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키 블라인더스는 남자들의 세계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옴므파탈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새 드라마들은 여성 위주로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킬리안 머피가 주인공 토마스 쉘비 역할을 맡는다. 아주 잘생긴 배우인데 퇴폐미가 느껴지고 연기할 때는 감정이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며 리더로서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아무리 사악한 일을 하려고 할때도 지시하는 그 행동 자체는 젠틀하기 그지 없다. 또 적으로부터 모욕과 조롱을 당해도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카리스마있게 응대한다. 토마스의 모습은 마초적인 리더다. 남성스럽다. 남자 중의 남자같다. 이런 모습이 멋있다. 

드라마 안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토마스를 사랑한다. 정말 오랜만에 많은 여성들이 구애하는 장면을 봤다. 토마스는 그레이스를 사랑한다. 그레이스는 사실 영국 경찰의 스파이로 토마스가 운영하는 술집에 위장 잠입했다. 토마스는 그레이스를 잃은 뒤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토마스는 말한다. "나같은 남자는 잊고 살아." 여자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한다. 이런 옴므파탈. 정말 오랜만에 본다.  


토마스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자도 사랑할 수 있다. 토마스는 지역의 권력과 돈을 쥐고 있는(그것이 비록 폭력으로 이룩한 것이라고 해도) 사람이고 게다가 잘생겼고 행동은 젠틀하다. 늘 단정한 양복을 차려입고 베레모를 쓴 채 시가를 뻐금 핀다. 감정을 절제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그 말은 곧 실현된다. 그에게는 힘이 있으니까. 토마스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 욕구에 의해, 여자들과의 관계도 맺어나가지만 그 누구와도, 그 어떤 것도 지속적이지 않다. 이득을 취하면 관계를 끊어낸다. 하지만 어떤 여자가 그런 관계를 원할까. 토마스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 지극히 마초적인 캐릭터라 볼 수 있다. 

드라마는 이토록 마초적이고 남자들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아름답고 고귀한 어떤 이상향이나 가치를 묘사하고 있지 않다. 힘과 권력, 폭력, 돈, 전략의 세계, 갱스터와 정치, 경찰의 유착을 그려낸다. 당시 1920~1930년대의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그려내고 있으며 전쟁의 후유증을 안고 있는 토마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인간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는 극중에서도 자신의 악행에 대해서 계속 변명한다. 자신이 이렇게나 폭력, 살인, 사기 등을 저지르는 것은 전쟁을 겪고 나서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전쟁이 자신을 바꿨다고 말이다. 전쟁을 통과하면서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은 병들었다. 그들이 겪는 인간성의 부재가 갱스터 피키 블라인더스로 표현돼 당시 시대상을 드라마는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전쟁의 후유증을 지독하게 겪는 사람들이 나온다. 계속 전쟁의 환각을 보는 사람도 있다. 자살한 사람도 있다. 토마스 자신도 전쟁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을 때를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은 고귀한 어떤 것들을 버리고 돈과 힘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의지하고 그것을 갖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목표가 되며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토마스는 영국의 지방도시 버밍엄에서 시작해 런던까지 세력을 뻗어나가고 나중에는 정치인까지 된다. 끝없이 계략과 전략을 사용하면서 리스크를 떠안고 모험을 한다. 토마스는 작은 모험부터 시작해 하나둘 성공해나가고 더 큰 위험을 무릅쓰고 더 크게 성공해나간다. 

하지만 토마스를 향한 평가는 바뀐다. 드라마 초반에 주변사람들은 토마스를 따르고 존경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토마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적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토마스를 똑똑하고 근성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잔인하고 관용이 없으며 많이 가졌음에도 탐욕이 강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극 중에서 뿐 아니라 토마스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점차 깨닫는 것이다. 토마스가 남자 중의 남자가 아니라 한낱 깡패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깡패가 폭력을 쓰고 사기를 치면서 정말 계속 승승장구할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이 드라마 제작진들은 인터뷰에서 토마스가 자신의 이익 뿐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그려낼 것이라고 했다. 독일의 히틀러, 나치를 따온 인물을 그려내고 토마스가 이들을 처단하는 방식으로 묘사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모두가 등돌린 토마스에게 다시 멋있음의 근거를 줘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드라마가 끝나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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