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왔다. 5일이었고 정말 간만에 떠난 여행이었다. 고양이는 아는 친구에게 맡겼다. 한 친구는 집에 방문해 먹을것을 챙겨준다고 했지만 혼자 며칠을 두는것보다 같이 있어줄 사람이 필요할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고양이가 다른 집으로 다. 나는 여행 전날 내 집에서 혼자 있었다. 고양이없는 집이라니. 이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마중나오지 않았고 내가 집안을 돌아다녀도 아무도 나를 쫓아다니지 않았고 내가 의자에 앉았는데도 내 무릎 위는 휑했다. 잠에 들 때도 나 혼자였다.

 

난 습관처럼 “고양이야~, 야옹아~, 뭐하고 있어?” 라고 말을 걸었지만 집 안에는 어떤 생명의 흔적도 없었다. 잠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그 어떤 기척도 들리지가 않아 고양이를 향한 그리움이 너무 커졌다. 4kg도 안되는 작은 고양이의 존재감이 이렇게 컸던가.

 

 

내가 여행지가 아닌 집에서 고양이없이 하루를 지냈기 때문에 외로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고양이가 없는 것은 당연했지만 집에서 고양이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고양이를 향해 말을 걸 때 “오늘은 뭐했어? 너 할 일 없지?”라고 다. 고양이가 매일매일 딱히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번에 깨달았다. 고양이는 사실 그 존재 자체로 어떤 일을 하는 중이었다.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행위 자체, 돌아다니면서 내는 소리, 무심코 취하는 귀여운 제스처 등이 모두 큰 의미였고 고양이에게는 생명활동이었다.

 

나는 그날 고양이가 없는 하루를 보내며 익숙함과 늘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던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고양이, 그리고 나의 가족 말이다.

 

그저 언제나 여기에 있을 줄 알았던 고양이인데 없어지니 그리움이 커진 것처럼 언제나 평생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존재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잔소리와 좋지 않았던 경험만 되씹고 있는 중이었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내게 준 상처 같은 것, 기분이 안좋았던 것이나 또 뭔가 심기를 뒤틀리게 한 것 등을 곱씹어 대는 못된 생각을 하던중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런것들만 생각했지. 사실은 가족이 내 옆에 있다는 것, 내가 아플 때나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다는 것, 갑자기 집밥이 먹고 싶어지면 그냥 찾아가도 된다는 것, 그런 것들이 사실 평생 당연하게 있을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부재 속에서 존재를 느꼈고 , 익숙함에서 소중함을 느꼈다.

 

평소에 당연하게 느끼던 고양이의 존재감, 예를 들어 내가 침대에 누우면 내 다리에 기대어 눕는 고양이의 온기가,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장롱 천장에 앉아서 날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이, 내 배위에서 가르랑거리는 고양이의 작은 소리가 되게 작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행지에서도 일부러 고양이가 있는 카페를 찾아갔다.

 

그리고 내 고양이만큼 예쁜 고양이는 세상에 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 고양이는 유일하면서도 독특한,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독자가 됐다.

 

C.S.루이스가 쓴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난다. 하나님이 한 명의 인간을 유일하게 여기고 그 한 명을 구원한 것처럼 아마도 고양이나 개 등 반려동물도 인간에게 하나의 유일한 생명체가 되면 그들에게도 영혼이 생겨 우리가 천국에서 만날 수도 있단 내용이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성경을 뒤져 동물의 영혼의 근거를 찾은 것은 그가 키우던 개 때문이었다. 나도 그의 열심을 보면서 이것이 개를 향한 사랑 때문임을 알아 그 마음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정말로 고양이와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안심을 얻게 됐다.

 

고양이의 삶을 보면서, 왜 애완동물이란 말이 반려동물로 바뀐건지 얼핏 알것 같았다.

 

고양이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인다. 잠시 밖에 나갔다 와도 뭘 하고 와도 고양이는 침대에 누운 자세 그대로 있다. 고양이는 누워있거나 잔다. 가끔 밥과 물을 먹는다. 그리고 내가 놀아주는 몇십분 동안을 뛰어다닌다.

 

고양이를 보면서 가끔 말을 건다. "넌 오늘 뭐할거니?" 고양이는 눈을 꿈벅이고 나는 다시 묻는다. "오늘은 뭐할거니? 할거 없어?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똑같이?" 라고 말을 걸면 고양이는 그렇다는 듯이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어쩐지 고양이가 집안에 가만히 놓여져있는 의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만히 앉아있고 조용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 고양이는 특히 다른 고양이들보다 훨씬 조용하고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야옹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건 고양이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다.

고양이는 정적이다.

뭐하고 있나 보면 항상 비슷하다. 창틀에 앉아서 밖을 본다.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동그랗게 잠을 잔다.

침대 위에 이불에 비스듬히 기대서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잔다.

장롱 천장에 뛰어올라가서 아주 깊숙한 곳에서 잠을 잔다.

 

항상 어딘가에서 정적인 자세로 있기 때문에 집 안에 놓인 가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조용한 고양이도 밤에는 집안을 뛰어다닌다.

방에 있는 창틀에 올라갔다가 거실을 한바퀴 돌고 작은 방 창틀에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새벽에 우다다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집 안을 몇바퀴 도는 것이 하루종일 고양이가 내는 소음의 전부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내게 와서 꾹꾹이를 한다. 내가 덮고 있는 이불 위에 올라와 입으로 이불을 물고 한발 한발 꾹꾹이를 한다. 왼발, 오른발 차례로 이불을 꾹꾹 누르면서 아기가 된 것처럼 군다. 고양이도 아기 고양이였을때 엄마가 생각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엔 너무 조용하고 정적인 고양이이지만 고양이에게도 삶이 있다. 고양이도 엄마 고양이로부터 태어났다. 인간처럼 사고하는 능력이나 자아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생명체니까 고양이도 고양이의 삶이 있는 셈이다.

 

고양이도 엄마 고양이로부터 탄생했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 어떤 의미가 없어보이는 행동들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을 인간 중심에서 바라보는 단어인 '애완동물'이 하나의 생명을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은 단어인'반려동물'로 바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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