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한테 많이 차여본 사람인데 이 경험은 내게 매우 익숙하다. 맨 처음 차였을 때는 언제였나

대학교 입학 후 어떤 오빠를 좋아했다. 멀끔하고 키가 컸다. 눈이 살짝 쳐져서 인상이 선했다. 목소리는 매우 낮았고 과묵했다. 그래서 좋았다.

 

그 오빠한테 거의 매일 연락을 했고 자주 밥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 딱 선을 그었는데 그때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주 몇가지 사소한 경험들을 가지고서는 그것은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기타연주를 해준 것, 밥과 음료를 사준 것 등이 있었다.

 

그 당시 내게는 친했던 남사친이 있었는데 나를 아주 안쓰럽게 생각했다. 남사친은 내게 커피를 한잔 사주고서는 "내가 너한테 커피를 사주는 이유가 뭔지 알아?"라고 물었다.

 

 "그냥. 불쌍해서인가."라고 대답했고 그는 "그 이유랑 같다구. 그 오빠가 너한테 커피를 사줬던거랑 내가 사주는거랑. 의미부여 하지마."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사친의 조언을 듣고서 나는 그를 신뢰하게됐다.  남사친의 조언에 따라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서 벗어나 해방되기 위해서  어느날을 딱 정해서 그날 고백을 했다. 그리고 차였다.

 

그것이 첫번째 차인 경험이었다.

 

내 남사친은 내 첫번째 차인 경험부터 그 이후에 무수히 많았던 연애의 흑역사를 죄다 알고 있다. 내게는 일기장같은 존재다. 그에게 내 얘기를 하면서 그라는 인간에 내 기록을 적어내려가는 느낌이랄까.

고백을 했다가 차였을 때 드는 느낌은 어떠한가 하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차이게 되면서 이제 내게는 공식적으로 좋아하는 인간이 없게 된다.

 

어떤 곳을 가거나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사람과 함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이제는 안하게 된다. 그리고 연락을 보내놓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면서 기다림의 시간도 갖지 않게 된다. 정말 매우 자유로워지는거다. 

 

그리고 내 감정의 결론은 그 인간에게 쥐어져 있으니. 이 또한 자유롭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모든 것을 다했으니 "이제 공은 당신에게." 이런 느낌처럼. 

 

마치 회사를 다닐때 골치 아픈일이 생기면 바로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누군가 지적을 하면, 나는 상사의 결재를 받았으니 자유로운 것과 같다. 이 문제는 승인해준 상사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혼나기는 하지만 나는  일에 보고를 했으니까 자유롭다. 내가 순간 순간 드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사실 자유로워지기 위한 방법이다. 어쩌면 매우 비겁한 방식이기도 하다.

 

혼자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그와 아주 짧게 사귀었는데 그 기간에 미래를 너무 많이 그렸다. 나는 그와 결혼할 생각도 했고 그 뒤에는 진로를 어떻게 바꿀지까지 생각했다. 나는 아마도 혹시 전업주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까지 한 것이다.

 

나는 미래를 그려나갔다. 그리고 그와 헤어지니 나는 그를 잃었고 그리고 내가 그렸던 모든 미래까지 전부 다 잃었다. 그건 언제나 내가 즐겨하던 상상이었는데 그 상상이 그를 통해 정말로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를 알면 알아갈수록 그가 매우 스마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랑은 다른 리그에 놓여진 사람이었다. 그와 나의 생산성(업무강도)은 10배 이상 차이가 났고, 연봉은 5배 이상 차이났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매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니 아주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금융업계를 공부한 뒤 그것을 기사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했는데 이 과정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돈이 움직이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유망한 기업을 발굴한 뒤 투자심의서를 쓰고 사람들을 만나 그 회사의 투자를 받아내는 일을 했다. 그건 정말로 일이었다. 정말로 돈을 벌수도 있고 안 벌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 일들을 놓고 훈수를 두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그들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를 생각해서 글을 썼다. 내 일은 너무 쉬워보였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는 덜 거친 직업을 가진 셈이기도 했다.

 

나는 종종 그를 보면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열등감이 매우 컸는데, 내가 늘 느끼는 것은 같은 학교 안에 있어도 우리들의 리그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입학할 때 문을 닫고 들어왔고, 나는 여기에 속하는 능력자는 아니었다.

 

그는 능력자였다. 나는 그래서 좋았다. 나랑 다르고 나보다 나아서.

 

그래서 그를 좋아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불안했다. 나를 왜? 내가 어디가 좋아서? 사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이것은 그의 문제기도 했고 내 문제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나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으니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고, 또 나는 스스로를 사랑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탓이 컸다.

 

그는 어쨌거나 나의 옆에 있기는 했지만 나에게 반한 상태는 아니었다. 뭐 그랬던 것이다. 그는 내게 반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들여 나를 그에게 보여줌으로써 그가 나에게 스며들도록 해야했다. 내가 구애자가 돼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게 애정을 주었다. 깊은 사랑은 아니었으나 애정이었다. 그것은 애정이었으나, 나를 향한 특별한 애정이라기보다는 그는 원래 애정을 갖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모든 사람들, 특히 후배들에게 친절했는데 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능력을 후배들에게 쓴 다음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의 그늘 아래 애정을 받아먹었다.

 

그것은 여자로서 내가 매력이 있기 보다는,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자식같았다. 불쌍한 아이에게 드는 측은함에서 비롯된 마음일까. 그는 내게 손이 많이 가고, 자식 같고, 안쓰럽다고 말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보고서를 보내주고, 사람을 소개해줬다.

 

그것은 어떤 애정인가, 인간이 지닌 측은지심인가. 나는 그가 품은 사랑이 뭔지 그것을 골똘히 생각했다. 그것을 분석하고 생각하고 파헤치고, 그것의 허점을 찾아냈다. 그것은 허점투성이였는데, 내가 하는 짓은 그저 바보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긍정적 사이드를 보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었는데.

나는 그를 좋아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만지고 귀를 만지고 머리칼을 쓸어 넘겼고, 그의 입에 뽀뽀했다. 나는 그가 매우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귀여웠다. 나는 어떤 사랑하는 마음이 안에서 솟아났다. 나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귀를 만졌다.

 

내 안에는 사랑이 이다지도 많았나. 어쩌면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경배하고 찬양할, 그러니까 신으로부터의 탄생된 인간은 그런 사랑이 심어져있는데 그것은 평소엔 자취를 감추다가 이렇게 등장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어떠한 사랑 안에서 그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는 내게 나를 왜 이렇게 좋아하냐, 고 말했지만 그건 나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미술가가 자신의 뮤즈를 오래도록 감탄하며 쳐다보던 그 순간처럼 그를 계속 오래 쳐다봤다. 그는 내 시선에 부담을 느끼면서 밖의 풍경을 봐, 나를 보지 마, 여기 데려왔는데 왜 나만 봐, 라고 말했으나 나는 당신이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체라고 생각하고 그 말은 삼켰다. 그 말은 어쩌면 너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나는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랑과 그리고 내가 받고 싶은 모든 사랑을 담아서 그를 좋아했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해. 사랑해.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우리가 더욱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 조금 더 신뢰가 쌓이고 영글어지면 내뱉어야 할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은 안에 남겨둔채, 그냥 오빠, 라고 부를 뿐이었다.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다. 나는 감정이 풍부하고 아주 오래토록 사랑을 생각하고, 아주 오래 그 감정에 빠져있다. 그리고는 그것의 허점을 찾아내 혼자 불안해하고 괴로워한다. 그것이 내 큰 약점이었다. 대체 왜 그런걸까. 이것은 정신병인가.

 

그는 내게 충실하게 연락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금융인답게 온갖 투자자들과 금융인들을 만나러 다녔고 골프를 쳤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돈과 정보가 오갔고, 나는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있는 그가 멋있어보였다. 나도 그 자리에 껴서 옆에 앉아 그 정보들을 다 흡수한 뒤 아주 근사한 기사를 한편 써내고 싶었다.

 

여러모로 그러니까 그는 아주 완벽하게 멋있었다. 조금 아저씨스럽기는 했고 우리에게는 로맨틱함은 좀 덜했고 순수한 어떤 감정들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좋았다. 그의 사랑은 힘이 있었다. 그는 돈과 인맥과 정보들을 넘치게 갖고 있어서, 그는 사랑을 하기만 하면 줄 수 있는게 많았다.

 

나는 늘 그것이 없었다. 사랑의 힘 말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줄 게 없는 사람은 너무 슬픈 법이다. 아무리 사랑하지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줄만큼 사랑하지만, 가진 게 없으면 줄 것이 없다. 그 슬픔 속에서 그는 이다지도 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난 인생의 절반을 벌써 살았어"라고 말했다. 중년의 남자는 그런건가. 나는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벙쪄 그럴 쳐다봤고 그는 내게 "너는 산술적으로 늙어갈 것이고, 나는 기하급수적으로 늙어가겠지"라고 말했다. 그는 중년의 남자였으니까.

 

난 아직도 20대에 머물고 싶은, 30대 초반인데, 그는 중년이었고, 나는 어떤 이상한 여자가 된 것만 같았다. 내가 늘 가십거리처럼 얘기하던 "돈 많은 중년 남자가 10살이나 어린 여자를 델고 산대"라고 말한 가십거리의 주인공이 내가 된 것만 같아서 그 것이 너무 이상했다.

 

그런데 그런 가십거리의 주인공은 늙어버린 부자의 중년남자와 아주 예쁜 젊은 여자의 만남이지 않던가. 그렇지만 그는 돈은 잘 벌어도 재산은 없고 나는 그보다는 어려도 예쁘지는 않았다. 나는 사실 예쁘지도 않고 살만 잔뜩 찐 그냥 찌들어있는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이상한 클리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너무 낯설었다. 그리고 그도 그런 남자의 상징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는 그냥 아이였다. 일에 지쳐있는 아이였는데 내게 안겨있는 것을 좋아하는 지친 영혼이었다.

 

아, 그러니까 이 연애는 이렇게 짧게 끝이났다. 그랬다. 그냥. 그런것이었다. 나는 우울하다. 몹시 우울하고 짜증이 나고 매우 빡쳐있다. 나는 소리를 지르거나 어디론가 마구 뛰어다니고 싶다.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싶다. 화가 난다. 난 그를 좋아했는데 왜 이렇게 됐지.

 

나는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쏟을 대상이 필요하고, 그리고 내 안에 싹트고 있는 불안을 잠재울 필요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다 나를 망친다.

 

그런대로 편안한 하루였다. 부서장과 팀장이 새로 바뀌니 아주 편안했다. 사람 스트레스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거였다. 나는 업무스트레스만 받았다. 하루종일. 이것은 상당히 견디기 쉬운 것이었다.

 

세상이 이렇게나 신경질이 나지 않아도 되다니. 새삼 감탄한다.

 

편안한 하루였으나, 계속 울컥했다. 울컥한 것은 헤어짐 때문이었다. 헤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나의 뇌에는 그를 생각하는 것이 들어차 있었다. 그것은 밀어내도 밀어내지지 않았다.

 

밀어내지지 않아, 나는 억지로 일을 열심히 해봤다. 각종 지식들을 가득 채우려고 했다. 조금씩 그의 생각이 밀려나갔다.

 

내가 어쩌면 그를 그렇게나 좋아하고 그에게 집착한 것은, 어쩌면 내 생활이 너무너무 팍팍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부서를 옮기기 전에 아주 신경질을 자주 부리고 짜증을 잘 내는 부장, 배려심이나 이해심이 전혀 없는 팀장 밑에 있었고, 내 삶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니 그가 내게 건네는 톡과 전화는 내 삶에 있어 한줄기 빛이었고, 꿀떡 마실 수 있는 물이였다.

그 날을 기억한다. 하루종일 부서장이 쏘아대는 신경질과, 날카로운 고음, 그리고 그의 제스처에 실려있는 악한 감정들이 내게 쏟아져 있던 날이었다. 나는 그 감정들에 싸여서 완전히 죽어가고 있었다. 하루의 끝은 그렇게나 부정적이었다.

 

그때 그에게 걸려온 전화,나는 한줄기 빛과 사랑을 발견했다. 완전히 캄캄해진 안개 속에서 누군가 손전등으로 나를 비추는 기분이랄까. 그와의 잠깐 몇분의 통화가 나는 그렇게도 좋았다. 나는 어쩌면 그를 그가 그 자신이라서 좋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결핍에서 등장한 존재이기 때문에, 결핍속에서 찾아낸 사랑이라 좋아한 건 아닐까.

 

나는 결핍이 지속돼, 그를 그가 그렇게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좋아하게 됐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어쨌든 나는 그를 좋아하고 , 그에게 집착했고, 그의 사랑을 갈구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보여줬다. 그는 일어나고 회사를 뛰어가고, 업무를 보고, 빠르게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하다가, 상사에게 지시를 받고, 부하직원에게 요청을 받는 그 시시콜콜한 모든 일상을 내게 전했다. 그의 하루가 내게 고대로 전해졌다.

나는 그의 그 일상에서 그의 피곤함과 조급함 등을 봤다. 그는 성과를 내야했고 책임감이 있었다. 그는 나와는 다른 중간관리자였으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벌어들인 돈을 전부 다 썼다. 그리고 남들에게도 썼다. 그는 하루에 100만 원을 넘게 쓰기도 했다. 100만 원, 200만 원을 썼다. 술을 마시고 최고급의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갔다. 그만큼 소비할 수 있는 시간조차 짧은 거였다. 그 짧은 시간에 가장 좋은 것을 스스로에게 대접했다.

 

그는 언제나 달리고 달렸다. 그의 엔진은 끝나지 않는, 그러니 그의 생명이 다해 죽음에 이르러서야만 끝날 것 같은 그런 엔진이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고상한 직업을 가졌는가 하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나는 실제로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훈수를 두는 것에 불과한 거였다. 이것은 먹물계의 고상함인가. 뇌를 쓰는 일의 고상함인가.

어떤 선배는 우리들이 하는 일을, 먹물계의 3D라 부르기도 했으며, 공포심에서 글을 쓴다고도 했지만, 나는 그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며 느꼈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 그치고 잘못되면 홍보팀에서 전화가 오는데 그치지만 그는 까닥하면 돈 수천, 수억이 날라가는 일을 하는구나. 우리가 절박한 정도는 사실 매우 다른 것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그에 비하면 쉬운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니면 사실 직업 자체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 그와 나의 직책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떻든 그는 중년에 접어들었다.

 

그의 어떤 하루는 평온했다.어떤하루는 화를 냈고 또 다른하루는 지쳤다. 평온한 날에는 내게 신경을 썼지만 화가 나는 날에는 스스로에게 화를 내거나 잠을 잤고, 지친 날에는 내게 왔다.

 

그의 하루들이 모이다보니, 그의 인생이 자꾸 내게 와서 그를 좋아하게 됐다. 그랬던 날들이 자꾸 생각나서, 나는 그냥 회사 모니터 앞에서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는 정말 멍청하고 경솔한 인간이다.

 

그렇게 한명의 인생이 내게로 이렇게도 가깝게 쏟아지는 일이 흔하던가. 그렇게 가감없이, 그리고 그렇게 솔직하게 내게 오는 것이 쉽더냐 말이다. 나는 그것을 발로 찼다. 그는 그렇게 떠났고 나는 이렇게 앉아 울컥, 한다.  

 

지나간 연애, 그러니까 혼자만의 연애를 생각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썸'이 많은 편이었다. 연애는 적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장면들, 남자가 내게 잘해주는 것과 그것에 설레는 나 자신을 보는 장면이 떠오를 때면 나는 내가 아주 더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남자들의 얼굴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다. 난 왜 이다지도 쉽게 내 마음 속에 그렇게 많은 남자들을 들여왔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말 내 마음에만 들어왔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남자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 자체로도 나는 정말이지 괴롭다. 

아, 내가 마음을 줬던 그 시간만큼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은 자라고 그 시간만큼의 사랑이 또다시 지나간다. 

 

그 시간 내게 사랑을 선사했던 그 무수한 남자들은 그 시간만큼의 사랑을 줬고 나는 그들을 전부 다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회사에서도 어떤 남자를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도 나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는 아주 많이 나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정도, 나를 귀엽다고 느낄 정도, 나의 이러저러한 요구를 들어줄 정도, 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줄 정도로만 나를 좋아했다. 

 

그는 열렬한 사랑을 보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그냥 그 정도의 간단한 좋아함을 보냈지만, 그 정도의 달달함도 내겐 충분했다. 그런 달달한 감정이 묻어있던 그의 얼굴 그의 눈 그의 목소리 같은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이상해진다. 그는 종종 회사에서 내곁을 지나간다. 당연하다. 우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고 그냥 그는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회사에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그럼에도 그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서로를 서로의 무엇이라고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간의 같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댔고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내 어깨에 가끔 안겨왔고 나도 그를 쓰다듬어줬다. 나는 그에게 힘들다 했고 그도 내게 힘들다 했다. 

 

아주 가끔 우리는 술을 마셨는데, 그는 내게 "평소에는 싸가지없게 굴더니, 술 마시면 애교부려서 귀엽네. 자주 멕여야 겠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먹으며 오므려지는 입술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자신도 술을 들이키는 것이다. 

 

우리는 나란히 놓여진 책상에 나란히 앉아 근무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얼굴이 아주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오래 그를 쳐다보았고 그도 나를 쳐다봤다. 나는 누군가 좋아지면 그의 얼굴을 오래 쳐다보는데 그것은 그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린 일을 하다말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한 어떤 시간도 가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장면들은 완전히 잊고 있었고,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에게 차였으며 엄청나게 울어댔다. 울고 욕을 하고 난리를 치다가 또 몇달이 훌쩍 지났기에 그를 완전히 잊고 생각하거나 떠올리지도 않았다. 

오늘은 어쩐일인지 문득 그 장면장면들이 고스란히 마음에 떠올랐다. 이유가 뭘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것이라고 정의내린 적도 없고 사랑을 속삭인 적도 없고. 그러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차라리 내 전남친,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가 서로의 연인이라는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뒤, 이제 우리는 아무 관계가 아니라 다시 공식적 관계를 내린 그 관계가 끝나자 왜 그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서 일어났던 그 장면이 떠오른 것일까. 대체 왜. 

 

그 장면과 이 장면이 떠오르며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 그러니까 매우 설레고 좋아한다는 그 감정은 여전히 같은 종류로 나를 감싼다. 그것은 누구 때문인가. 그것이 특정한 어떤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쉽게 좋아하고 설레하다니, 나는 내가 몹시도 더럽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나는 내 마음을 너무 쉽게 그들에게 맡긴 것이다. 정말 너무 쉽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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