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하게도 가끔은 자존감을 갉아먹히는 것을 즐긴다. 아니 그것은 자존감이 아닌가. 그저 친밀감인가.

 

그것은 모르겠지만 가끔 이런말을 듣는 게 좋다.

 

"너는 역시 어설퍼. 너는 뭔가 이상해."

뭐 이런 말들? 뭔가 내가 멍청하다는 것과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그런 시선을 즐기는 것이다. 

 

내 자신을 간파당한 느낌 때문인가. 나는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는 그런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는건가. 여튼 나는 피학적이다. 피학적 성향이다.

 

뜬금 고양이. 귀여워.

 

스스로를 생각하는 내 모습은 변한다. 돈이 없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돈이 없으면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게 된다.

 

내 존재로 인해 소비하게 되는 비용이 너무 커서 부모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스스로가 싫다. 나는 나를 소비하는 인간으로 정의내리게 된다.

 

통상적으로 인생은 소비하는 기간이 제법 길다. 공부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더욱 그렇다.

 

그 기간에는 소비만 하는 인간으로 남고 있자면 거울을 보면서 그 인간을 향해 "돈을 쓸줄만 알지. 생산성이라곤 아무것도 없어."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잔나비 앨범 커버 표지. 자화상 일까?

 

그런 의식아래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측면이 아름다워 보일리가 없다. 얼굴은 못생겼으며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해 핏기가 없고 살은 디룩디룩 쪄 있으며 쓸모없이 공부만 많이했다. '돈이 되는 것을 공부했어야 했는데. 바보같은 것.'

 

 그런 인간으로 몇십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돈을 벌게 되고 내 직업 때문에 사람들이 예의를 갖춰 대하면 괴리감이 드는 것이다. 매우 심하게.

 

' 나는 누구지. 대체. 나는.? ' 그런 와중에 어떤 인간이 나한테 중얼대는 것이다.

 

그는 내게 말한다. "너는 뭔가 어설프고. 가끔 보면 매우 멍청할 때가 있어. 말도 어쩜 그렇게 생각없이 내뱉는지. 생각은 하고 사니."라고.

 

 날 그렇게 보는 인간 앞에서는 나는 더욱 예의를 갖추지 않게 된다.  오히려 속으로는 "네가 나를 간파했구나. 그렇다면 더욱 예의없이 굴겠어. 굳이 네 앞에서는 뭐가 있는 척 하지 않아도 되니까." 라고 생각한다. 

 

그 인간은 그렇게 날 대한다. 나는 회사에서 해고만 당해도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을 전부 누리지 못한다. 다시 형편없어질 인간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나를 있게 하는 돈, 내가 대우받는 것들은 내가 언론사에 소속돼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나라는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인생 가운데  자신을  중요하게 결정짓는 그 것이 단지 몇년 동안의 회사 생활 때문이라는 것은. 너무 형편없이 우습다.

 

그래서 내가 매우 피학적 성격을 지니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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