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다.

 

나는 물론 고양이를 소유하고 있다. 나는 고양이를 분양받을 때 어떤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그 분양샵에서 나에게 고양이의 소유가 이전된다는 그런 종류였다. 어쩐지 끔찍하게도 1달만에 고양이가 죽어버리면 새로운 고양이를 다시 준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고양이는 내꺼다. 그런데 사실 엄밀하게 고양이는 내 소유이지만 사실 존재자다. 내 옆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의미다.

 

고양이는 내 옆에서 움직이고 살아있는 생명체다. 그래서 소유보다는 존재다. 내 옆에 존재하는 내 반려동물이다. 고양이를 어따 쓰겠는가. 재산이나 소유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는 내 일상안에 들어와있는 아이다. 내 예쁜 아이.

 

 

혼자 사는 삶과 고양이가 있는 삶은 내용이 다르다. 나는 혼자 집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 놓고 음악을 크게 듣고 노트북을 해도 좋지만 그 풍경에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삶의 행복도가 곱하기가 된다. 왜일까.

 

고양이가 날 쳐다보기만 해도 행복도가 곱하기로 늘어난다니. 신기한 동물이다.

 

 

간밤에는 꿈을 꿨다. 혼자 사는 집인데 누군가 내 집에 얹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인간이 현관문을 제대로 닫고 다니지 않았다.

 

나는 주의를 줬다. "그렇게 문을 열고 다니다가는 고양이가 도망갈지도 몰라." 그런데 그 인간이 문을 계속 열어놓고 다니길래 나는 겁이 잔뜩 났다.

 

그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고양이 잃어버리면 죽는 줄알아. 여기 각서에 싸인해. 고양이 잃어버리면 너 나한테 돈 얼마 줄 수 있어? 천만원은 있니?"

 

고양이를 잃어버렸나 싶어서 나는 집의 문을 다 닫고 난리를 치다가 잠에서 깼다. 나쁜 넘. 대체 그 인간이 누구였지.

 

 

 일어나보니 고양이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꿈에서까지 고양이와 함께 있으면서  아이를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한다.  아름다운 고양이.

 

고양이의 수명이 10~15년 사이라는 것이 슬프다. 한번씩 유명인의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얘기가 들려오면 그렇게 슬플수가 없다.

 

 고양이의 얼굴을 보다가도 이 녀석의 끝을 생각하게 된다. 끝나지마 묘생. 이라며 중얼대본다. 

 

묘생은 내 소유며 내 존재다. 이쁜 것. 언제까지나. 내 예쁜 묘생이겠지. 

 

제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소개합니다.

 

제 고양이는 주인을 생각해서 마스크를 갖다주기도 합니다. 보통 고양이가 주인이라고 하고 인간이 집사라고 하지만 제 고양이는 충성스러운 강아지에 가깝다고 할까요. 바닥에 떨어진 마스크를 주워다주고 있을 뿐 아니라 한번도 하악질을 한 적도 없고 할퀸 적도 없어요. 떼를 쓴적도 없고 충성스럽게 기다리고 있는 착한 아이에요.     

그리고 애교도 많습니다. 항상 제가 집에 들어오면 집 앞에서 저를 마중나와 있어요. 저 뿐 아니라 낯선 사람들이 와도 누구든지 반갑게 맞이해줍니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한테 친근하게 구는 녀석입니다. 애교도 잘 부리는 애교쟁이에요. 제가 의자에 앉으면 제 무릎에 따라 앉고 머리를 부빕니다. 

제 품에 안겨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시간이 고양이에게는 필요합니다. 하루에 20분 정도는 제 온기를 나눠줘야 해요. 아직 3년밖에 안 된 작은 고양이라서 그런건지, 사람으로 치면 20대성인이기도 하지만 고양이는 아직도 아기입니다. 따뜻하게 포옹해줘야 하는 시간을 고양이는 너무 좋아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20분이 지나면 스르르 사라집니다. 자신만의 공간으로 가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제 공간의 한 곳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입니다.     

 

고양이는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부리고 귀여워해달라고 합니다. 혼자 있는 것을 외로워하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집 밖으로 나갈 것 같은 기색을 보이면 항상 저렇게 배를 까뒤집고 귀여운 척을 하면서 가지말라고 합니다. 이럴때는 마음이 살짝 아프기도 합니다. 동생을 데려와야 할까, 는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하지만 제 고양이는 늘 조용합니다. 야옹, 하는 소리를 3년 동안 10번 정도밖에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너무 아프거나 너무 놀랐을 때만 야옹, 하고 소리를 냅니다. 침묵을 좋아하는 고양이에요.

고양이는 예쁘고 착하고 조용하고 사람을 잘 따릅니다. 고양이에게는 팬이 많습니다. 제 친구들중에는 고양이를 보러 제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도 몇 명 있습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제 집에서 만나는 장소를 정하는 것은 한가지 이유 때문이죠. 고양이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어린 팬은 제 4살 조카입니다. 제 조카는 고양이와 노는 시간을 항상 기다리고 있어서 식사를 건너뛰고 싶어합니다. 밥을 그만먹고 야옹이랑 놀고 싶어, 라고 말하면서 이모 밥을 이제 그만 먹어, 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고양이와 제 조카는 2018년 1월에 태어났는데, 어떻게 보면 사실 동갑입니다. 둘은 친구이기도 하지만 고양이의 삶이 훨씬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고양이의 나이가 훌쩍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제 조카랑 잘 놀아주는 셈이겠죠. 제 조카도 짓궂게 군적은 없고 야옹이를 관찰하고 쓰다듬어주고 쉴새 없이 물어봅니다. 야옹이는 왜 꼬리가 있어? 왜 수염이 있어? 왜 이렇게 앉아? 고양이는 항상 제 조카의 곁에 있어주고 머리를 부벼줍니다. 깨물지도 않고 할퀴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옆에 있어줍니다. 이럴 때 보면 고양이는 마치 철이 든 성인 같기도 합니다. 

 

고양이는 가리는 것도 없고 예민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처음 고양이 분양샵에서 고양이를 봤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2개월짜리 아기 고양이들이 많았기 대문에 저는 한 마리씩 제 품에 안아봤습니다. 제 품에 제일 조용히 가만히 안겨있는 아이가 바로 이 고양이었습니다. 낯선 제게도 몸을 내어주며 쌔근쌔근 잠드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고 그 순간 저는 사랑이 마음에 가득차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동물을 한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저는 일주일 정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다시 오라는 분양샵 아저씨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갔지만 애가 탔습니다. 내 고양이를 누가 데려갈까봐서 겁이 났거든요. 제 마음에 사랑을 가득 심어준 아이는 3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일상들이 참 좋습니다. 그저 3키로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가 제게 주는 행복은 너무 큽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가 사랑받고 있으니 저도 참 행복합니다. 고양이가 죽기 전까지 사람을 계속 무서워하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서 어떤 폭력도 받지 않은, 폭력을 경험해보지 못한 순수한 동물로 그렇게 살다가 갔으면 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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