 챌린지를 하는 커뮤니티에 가입해 보자

아예 돈을 걸어보는 것도 스릴있지 않을까?

나는 2020년 여름에 서울시에서 심리상담을 7회기를 받았다. 1대1로 심리상담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고 당시 나를 괴롭히던 것은 회사에서 받는 갑질로 인한 분노였다.

 

분노가 너무 커서 일상생활에서 항상 화가 나 있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전혀 베풀지 않았 언제나 싸울 태세로 지냈다. 회사와 상사를 향한 분노는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어떻게 복수를 할까, 그들을 어떻게 힘들게 할까, 이러한 생각들을 구체화하는데 쓰였다.

 

심리상담을 받게 된 계기늗 일단 공짜였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고 주변에서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별 걱정없이 심리상담에 임했다. 처음에 굉장히 낯설고 어색했는데 상담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편하게 하라고 해서 회사에서 힘들어서 분노가 심해서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에, 상담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논리에 따라서 살아간다고 말해줬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이상해보이더라도 그 사람만의 논리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나는 이 상담사는 내가 어떤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더라도 잘 받아들여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상담사에게 누구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부분들, 예를 들어 내가 어느정도로 화가 났는지, 어느정도로 소리를 질렀고 어느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는지를 얘기했다.

 

상담사는 내게 심하게 분노하는 상황이 또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돌아보니 엄마와 싸울 때, 그 누구도 아니고 엄마와 싸울 때만 유독 그렇게 심하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도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를 생각나는 대로 줄줄이 얘기를 했다.

 

내가 어떤 감정이 들었을 때, 분노했을 때, 나는 무엇을 바랐던가. 상담사는 그것을 물었다. 무엇을 바랐는데 그것이 좌절돼 그렇게 화가 난 것인가요. 나는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아주 심하게 분노했을 때, 내가 바라는 것이 있었다. 강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좌절된 후, 그것을 좌절시킨 그 사람을 향한 맹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상담사는 주로 질문을 했다.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왜 그랬는지, 비슷한 상황은 또 언제 있었는지, 등등이었다. 난 상담사가 조언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 혹은 답을 찾아주는 줄 알았는데, 질문만 하고 답은 내가 찾는거였다.

 

질문 덕에 나는 얘기를 하면서 공통점을 계속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인정받는 것, 내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원했다. 그리고 내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훈계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시선이 곧 나의 자아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상담사가 적절하게 질문을 해줬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었다. 생각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던 전제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그것은 난 여전히 칭찬에 목마른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갈구하고 특히 엄마의 시선과 인정, 긍정적인 반응을 너무도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대감을 낮추기로 했다. 엄마는 나를 칭찬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엄마는 아주 상냥한 사람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했다. 그랬기에 그걸 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 존재 가치를 엄마,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두지 않기로 했다.

깊은 생각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전제를 찾아낸 것이 나한테는 너무나도 큰 수확이었다. 내 입으로 내가 말한 명제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좀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상한 명제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큰 효과를 봤다. 더 이상 나는 엄마를 향한 분노가 일지 않으며 엄마와 싸우지도 않는다. 엄마랑 만날 때마다 싸우던 지난 날과 비교하면 아주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한결 자유로워졌다. 나에게 심리상담의 효과가 아주 큰 편인데 상담사는 그 이유로, 생각을 말로 구체화하는 연습을 많이 한 것과 생각이 잘못됐다고 판단이 들 때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을 꼽았다.

 

사실 심리상담을 받는 날이면, 그 한시간의 상담이 끝나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내가 사실은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이렇게 감정을 표현했구나. 그토록  많은 생각들 사이에서 단순하게도 나는 그저 인정받기를 원했을 뿐이구나. 그것을 직면하기 싫어서 이리저리 돌고돌아 현학적으로 생각을 했구나. 이런 생각을 끝없이 했다.

 

심리상담을 마치고 나 자신에 알게 된 것은 이런것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해결책들은 이런것들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을  때, 그 감정이 드는 나 자신에게 단순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너는 지금 불안하구나.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이야. 불안할수밖에 없어. 불안하구나. 불안하지만 괜찮아. 불안한 것은 당연해.

 

그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형편없고 못났다, 는 식의 부정적인 가치평가는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위로의 얘기를 계속 해주다보면 감정은 곧 가라앉게 된다. 그러면 아주 심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다. 이것은 굉장히 효과가 좋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힘든게 있다면 상대방을 향한 기대치를 없애면 된다. 상대방이 내게 상냥하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 희망을 없애거나, 상대방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희망을 버리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이것도 굉장히 하기 싫고 내가 왜 그래야하나 싶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편하게 살아가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는 내 기대를 버리는 편이 좋다.

 

이상한 전제, 명제를 갖고 있다면 버리는 편이 좋다. 오랫동안 품고 이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면 그 생각을 버리기는 쉽지 않지만 잘못된 생각이었으면 버리는 것이 좋은 것이다. 나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내 자신의 가치를 규정지어버렸다. 이에 근거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것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 때문에 분노가 심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생각을 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거짓이기도 했으니까.

 

 이렇게 나는 아주 확실하게 효과를 보고 심리상담을 잘 마쳤다. 그리고 후속으로 심리상담을 받았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간담회를 가졌는데 내가 효과가 큰 편에 속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삶에 어떤 이슈가 생길때 심리상담을 받아보면서 생각을 한번 싹 정리해보는 것은 아주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난생 처음으로 남자친구와 밥을 먹었다. 그가 만들어준 밥상에서 먹었다.
모든 기념일에 그동안 나는 혼자였다. 작년에 처음으로 각종 기념일에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23년 새해를 맞는 날마저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감격스럽다. 나에게도 이런날이 올줄이야.

나는 새해를 맞이하여 그와 함께 식사를 했다. 떡국은 아니었다. 그가 전날 사놓은 소금빵과 식빵, 그리고 커피 한잔이었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음식을 나누면서 새해를 기념할 수 있다니 그걸로 충분하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연애를 하고 싶은 갈망이 나를 집어삼켰다. 갈망은 초조함과 다급함 그리고 루저로 남게 될 것 같은, 연애시장에서 도태될 것 같은 절망감이 합해진 결과였다. 이러다가 노처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감정에 외로움까지 집어삼켜 나는 너무 우울했다.

우울한 정서가 나를 지배하고 뭘 하든 안될 것 같은 패배감이 나를 둘러쌌다. 영화 '연애빠진 로맨스'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전종서 배우가 연애에 실패하고 읊조린 대사처럼. "나는 어차피 내가 안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나는 안될거야." 라는 대사에 담긴 정서였다.

 

애를 쓰고 노력을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다는 그 본능적인 욕구는 번번히 좌절되었고 그 좌절에 너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안될 거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한번 연애를 시도해보겠지만, 역시나 안되는구나, 나는 알고 있었어, 나는 원래 그 정도의 인간이야.' 하는 생각이다.

그 생각이 고착화되지만 내가 놓치지 않은 것은 그럼에도 행동했다는 것이다. 계속 연애 대상을 찾아다녔고 몇십차례의 소개팅 끝에 지금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와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 친밀함을 더해갔다. 그리고 그의 애정을 통해 나를 지배했던 우울정서를 어느 정도 걷어낼 수 있었다. 세계에서 1명의 사랑만 있다는 그 사실 자체로 온 세계에서 필요한 사랑을 모두 받은 듯 했다. 그리고 하등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나의 젊음과 청춘이, 이제서야 비로소 그 쓸모를 찾은 듯 했다. 사람은 사랑하며 살아야하는구나. 특히 나는 사랑의 욕구가 정말 강했구나.

새해를 맞이해 그와 함께 먹은 소금빵과 식빵, 그리고 한잔의 커피. 이 식사를 통해 나는 1년전의 나를 되돌아봤다. 그리고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2023년에는 다시는 우울감이 나를 지배하도록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나에게 새해음식은 소금빵이 될 것이다. 에어프라이어에서 다시 덥혀 맛있었던 소금빵과 그리고 따스한 온기가 내 새해음식이다.

 

사본만들기는 공유한 파일을 복사하는 개념입니다.

 

카카오톡이나 메일로 파일을 첨부해서 메시지를 보내면 내가 갖고 있는 파일의 복사본이 전달됩니다. 내가 갖고 있는 파일을 아예 주는게 아니죠. 저도 파일을 그대로 갖고 있고 상대방도 복사된 파일을 갖게 됩니다. 제가 파일을 수정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파일이 수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리고 공유한다는 것은 복사해서 공유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파일에 여러명의 사용자가 들어와서 쓴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연락처를 만드는 파일을 공유해서 작업하기로 한다면 여러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같은 파일에 들어와서 동시에 수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원본파일에 여러명의 사용자가 접속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용자가 너무 많아서 수정에 어려움이 있다든가 할 수 있습니다. 이럴때 사본만들기로 파일을 복사해서 파일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파일의 소유자는 드라이브에 맨 처음 올린 사람입니다. 공유한 사람들은 사용자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공유자가 이 파일을 사본으로 만들어서 가져가면 가져간 사람도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본만들기를 하면 내 드라이브에 ~의 사본 형태로 저장이 됩니다. 파일에서 우클릭을 누르고 사본만들기를 누르면 됩니다.



데스크톱용 드라이브는 컴퓨터에 윈도우 탐색기 형태로 구글 드라이브에 있는 폴더와 파일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실제로 하드디스크에 용량을 잡아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 모양으로 돼 있는 폴더와 파일은 인터넷에 저장돼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그것을 클릭했을 때 인터넷에 들어가서 실행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터넷 브라우저에 들어가지 않아도 쉽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터넷에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고 싶다면 오프라인 엑세스를 하면 컴퓨터에 저장이 됩니다. 우클릭해서 오프라인 엑세스를 누르면 초록색 체크박스가 되고 이것은 컴퓨터에 저장이 됐다는 뜻입니다.

 

이 기능을 사용하려면 드라이브에서 다운로드를 받으면 됩니다. 드라이브에 들어가서 설정을 누르고 윈도우즈용 백업앤 싱크 다운로드를 받으면 됩니다. 원래 개인용 백업 및 동기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최근 기능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이 기능이 데스크톱용 드라이브에 적용이 돼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백업 및 동기화기능이라는 것은 파일을 수정할 때마다 동기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데스크톱용 드라이브를 열고 파일을 실행하고 수정을 하고 저장을 하면 데스크톱용 드라이브에서 동기화중이라는 표시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정한 내용이 자동으로 드라이브에 저장이 되서 동기화가 되는 것입니다.



수정을 여러번 해도 그때마다 저장이 되기 때문에 수정본을 계속 볼 수 있습니다. 파일을 우클릭해서 버전관리를 보면 수정할 때마다 저장된 버전이 나옵니다. 이때 필요한 수정본을 선택해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구글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구글 문서도구는 버전관리가 자동으로 돼기 때문에 우클릭해도 버전관리가 없습니다. 한글파일 같은 구글 문서가 아닌 파일은 버전관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했을 때 구글에서 제공해주는 기능입니다.


구글 문서의 버전관리는 파일에 버전관리 - 버전관리 기록보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혼자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조직에 속해 있을 이유가 전혀 없으며 단어 그대로, 원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상대해야 할 일도 없다. 마음만 먹는다면 창작을 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않고 작업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을 위해서 작업 공간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작업 공간으로 다른 사람을 불러들여야 할 일도 없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려왔다.

 

내면의 자유를 지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자유의 의미란 인간이 언어로써 자신과 세계를 가장 아름다우며 동시에 오류 없이 표현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혹은 그러한 글을 읽고 싶은 욕구와도 연관되는 것이다. 완벽한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지만, 혹은 존재한다 할지라도 천재가 아닌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가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태초에 질문과 회의가 없었다면 진정 자유를 원하는 인간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할 것이다.

 

언어란 인간의 심상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만 의미가 있을 뿐일까, 아니면 사고와 의지는 결국 모두 언어에서만 나오는 것일까.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언어에 대한 이런 오래된 질문들을 떠올리게 된다.

 

정신적 자유란 이미 인간이 잘 알고 있는 관념의 경계 안에서 아무 구속 없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의 벽에 스스로 부딪치면서 유의미한 것들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면의 세계를 넓히고 자신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일은 다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쾌락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이 추구하는 내면의 자유로움과 그것이 주는 은밀한 기쁨은 아주 쉽게 훼손되고 자주 모욕당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본격적인 사진집이 아닌 이상 삽화나 분위기 있는 사진과 화려한 색상이 가미된 글을 매우 싫어한다. 심지어는 책에 작가의 얼굴 사진이 반드시 등장하는 이상하고 유치한 관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일반 대중이 문학을 사랑하게 도와줄'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시각적 효과와 원고의 결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그런 것은 명목상의 취지부터 만들어지는 결과물까지 모두 다 거짓의 파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들은 문학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인하는 것이며 그런 방법은 인간의 정신적 자유를 위해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거나 혹은 전혀 그런 자유를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문학에 동반되는 화제성 저널리즘이나 광고 문안들도 불필요하지 않나 생각하며 문학이 군중에게 더 친숙한 다른 장르와 잘 결합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럼으로써 계속해서 생존할 것이며 그 생존이 더욱 정당화될 수 있다는 타협적인 견해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문학의 행위는 자유롭고 창의적이다. 나는 자유와 창의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창의적일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자유롭다면 그는 창의적인 인간일 것이다. 결국 자유란 기꺼이 선택된 정신적 투쟁에 의한 것이며, 문학은 내가 그것을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단지 흑과 백으로 표시된 기호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오감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다른 분야와 달리 문학은 언어와 문자라는 약속된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비교할 수 없게 제한되며 동시에 한번 표현된 문장은 반대로 그 언어 안에서 쉽게 고정되어 버리는 불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문장은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에 잠겨야 하고, 그 무엇의 시민도 아니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엄격함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은 그것을 행하는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술의 행위는 창의적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다. 나에게는 특히 문자예술이 그렇다. 고뇌와 고통과 불행 등 모든 부정적인 조건을 불평 없이 껴안을 수는 있어도 정신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거부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지만 지금 문학이 군중에게 외면당하는 종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중에게 추파를 보내거나 더 많은 다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더 많은 다수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이유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리어 나는 근래 사람들이 근심하고 있는 문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매우 낙관적인 편이다. 나는 문학은 영화와 달리 원래 다수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고 믿으며 문학이 군중에게서 멀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제자리를 올바로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한번도 군중에게 진정으로 친밀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므로 비로소 정직하게 말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양적 의미로만 존중받는 시장에서 소외되거나 구석자리에서 푸대접받는 것은 결코 불평할 일이 아니다.

 

시장은 원래 팝(Pop)적인 글을 사랑하게 되어있다. 내 의견으로는 글을 쓰기로 스스로 결정한 사람이 그런 점을 불평한다면 그는 문학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확실히 다른 것에 봉사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소수의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는 것이 반드시 자만심이나 우월감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문학을 한다는 것이 우쭐한 기쁨을 주는 것도 아니다.(경제적인 혜택을 동반하지 않는 우월감은 더욱이 이 세기에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단지 인간에게는 소수의 영역에 해당하는, 그러나 대치될 수 없는 욕구들이 언제나 존재하며,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작업이 언제나 어디에선가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문학의 행위는 윤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장을 선택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문장을 찾아가는 작업은 최선의 정직을 찾아가는 것이고 언제나 깊은 회의 속에서 방황하고 생각에 잠겨있되 결코 냉정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 이후에도 '나는 그것에 대하여 진정 정직했는가?' 하는 질문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세계의 대한 하나의 태도이다. 그것은 빈약하게 말해지거나 과도하게 말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며 침묵해야 할 것을 말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경멸한다. 또한 정직이란 것은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만일 그가 단지 알지 못해서 최선의 것을 말하지 못했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로 정직하지 못함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을 선택하는 행위는 선택 이전이나 마찬가지로 선택 이후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비판하게 만든다. 문장에 있어서 최선의 정직이라고 하는 것은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어서 누구도 그것을 모른다고 하는 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더 확장해서 문학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가 쓰고 읽는 대상에 대해서 변함없이 어느 정도는 비판적이고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은 그래야만 할 것이다. 세계의 사물에 대해서,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이 정직하고자 하는 과정은 외재하는 어떤 가치에 자연스럽게 헌신하게 되는 일과도 같다. 'K가 도착했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마을은 깊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로 한 권의 책이 시작된다. 이토록 담담하고 태연한 어조로, 평범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시작되는 자신만만한 도입부처럼 언어나 문장에서 정직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에 대한 관용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차가운 용기를 획득하여 그것을 주저 없이 발휘하는 과정 자체가 곧 지극한 선(善)이 되며, 자신을 포함한 세상에 헌신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고통이나 개별의 마음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리라는 신념을 나는 가지고 있다.

 

문학이 단지 지껄임이나 도취적인 독백, 정화되지 않은 내면의 무분별한 토로, 충분히 자신 안에서 비판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피상적인 이미지들의 나열이나 엄격한 정신에 의해서 선택된 것이 아닌 차용된 듯한 단어와 수사로 치장한 가장행렬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그런 윤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용자와 공유하는 방법은 파일, 폴더를 공유하는 방법 두가지가 있습니다. 

 

파일을 공유하는 방법은 링크로 공유하거나 특정 사용자에게만 공유할 수 있습니다. 

 

링크로 공유하는 것은 링크주소를 만들어서 링크주소를 알려주면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파일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료를 널리 알리고 싶을 때 유용합니다. 하지만 알려져서는 안되는 자료라면 퍼질 수 있어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파일 우클릭해서 +공유를 누르고 링크보기를 누릅니다. 제한됨, 링크가 있는 모든 사용자에게 공개가 있는데 아래쪽을 선택하면 링크가 만들어지고 링크를 전달하면 누구나 링크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링크로 공유하기를 그만하고 싶으면 제한됨을 누르면 링크공유는 끝이 납니다. 

 


특정 사용자에게만 파일을 공유하고 싶으면 특정사용자의 계정을 추가해서 전달하면 됩니다. 파일에서 우클릭하고 +공유를 누르고 사용자 및 그룹과 공유에서 메일주소를 추가합니다. 

 

 

권한을 다르게 줄 수 있는데 뷰어, 댓글작성자, 편집자가 있습니다. 뷰어도 다운로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권한을 어떻게 주든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공유를 받은 사람은 드라이브 - 공유문서함에서 공유된 파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일로도 공유한 파일이 왔다는 메시지가 옵니다. 

 

폴더를 공유하는 것은 추가하려는 사용자에게 권한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용자 및 그룹과 공유에서 계정을 추가하고 뷰어, 댓글작성자, 편집자로 권한을 줄 수 있습니다. 뷰어는 이 폴더에 파일을 올릴 수 없고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볼 수만 있습니다. 편집자는 파일을 올릴 수도 있고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폴더를 공유하게 된 사람은 드라이브- 공유문서함에 가면 새로운 폴더가 생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메일에도 같은 내용이 왔습니다. 폴더를 공유받은 사람은 용량이 잡히지 않습니다. 폴더를 공유해준 사람만 용량이 잡히게 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