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지 않아서 집을 나섰다. 돈이 들어있는 체크카드를 들고, 발길 가는대로 걷고 있다.

 

체크카드에는 10만 원 남짓 들어있다. 발은 매우 무겁고 불편하다. 신발이 다 떨어져서 발이 불편하다. 신발을 사고 싶다는 욕구가 내 안에서 스물 피어오른다.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그 순간 매우 큰 절망감을 느꼈다. 마음 깊숙이 밀려드는 절망감은 다른 이유도 아니고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매우 슬프다.

 

어렸을 때는 그러한 절망감이 마음 곳곳에 퍼져서 존재론적인 물음까지 확장되었다. 소비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나의 능력, 아니 부모의 능력, 그 능력을 키우지 못한 부모의 게으름, 아니 사회의 억압, 사회의 부조리까지 생각은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이제 어른이니 그런 절망감의 싹은 고개를 들다가 다시 사라져 버린다.

 

길을 계속 걷는다. 카페가 보여서 커피 4천 원에 구입한다. 따뜻한 커피를 한입 마시면서 4천 원이 내게 2시간의 행복을 선사했음을 깨달았다. 돈으로 산 따뜻한 액체는 내게 두 시간 정도의 기쁨을 준다.

 

 

커피의 맛이 더 훌륭하고, 더 따뜻하면 나는 30분은 더 행복할 것이고, 생각보다 더 맛이 없다면 30분은 덜 행복하겠지. 나는 두 시간동안 커피를 마시면서 길을 걷는다.

 

따뜻하고 쌀쌀한 하늘을 보면서, 하늘은 언제나 하늘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늘은 변화하면서도 그대로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나의 눈에 감사한다. 이것을 느끼면서 언어화하는 나의 생각에도 감사한다.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몸을 베풀어준 부모에게도 감사한다.

 

 

부모님께 얼른 효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돈을 많이 버는 일이다.

 

길을 걷다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제는 공부를 하러 갈 때다. 서점에 들어가서 책을 몇 권 산다. 책을 펼쳐들어 읽는다. 책이 주는 재미와 유익은 1만3500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세계로 나를 인도하며 나의 경험세계를 넓혀준다.

 

 

또한 책에 쓰여 있는 언어의 조합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아름다움마저 준다. 몇 시간의 독서를 마치고 일어나보니 하루가 전부 갔다.

 

오늘 내 하루의 시간은 17500원으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느끼면서 하루만큼의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이것은 소비가 아니다. 나는 움직였고, 다짐했으며, 또한 생산성을 얻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였다.

 

 

하루의 삶이었다. 돈으로 운영된 시간과 그만큼의 성장의 시간이 공존했던 인생의 하루였던 셈이다.

이렇듯 돈은 사실 사회를 움직이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돈은 목적이 아니고, 운영되는 데 필요한 수단인 셈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힘도 개개인의 능력이자, 개성이다.

 

돈으로 운영되는 개인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 그것을 언어화하여 전달하는 표현력, 표현하며 행복을 배가할 수 있는 인맥, 인맥으로 형성되어 있는 이 사회, 그리고 우주까지 말이다.

 

개인의 삶에서 느끼는 감수성으로, 행복은 퍼져 나간다. 운영되는 것은 돈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돈을 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그 고양이는 내게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안식처를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고양이를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오늘도 돈을 번다.

 

[편집자 주: 한겨레 문화센터 온라인 백일장에서 우수상을 탔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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