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니 (김현,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사평이 말했다

엄마, 바다 화났어?
아직 화났어?

사평은 난생처음
바다 보고 꽃게 보고
꽃게처럼 옆으로 걷다가 모래사장에 꽃게를 그리고 그 순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된다
그날 내 가슴에
남들은 모르게
슬픔이 밀려왔다 밀려가지 않았지
아직 어린 나이에 망망대해의 진리를 알 수 없을 텐데도
사평은 짐작했다

엄마, 엄마 냄새는 너무 예뻐.
아직, 예뻐.

사평은 파도가 높아
부모가 신선해물탕집에서
간장에 고추냉이를 너무 많이 풀어서
알을 먹다가 눈물바람으로
휘청거리는 걸
보고
들었다

여보, 이맘때면 자꾸 현이 오빠 생각이 나
그 오빠가 그렇게 쉽게 갈 오빠가 아닌데 어쩌다가 그리 쉽게 가냐 가길
여보, 저기는 참 어두컴컴하다 보이는 게 없네
여보, 이맘때면 자꾸 현이 언니 생각이 나 그 언니 그렇게 쉽게 갈 거면서 뭘 그렇게 어렵게 살았을까
여보, 우리는 모두 연약해 앞뒤가 꽉 막혀서

부모가 소주잔을 들고 우두커니 창밖을 보는 사이에 사평은
펄펄 끓는 해물탕에서 꽃게를 꺼내려다가
눈물이 터졌다
인생의 뜨거운 맛을 보았다 처음으로
부모는 사평 때문에 바다에서 멀어졌다
자러 갔다
꿈에서도 미더덕을 씹어서 입안에 물이 가득했다

엄마, 화났어?
아직 화났어?

사평은 부모가 신선하게 잠든 사이에
깨어나서
햇빛 창가에 앉아서
부모가 그리워하던 이와 대화했다
너도 부모 되어 알리라
사평은 놀라 검푸른 바다를 마음에 엎지르고
커나가리라
그땐 몰랐으나
사평은 부모의 슬픔
냄새를 그때부터 잊지 못했다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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