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같이 산지, 이제 만5년이 되어간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양이는 아직도 아기같다.

따다다다 온 집안을 걸어다니고 내 무릎위에 올라와서 잔다. 먹고 배변하고 잔다. 지겹지도 않은지 매일 비슷한 생활을 반복한다. 

 

고양이가 내 삶에서 익숙해진만큼 나는 모든 것이 관성이 됐다. 맨 처음에 느끼던 설렘과 귀여움, 우와 하던 미칠 것같은 사랑스러움이 이제는 익숙함이 됐다. 

그 사이 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몇명은 늘어났다. 

같은 동네 아는 언니는 내가 여행을 가는동안 고양이를 봐줬다.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그 언니는 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됐다. 아니, 그 언니는 고양이가 본인을 그리워하지 않느냐고 했다. 분명 고양이가 자신을 엄청 잘 따랐다고. 분명히 그리워할거라고 했다. 

 

내 고양이는 나를 인식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나만 졸졸 쫓아다니기는 한데, 여행을 다녀와서 보니 낯설어하는 것을 보면 또 모르겠다. 그리고 아는 언니에게도 쉽게 곁을 내주는 것을 보면 또 모르겠다. 

 

고양이에게 내가 원앤온리같은 사람일까. 내가 고양이를 익숙해하는 만큼 고양이도 이제 나를 익숙해하는 걸까. 

영화 타샤 튜더를 보면, 엄청나게 큰 정원을 가꾸는 할머니가 나온다. 이 할머니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웰시코기들을 키우고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있다. 여기서 나는 의문점이 들었다. 웰시코기들을 50년 동안이나 키웠다는 것이다. 

 

코기들의 수명이 몇년이길래. 타샤 튜더 할머니는 웰시코기들을 매우 좋아했지만 그들이 죽으면 또 새로 들여오고 그랬던 것 같다. 마치 장미꽃이 좋으니까 죽으면 또 새로 심는 것처럼. 아마 그 할머니에게 웰시코기들은 one of them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아는 많은 고양이집사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가 죽으면 또 새로 들여와서 또 키우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고양이가 내 하나밖에 없는 고양이니까. 고양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힘들어한다. 그리고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아야지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고양이를 one and only라고 생각해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고양이에게도 내가 one and only일까. 아니면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슬렁거리는 밥주는 인간하나인 것은 아닐까. 가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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