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왕 (김상혁,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나는 나보다 슬픈 사람을 다섯이나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몽유병자, 주정꾼, 어린 자식을 둘이나 잃은 부인도 있어요 나는 그들을 다 병원에서 봤습니다

 

잠결에 자신을 찔렀고, 취해서 애인을 때렸고, 아이들이 바다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네요 너는 어떻게 되었니? 너도 우리만큼 슬프니? 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하나같이 슬픔의 왕들이에요 나에게도 병원이 필요하지만 나 같은 게 병원에 와도 되는 걸까, 이런 슬픔에도 치료가 필요할까, 동그랗게 둘러앉았는데 나는 고개도 못 들고

 

자식처럼 키우던 고양이를 베란다 밖으로 던진 얘기, 잘린 손이 아파서 잠을 못 잔다는 얘기, 병든 엄마가 지겨워 목을 조른 적이 있다는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우울증, 발모벽, 공황장애, 자기 집에 두 번이나 불을 지른 청년도 있어요 나는 그들을 다 병원에서 봤습니다 이야길 들어주는 의사도 나보다는 슬픈 사람이라서

 

그는 어릴 적 다섯 번 자해했고 말하자면 이건 좋은 여섯번째 삶이라네요 나는 그렇게 슬픈 사람을 여섯이나 알고 있습니다 타인을 잃고, 자기를 잃고, 결국 자기 생각까지 망가뜨렸다가

 

병원에 와서 자기 생각을 찾고, 자기를 찾고, 결국 타인마저 고양시키는 그들은 하나같이 슬픔의 왕들이에요 되게 망쳐버린 부분이 있고 꼭 되찾고 싶은 생활이 있습니다

 

너무 슬플 땐 무서운 게 없더라네요 아무래도 내겐 공포를 지나칠 수 있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무언가를 말해도 되는 걸까, 나의 멀쩡한 집과 가족을 어떻게 설명할까

 

의사가 미소 짓습니다 괜찮으니 이제는 제 이야기를 해보라네요 그냥 슬픔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중인데,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는데요

나는 2020년 여름에 서울시에서 심리상담을 7회기를 받았다. 1대1로 심리상담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고 당시 나를 괴롭히던 것은 회사에서 받는 갑질로 인한 분노였다.

 

분노가 너무 커서 일상생활에서 항상 화가 나 있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전혀 베풀지 않았 언제나 싸울 태세로 지냈다. 회사와 상사를 향한 분노는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어떻게 복수를 할까, 그들을 어떻게 힘들게 할까, 이러한 생각들을 구체화하는데 쓰였다.

 

심리상담을 받게 된 계기늗 일단 공짜였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고 주변에서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별 걱정없이 심리상담에 임했다. 처음에 굉장히 낯설고 어색했는데 상담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편하게 하라고 해서 회사에서 힘들어서 분노가 심해서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에, 상담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논리에 따라서 살아간다고 말해줬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이상해보이더라도 그 사람만의 논리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나는 이 상담사는 내가 어떤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더라도 잘 받아들여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상담사에게 누구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부분들, 예를 들어 내가 어느정도로 화가 났는지, 어느정도로 소리를 질렀고 어느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는지를 얘기했다.

 

상담사는 내게 심하게 분노하는 상황이 또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돌아보니 엄마와 싸울 때, 그 누구도 아니고 엄마와 싸울 때만 유독 그렇게 심하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도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를 생각나는 대로 줄줄이 얘기를 했다.

 

내가 어떤 감정이 들었을 때, 분노했을 때, 나는 무엇을 바랐던가. 상담사는 그것을 물었다. 무엇을 바랐는데 그것이 좌절돼 그렇게 화가 난 것인가요. 나는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아주 심하게 분노했을 때, 내가 바라는 것이 있었다. 강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좌절된 후, 그것을 좌절시킨 그 사람을 향한 맹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상담사는 주로 질문을 했다.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왜 그랬는지, 비슷한 상황은 또 언제 있었는지, 등등이었다. 난 상담사가 조언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 혹은 답을 찾아주는 줄 알았는데, 질문만 하고 답은 내가 찾는거였다.

 

질문 덕에 나는 얘기를 하면서 공통점을 계속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인정받는 것, 내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원했다. 그리고 내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훈계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시선이 곧 나의 자아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상담사가 적절하게 질문을 해줬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었다. 생각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던 전제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그것은 난 여전히 칭찬에 목마른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갈구하고 특히 엄마의 시선과 인정, 긍정적인 반응을 너무도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대감을 낮추기로 했다. 엄마는 나를 칭찬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엄마는 아주 상냥한 사람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했다. 그랬기에 그걸 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 존재 가치를 엄마,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두지 않기로 했다.

깊은 생각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전제를 찾아낸 것이 나한테는 너무나도 큰 수확이었다. 내 입으로 내가 말한 명제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좀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상한 명제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큰 효과를 봤다. 더 이상 나는 엄마를 향한 분노가 일지 않으며 엄마와 싸우지도 않는다. 엄마랑 만날 때마다 싸우던 지난 날과 비교하면 아주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한결 자유로워졌다. 나에게 심리상담의 효과가 아주 큰 편인데 상담사는 그 이유로, 생각을 말로 구체화하는 연습을 많이 한 것과 생각이 잘못됐다고 판단이 들 때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을 꼽았다.

 

사실 심리상담을 받는 날이면, 그 한시간의 상담이 끝나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내가 사실은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이렇게 감정을 표현했구나. 그토록  많은 생각들 사이에서 단순하게도 나는 그저 인정받기를 원했을 뿐이구나. 그것을 직면하기 싫어서 이리저리 돌고돌아 현학적으로 생각을 했구나. 이런 생각을 끝없이 했다.

 

심리상담을 마치고 나 자신에 알게 된 것은 이런것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해결책들은 이런것들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을  때, 그 감정이 드는 나 자신에게 단순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너는 지금 불안하구나.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이야. 불안할수밖에 없어. 불안하구나. 불안하지만 괜찮아. 불안한 것은 당연해.

 

그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형편없고 못났다, 는 식의 부정적인 가치평가는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위로의 얘기를 계속 해주다보면 감정은 곧 가라앉게 된다. 그러면 아주 심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다. 이것은 굉장히 효과가 좋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힘든게 있다면 상대방을 향한 기대치를 없애면 된다. 상대방이 내게 상냥하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 희망을 없애거나, 상대방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희망을 버리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이것도 굉장히 하기 싫고 내가 왜 그래야하나 싶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편하게 살아가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는 내 기대를 버리는 편이 좋다.

 

이상한 전제, 명제를 갖고 있다면 버리는 편이 좋다. 오랫동안 품고 이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면 그 생각을 버리기는 쉽지 않지만 잘못된 생각이었으면 버리는 것이 좋은 것이다. 나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내 자신의 가치를 규정지어버렸다. 이에 근거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것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 때문에 분노가 심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생각을 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거짓이기도 했으니까.

 

 이렇게 나는 아주 확실하게 효과를 보고 심리상담을 잘 마쳤다. 그리고 후속으로 심리상담을 받았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간담회를 가졌는데 내가 효과가 큰 편에 속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삶에 어떤 이슈가 생길때 심리상담을 받아보면서 생각을 한번 싹 정리해보는 것은 아주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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