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눈을 뜬 아침, 절망이 동공을 힘껏 긋고 지나가는데 등이 구부정한 아버지가 곧 사라질 것처럼 희미한 표정으로 내 곁에 앉아 있다 얘야 무엇이 왜 이토록…… 너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니 병실 침대맡에서 아버지의 눈빛이 흐릿하게 묻고 있다 아버지 달이 자꾸만 커지는 게 무서워서요 새벽녘에 커다란 보름달이 목을 졸라댔거든요 자세히 보니 달은 창백하게 얼어붙은 내 과거의 눈동자였어요 그걸 쳐다보고 있자니 동공이 깨질 듯이 쓰라려서요 싸늘하게 겪은 일과 시퍼렇게 당한 일 사이에 걸터앉아서 손목을 사각사각 깎아냈을 뿐인걸요 연필 가루처럼 떨어지던 피가 어느새 통통한 벌레로 변하더니 바닥을 기어다니던데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기어이 발설하기 위해서 뾰족하게 깎아지른 손목으로 나는 또박또박 상처를 기록합니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들만 골라가며 사랑했어요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불쌍해서 좀 안아줬더니 결국엔 뺨을 치고 주먹을 날리던걸요 만삭처럼 부풀어오르는 비명 속에서 폭력은 예고 없이 태어나 칭얼대고요 어르고 달래던 결핍은 무럭무럭 자라나 손목을 토막 내는 취미가 생겨버렸죠 꿈틀꿈틀 한 손으로 이렇게 아버지 곁을 기어다니면 되잖아요 창가에 서린 입김처럼 하얗게 내려앉은 아버지는 닦으면 닦을수록 흐릿하게 지워지는데 방안에서 너덜대는 손목을 기어이 발견해 병원에 실어나를 때마다 아버지의 눈빛이 자꾸 묻는다 무엇이 왜 이토록…… 너를 사랑하지 않았니
그러게요. TV조선 앵커는 왜 저렇게 목소리 톤이 높을까요. 조선중앙TV에 기백으로 눌려서는 안 된다고 다짐이라도 하는 걸까요. 전하는 내용도 대개 그렇습니다. 듣다보면 아 답답해 아 시끄러워 아 짜증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래요, 그런 것 같아요. 아무나 해요 어른. 스물여섯 살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어른 됨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느꼈습니다.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는 것. 태연한 표정으로, 깜깜한 어둠을 향해 발을 내딛는 것.
그런데 그런 얘기 요즘은 잘 안 하죠. 저는 저대로 깨달음의 감흥이 희미해졌고, 세상은 세상대로 어른 됨의 의미를 깊이 알고 싶어하지 않고, 어렵고 어지럽고 어수선해서 피로감이 듭니다. 제 나이도 애매합니다. 어른 됨을 말하는 사십대는 철이 덜 들었든지 꼰대든지 둘 중 하나 아닐까요(김민정 시인은 사십대가 되기 전에 이 시를 쓰셨습니다).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 실린 시들을 좋아합니다. 시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단어가 툭툭 튀어나와 슬며시 웃음이 나고, 직진하는 화법이 후련합니다. 삶과 세상이 단정해지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어떤 일인가요? 저는 헌책방을 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운영하는 헌책방을 찾아가보고 싶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